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정의 중독_나카노 노부코 지음, 김현정 옮김, 시크릿하우스,2021

여행길 2021. 7. 30. 20:28

인간은 혼자 살 수 없다. 그러므로 자신과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을 '용납할 수 없다' '이해할 수 없다' '바보같다'며 끊어 내거나 미워하지 말고, '내가 혹은 내 뇌가 용서할 수 없다고 느끼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먼저 생각해 보는 것이 자신의 인생에, 나아가 사회 전체에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타인은 비난하여 쾌감을 얻는 것, 타인에게 비난받아 상처를 입는 것, 그러한 마찰이 두려워 소통 자체를 꺼리거나 의사 표시를 자제하는 것 모두 결국은 상호 이해가 부족한 탓이다. 

 

본래는 인간도 동물처럼 그저 세상에 태어나 먹고 자라며, 아침에 일어나 밤에 잠들고, 나이가 들면 죽는 그런 존재일 뿐이었는데 뇌를 발달시키는 바람에 오히려 더 힘들어지고 말았다. 서로 멍청하다고 매도하면서 해결 방법도, 애초에 해결할 마음도 없는 싸움을 계속하는 것이 인간이라는 종의 특성이라면, 아마도 인간만큼 불행한 동물은 없을 것이다. 

 

설령 타인의 언행에 거부감을 느껴도, 뇌 구조를 알고 나면 무의미한 싸움에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고 복수로 누군가에게 상처 주지도 않으며 편한 마음으로 지켜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일본에서는 '다른 사람들과 어우러지지 못하거나' '대다수 사람들과 다른 말이나 행동을 하면' 어리석다고 생각하는데, 프랑스에서는 '다른 사람들과 똑같거나' '자신의 의견을 말하지 않으면' 어리석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나라마다 기준이 다르다는 말은, 환경에 따라 내 선택의 옳고 그름이 달라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일반적 신뢰'가 낮은 현상은 어떻게 설명할 수있을까? 생리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다소 복잡한데, 주변 사람들한테 친절하긴 하지만 문제가 생기면 남 탓을 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집단을 이루어 살아남는 편이 유리하다'라는 인식이 오랜 시간에 걸쳐 하나의 전략으로 뿌리내리고 있어, 집단 내의 불화를 최소화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볼 때는 최선이다. 다만, 이질적인 것을 거부하고 집단에 어울리지 않으면 배제하는 현상, 호은 다른 집단에 대한 공격성이 쉽게 분출된다는 부정적인 측면이 있다.

 

일본의 직장인이라면 개인의 의견이 집단의 결정에 묵살되는 경험을 날마다 겪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아이히만 실험의 결과는 특정 상황에 놓이면 대부분 집단의 의사를 따르며 집단 내에서는 그것을 '현명하다'고 여긴다는 점을 보여준다. 

 

일본의 토론은 뭔가 형식적이고 수박 겉핥기식의 의견을 내다 결국 본질에서 벗어나 콩트처럼 싸우기 시작한다.... 

일본에서는 주장과 인격을 분리해서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토론이 툭하면 인신공격으로 이어진다. 이는 어떻게 보면 일본을 상징하는 특징일지도 모르겠다. ...

외부와 단절된 채 빈발하는 자연재해를 겪어야 하는 섬나라 일본과, 다양한 인종과 문명의 교차점으로 다채로운 토론이 자연스러운 유럽 대륙의 차이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프랑스에 있었을 때가 피곤하긴 해도 내 의견을 참지 않고 말할 수 있어 편했다. 어떤 생각을 하든, 외모가 어떻든 상관없이 '이게 나야'라고 설명할 수만 있다면 아무도 손가락질하지 않는 사회는 그리 많지 않다. ...

일본인의 토론은 대립하는 두 의견을 음미하고 검토하여 보다 좋은 결론을 이끌어 내기보다는 대부분 인신공격으로 흘러간다. 헐뜯는 것과 토론은 완전 별개인데, 정의 중독자들은 상대 주장의 좋은 점을 받아들이는 것이 그렇게 힘든 모양이다. 그래서 '중독'이라 부르는 것이겠지만, 토론이 아닌 설전은 마치 '네가 틀렸어' '저보다 내가 더 잘났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언어폭력이자 말로하는 살인과 다를 바가 없다. 

...이제 일본에도 무작정 남을 따라하지 않고 진정한 의미의 토론을 해야 하는 시대가 도래했다는 생각이 드는데, 일본이 역사의 시험대에 오를 때 과연 어떤 힘을 발휘할 수 있을지 전 세계가 주목할 것이다. ...

환경적 요인을 바꾸기 쉽지 않기에 일본인의 근본적인 사고방식과 높은 사회성이 크게 바뀔 일은 없다는 점에 대해서도 다루었다.

 

거듭 말하지만, 나와 타인을 비교해서 누가 더 우월하고 누가 더 열등한 지를 따지는 것은 본질적으로 별로 의미가 없다는 뜻이다. ....타인을 '무식하다' 혹은 '똑똑하다'고 판단하는 것은 타인에게 자신의 기준을 억지로 끼워 맞추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아무리 상대를 자신의 틀에 집어넣어 봤자 상대는 바뀌지 않는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구나...'

