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32
금계, 권계를 입문 단계라고 하는데 금계는 그 구성요소가 5가지로 되어 있다.
『요가수트라』2-30.
‘남을 해치지 말라’, ‘거짓말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성적인 욕망을) 절제하라’, ‘탐내지 말라’는 다섯 가지 규율이 금계이다. 42)
금계는 타인에게 피해를 입히는 행위를 넘어서 그런 행위 근저에 있는 자기에 대한 집착을 제거하는 것이라고 하는 것이 더 타당한 것이다.
권계는 청정, 만족, 고행, 학습, 자재신에 대한 봉헌이다.
『요구수트라』2-30.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하라
(목숨을 유지할 최소한의 필요 이상을 구하지 말고) 만족하라
고행하라
스스로 연구하라
(신께) 헌신하라 는 것이 권계이다.44)
『요가수트라』2-35.
남을 해치고자 하는 마음이 완전히 사라진 수행자에게 는 아무것도 적의(敵意)를 보이지 않는다.
모든 생각과 행동에서 폭력의 그림자가 완전히 사라지면, 폭력이나 적의가 발붙일 곳이 없는 긍정적인 분위기가 그 주위에 창조된다.48)
p36
조식은 들숨, 날숨을 가능한 한 천천히, 규칙적으로 하는 것인데 특히 들숨을 몸속에 오래 정지시키는 지식(止息, kumbhaka)이 가장 중요하다.
p43
우리는 무엇을 볼 때 ‘내가 무엇을 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무엇을’본다는 생각이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게 방해한다.
다시 말해 미리 결정해 놓은 관념에 의해 대상의 본성이 왜곡되고 채색된 상태로 인지된다는 말이다. 우리는 삼매 상태에서의 초감각적인 지각 능력을 통해서만 대상의 본성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다. 오로지 삼매 상태에서만이 대상의 본성이 우리의 관념이나 상상에 의해 왜곡되지 않는다. 삼매 상태에서의 앎은직접적이다.59)
p53
렐(Lele)은 오로빈도가 그 동안에 해오고 있었던 영적인 실천들과 체험에 대한 이야기를 모두 들은 후에 그와 함께 3일 동안 명상을 하면서 오로빈도에게 충고를 한다. 즉 신적인 힘이 들어와서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마음을 완전히 비우라는 것이다. 이렇게 실행함으로써 오로빈도는 평화가 하강하고 그 안에 모든 것이 사라지는 상태, 삼매(Samadhi)를 체험한다.
...
이 삼매는 종종 영적 추구의 절정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이것은 신성의 깨달음의 부정적인 면일 뿐이다. 슈리 라마나 마하리쉬(Sri Ramana Maharshi)가 말했던 것처럼 영적생활은 삼매후에 시작된다.
p55
오로빈도는 우리인간이 너무 조급하게 판단하기 때문에 완전한 지혜를 가질 수 없다고 한다. 즉 인간의 지식은 이러한 절대자의 이중성을 알지 못하고 악의 반대는 선이고 나쁜 것이라고 성급한 판단을 하게 된다고 한다. 오로빈도에 의하면 가장 나쁜 오류나 악 안에서도 진리와 선의 열매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 이렇게 되기 위해서 오로빈도는 우리가 스와미 비베카난다(Swami Vivekananda)의 가르침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한다.77) 그것은 우리는 오류에서 진리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고 불완전한 진리에서 더 완전한 진리에로 나아간다는 가르침이라고 한다. 또한 오로빈도는 인간의 가장 큰 결함은 종종 가장 큰 덕을 가리키고 있으며, 인간의 약함과 비참은 빛과 치유를 그만큼 더 갈망하게 된다는 것이다.
p61
그는 대생명력 은 (Nature) 대립에 의하여 나아간다고 생각했다. 대생명력의 해결방식은 대립하는 것의 한쪽면을 다른쪽에로 흡수한다거나 충돌을 피하기 위해서 한쪽을 변형시키는 것이 아니라 대립하는 것들의 작용하는 장(the whole theater of their operatings)을 확장함으로써 복합적이 되게 하고 일치를 구축한다. 따라서 우리 인간의 정신도 더 작은 맥락안에서는 모순인 요소들을 화해하고 포함할 수 있는 더 큰 맥락, 장을 추구해 나아가야만 한다고 오로빈도는 말한다.86)
p63
신적 샥티의 이러한 인격성 때문에 정신, 생명, 육체가 부드럽고 세련되게 된다. 정신과 영혼의 조화와 미, 생각과 느낌들의 조화와 미, 모든 외적인 행위와 움직임에 있어서 조화로움과 아름다움은 마할락슈미(Mahalakshmi)가 요구하는 것이다.
추하고 조잡한 곳, 사랑과 미가 없는 곳에는 이러한 신적 샥티가 오려고 하지 않는다. 인간의 마음 안에 이기심, 미움, 질투, 시기, 투쟁, 배반, 탐
욕, 거칠음이 있다면 오래 머물지 않는다.
p64
우리가 논리에 묶여져 있는 정신들을 조금만 느슨하게 할 수 있다면(편견없이 우리 체험의 사실들을 생각할 수 있다면) 정신 차원이 가지
고 있는 개념적 논리의 패러다임에 따르지 않을 지라도 나름대로 우리 체험의 모든 요소들을 이해할 수 있도록 정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오로빈도는 덧붙여서 말하길 신적인 결합, 일치 없이는 인간 공동체도 일치를 이룰 수 없다고 한다. 즉 서로에 대한 단순한 정신적 지식에 의해 일으켜진 공감, 조화, 일체감은 예기치 않은 개별성의 힘(이 개별성의 힘은 근본적으로 나눔이다)에 의해서 깨트려진다고 한다. 참된 일치를 갖기 위해서 우리는 공동체의 각 멤버와 하나라는 일체감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더 낮은 본질은 늘 에고(ego)와 개별성의 이해관계에 묶여져 있기 때문에 이것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또한 늘 분열이 우선시되는 인간 공동체 안에서 완전한 일치와 조화를 추구한다는 것 자체가 하나로 통합시키는 초정신의 현존을 증언하고 있다는 것이다.
p86
통합요가의 길을 선택하기 위해서는 먼저 부르심(Call)이 있어야만 한다. 즉 더 높은 삶을 위한 존재의 깊이로부터 나오는 소명을 느껴야 한다. 삶에 대한 불만족, 회의 그리고 자신을 드러내려는 야망 등에 의한 동기는 목적을 달성 못한다.
통합요가의 다음 필수조건은 성실성(Sincerity)이다. 즉 자신의 존재의 모든 부분들과 움직임들을 향상시키려고 하는 끊임없는 노력과 준비이다. 이것도 마찬가지로 정신, 마음 한 군데에서만 향상시키려고 노력해서는 안된다. 그다음에 신앙도 있어야만 한다. 신성의 실재에 대한 신앙, 신성에로 이끄는 길에 대한 신앙, 목적에로 인도하는 은총에 대한 신앙이다.
신성에 대한 열망(Aspiration)도 필수요소인데 이 신성에 대한 열망도 존재의 전체에서 불타올라야 하며, 효과적이기 위해서는 의지가 밑받침되어야 한다. 이렇게 의지와 결합된 갈망은 정신 안에서는 지혜에 대한 갈망, 지혜에 대한 성장으로써 드러나고 생명적 존재 안에서는 행위들을 신성에로 봉헌하려는 것으로, 그리고 마음 안에서는 신에 대한 찬미 안에서 사랑과 헌신의 감정들로 나타난다. 또한 몸도 견고한 평화를 드러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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