2011/6월

무경계

여행길 2011. 6. 23. 14:25

켄 윌버/김철수 옮김/무우수/2005

p113

 

에머슨 Ralph Waldo Emerson

 

"나의 창가에 핀 장미들은 이전의 장미나 더 아름다운 장미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그들은 존재 그 자체이며, 신과 더불어 오늘 존재한다. 그들에겐 시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거기 단순히 장미만이 존재할 뿐이다. 장미는 존재의 매순간마다 완전하다...그러나 인간은 뒤로 미루거나 기억한다. 인간은 현재에 살지 않고 과거를 비탄하거나 자신을 둘어싼 풍요로움에 무관심한 채 습관적으로 뒤로 돌아가는 눈과 함께, 미래를 미리 보기 위해 까치발을 한 채 서 있다. 인간은 시간 너머 현재 속의 자연과 함께 살 때까지 행복할 수도 강해질 수도 없으리라."

 

 이와 같이 '시간 너머 현재 속에 살기' 그리고 '순간의 자식으로 존재하기'는 영원과 합일의식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왜냐하면 무시간적 현재란 '시간에서 영원으로, 죽음에서 불사로' 이끌어 주는 곧고 좁은 길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점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대단히 조심하지 않으며 안 된다. 왜냐하면 이 '무시간적 현재에 살기', 현재 순간에 대한 꾸밈없는 주의는 그저 어제와 내일을 망각하는 흔해 빠진 심리적인 술책과 아무런 관계도 없기 때문이다. 신비가는 과거와 미래에 대해 잊어버리거나 무시함으로써 현재에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처음에는 이 말이 귀를 의심케 할지 모르지만, 그들이 말하는 것은 과거와 미래란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과거와 미래란 단지 영원한 지금 위에 덧씌워진 상징적 경계라는 환상의 산물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상징적 경계라는 환상의 산물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상징적 경계가 어제 대 내일로, 이전 대 이후로, 지나간 시간 대 다가올 시간으로 영원을 분리시키는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따라서 영원 위에 덧그은 경계로서의 시간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애당초 존재하지도 않는 하나의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이 영원한 각성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선 대단히 조심하지 않으며 안 되며, 극도의 조심성을 갖고 진행해 가야만 한다. 영원이란 끊임없이 지속되는 시간이 아니라 무시간의 현재라는 것을 이론적으로 파악한 후에도 많은 사람들은 현재 경험하는 모든 것에서 지금 이 순간에 주의를 집중함으로써 이 뭄시간의 현재에 접촉하려고 노력한다. 그들은 무시간의 지금 순간에 접촉하기 위해 즉각적 현재에 대한 적나라한 주의를 목표로 훈련한다.

 

p294

 고통으로 가득 찬 세계의 실존적 악몽에 눈뜬 자아는 그 후 두 개의 기본적인 선택지를 갖게 된다. 의식의 진화와 성장을 위한 길을 선택할 것인지 아니면 의식을 지우고 고통에 대해 마비된 퇴행의 길을 택할 것인가이다. 만일 전자를 선택하면 자기는 적절한 영적 훈련과 더불어 진화적 성장을 해가면서 비시간적인 원초적 본질을 재발견할 것이다. 그것은 결코 과거 유아기에 상실했던 것이 아니라 시간의 세계가 아닌 현재, 다만 지금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는 자기본성의 재발견이며, 하강에 앞서 현전해 있던 궁극의 의식상태, 즉 합일의식의 상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