이미 아는 사실이었음에도 순간 경계심이 생겼다. 한편으로는 내가 너무 쉽게 그들에게 낙인을 찍고 그들을 미워하게 되었다는 생각에 큰 충격을 받았다. 

 

처음에는 서로 끌리는 무언가가 있었으나 결혼을 했을 텐데, 뇌과학적으로 보면 사실 두 사람이 끌린 이유는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즉 달라서 재미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막상 결혼을 하면 그 다른 점 때문에 오히려 짜증이 난다. ...거리가 멀 때는 자신과 다른 부분이 존경과 애정의 대상으로 다가오지만, 가까워지면 갑자기 꼴도 보기 싫을 때가 있다. 

...스스로를 100 퍼센트 좋아하기도 쉽지 않다. 그런데 타인은 오죽하랴.

 

우리가 정의 중독에 빠질 때 뇌에서는 도파민이 분비된다. 도파민은 쾌락과 의욕 등을 관장하며 뇌를 흥분시키는 신경 전달 물질이다. 한마디로 기분 좋은 상태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자신의 집단을 지키기 위해 다른 집단을 공격하는 행위를 정의라 생각하고, 사회성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행위로 인식한다. 공격하면 할수록 도파민으로 인해 쾌락을 느끼게 되므로 점점 끊기가 힘들어진다. 자신들이 말하는 정의의 기준에 맞지 않는 사람을 두고 정의를 위협하는 '악인'이라고 비난하며 쾌감을 느끼는 것이다. 

 

..sns에 과격한 의견을 쓰는 행위, 그것이 바로 정의 중독이다. 인간은 누군가를 공격하면 할수록 기분이 좋아지고 점점 그 행위를 멈출 수 없게 된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어떤 연합군 군인이 자신과 똑같은 백인인 독일인을 죽일 때는 마음이 아팠지만 일본인을 죽일 때는 아무렇지 않았다고 한다. 같은 백인에게는 감정이입이 되어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만, 유색 인종인 일본인에게는 외집단 편향이 작용해 같은 인간이라고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이는 인종에 국한되지 않는다. 남자와 여자, 혹은 서로 다른 복식 문화를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다. 

 

보기에 큰 차이가 없더라도, 두 집단의 인종이나 종교, 연령대, 성별이 같더라도 계기만 있으면 순식간에 경계선이 생기고 마는 것이다. ...

인간은 아무리 조심한다 해도 같은 집단에 속한 사람들을 그 외의 사람들보다 좋게 보는 내집단 편향에 빠질 수 있다. ...본인이 만약 '일본인은 원래 그래' '프랑스인은 대개 그런 식이지'하고 단정 짓는 것 같다면 주의할 필요가 있다. ...

'저 사람들은 원래 저러니까 그냥 나둬'라고 한꺼번에 묶어 버리면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시간을 들이지 않고도 간단히 처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는 것이 당연하다. 그 사람이 살아온 인생이나 그 사람만의 생각이 있을 테니 개개인을 따라 떼어 판단해야 한다. ...'저 집단은 우리와 달라'라고 생각하면 그만이니 신속한 판단이 필요할 때 매우 편리하다. 에너지 절약이라는 미명하에 뇌가 '꾀'를 부리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인터넷에서 새로운 지식을 얻었다' '새로운 뉴스를 접했다' 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그것은 필터에 걸러진 정보일 뿐이며 자신의 세계는 매우 한정적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가능하다면 자신과 다른 외집단 사람들의 생각도 단순히 '외집단이니까'라며 배재하지 않고 존중하며 서로 인정하는 것이 좋다. ..상대가 누구든 공감하며 행동하고 인간으로서 존중하며 인정하는 것은 매우 고차원적인 기능으로, 전두엽의 안와전두피질이라는 영역에서 관장한다. 

이곳은 25-30세 정도가 되어야 성숙하며, 완전히 발달하려면 그에 상응하는 자극(교육)이 필요하다. 또 알코올 섭취나 수면 부족 등과 같은 이유로 기능이 쉽게 저하된다. 가다가 그 기능이 완성되기까지는 인생의 약3분의 1 정도되는 오랜 시간이 걸리는 데 반해 쇠퇴하는 것은 순식간이다. ...자신의 도덕관에 입각해 상대에게 다짜고짜 화를 내고 무례하게 행동하는 것은 전두엽의 배외측전두전야가 퇴보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노화가 진행되면서 자신이 속한 집단의 논리밖에 수용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성과 직감이 대립하면 대부분 이성이 지게 되어 있다. 이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진보가 보수를 이기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인간은 자신이 줄곧 말해 온 것, 해 온 것, 믿어 온 것을 쉽게 바꾸지 못한다. 그리고 지금껏 남들에게 보인 모습과 모순되지 않게 행동해야 한다는 근거 없는 생각에 무의식적으로 얽매여 있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자기일관성의 원리 self-consistency라 부른다. 

일단 "난 보수다"라고 내뱉어 버리면 보수처럼 행동해야 할 것 같고, "저 사람은 싫어"라고 공언하고 나면 설령 나중에 생각보다 좋은 사람인 것 같아도 본인이 내뱉은 말이 있으니 친해질 수가 없다. 

자기일관성의 원리라는 표현에도 재미있는 사실이 숨어 있다. 이 표현 뒤에는 인간 자체가 사실 일관적이니 못하다는 현실이 있기 때문이다. 

 

일단 '저 사람은 절대 용서 못 해!'라는 감정이 생겼는지를 먼저 파악할 필요가 있다. 어떨 때 '용서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드는지 알 수 있다면, 자신을 객관화하여 정의 중독을 억제하는 것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무언가 분노의 감정이 솟구쳤을 때는 그 감정을 증폭 시키기 전에 한 템포 쉬면서 '지금 내가 중독 증상이 심해졌구나'라고 생각해보자.

 

머릿속에 떠오느는 기억은 상당히 미화되었을 가능성이 있으므로 유의할 필요가 있다....노화로 인해 전두전야의 기능이 약해지면 아무래도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어진다. 

 

전두전야는 분석적 사고와 객관적 사고를 담당하는 곳이다. 이곳이 제대로 기능하면, 눈앞의 이해득실에 휘둘리지 않고 장기적으로 봤을 때 이득이 되는 선택을 할 수 있으며 사회경제적 지위도 높아진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전두전야가 퇴보하지 않은 사람은 평소에 '이게 상식이지' '당연히 그게 맞지' 등과 같은 고정화된 통념과 상식, 편견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늘 사실과 데이터를 근거로 합리적이고 객관적으로 사고한다. 

 

어떠한 사실을 접했을 때 '아 그사람을 00하니까'알고 있어, B는 XX잖아? 라느 식으로 쉽게 범주화하는 사람을 발견하거든 조심해야 한다. ..안이하게 범주를 설정하거나 다른 사안과 결부시켜 이해하면 쓸데없는 에너지 소모를 할 필요가 없다는 것...편하겠지만, 그만큼 전두전야를 활성화시킬 소중한 기회를 잃어버리는 셈이기도 하다. 

 

아무 생각 없이 매일 같은 선택을 반복하는 것이 편하고 합리적이긴 하나, 변화가 적은 삶을 살다 보면 뇌는 퇴보하고 만다. 일이나 생활에 쫓겨 바쁜 사람도 많을 텐데, 뇌를 생각한다면 조금이라도 전두전야를 활성화시킬 수 있게 여유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 

 

항상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보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다. 메타인지 능력이 없는 사람은 타인에게 공감하거나 타인의 입장에서 사안을 바라보는 것이 불가능하다. 동시에 자신이 현재 어떠한 상황에 있는지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 ..

메타인지 능력이 뛰어난 사람은 인생에서 좋은 영향을 주는 인간관계를 많이 경험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정의를 주장하거나 강요하는 것은 결국 누군가를 구속하는 행위와 다를 바가 없다. ...만약 상대를 위해 가르쳐 주려던 의도였더라도 '난 옳고 넌 틀렸어'라는 사고 회로에 갇히면 그것이 바로 정의 중독 상태이며, 상대방 입장에서 봤을 때 권력형 갑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

인터넷상의 모르는 사람에게까지 자신의 생각, 즉 '내가 잘하거나 잘할 수 있는 것' '내가 이미 알고 있는 것' 에다 경험에 근거한 본인만의 정의를 끼워 맞추고 벗어나지 않도록 강요하는 것 말이다. 

 

처음부터 타인, 그리고 스스로에게까지 일관성을 요구하기란 불가능하다. 인간이 이상 언행에 모순이 있는 것은 당연하며 과거에 한 발언과 행동을 얼마든지 번복 할 수 있다. 지금 이순간에는 절대적인 진실처럼 보이는 것도 시간이 지나면 잘못됐음을 깨달을 날이 올지 모른다. 

 

정답이 없음을 받아들이고 가능한 한 많은 사람과 공유하며 서로 포용하는 것이다. 

 

저마다 관점과 지식이 다르므로 대립하고 논의가 벌어지는 것이다. 그 자체는 건전하다. 하지만 여기서 정의 중독에 빠지게되면, 어는 한쪽이 잘못했다고 목소리를 높이면서 사력을 다해 끊임없이 상대를 공격하게 된다. 

 

정답보다는 거기까지 도달하는 사고 과정과 서로를 포용하는 것에 진정한 가치가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저 인간은 바보다. 저 인간 미쳤나 봐 라고 느낄 때의 그 저인간에게도 인격과 감정, 생각이 존재한다. ...상대의 발언을 평가하고 부정하기 전에 왜 상대가 그런 말을 했는지, 거기에서 그동안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는 것이다. ...한번 그 감각을 느끼고 나면 '내가 정의다'라는 생각은 더 이상 하기 힘들 것이다. ...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며, 완벽해지기란 영원히 불가능하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스스로 정의 중독에서 벗어나는 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