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1월

생명의 느낌

여행길 2011. 11. 16. 16:07

 

 

이클린 폭스 켈러 지음, 김재희 옮김/ 양문 / 2001

유전학자 바바라 매클린톡의 전기

 

p60

남들의 기준에 맞지 않는 내 행동으로 해서 언짢은 대접을 많이 받겠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별다른 해결책이 있을 거라고 기대하지는 않았어요. '나의 기쁨을 위해서 하는 일들이 남들에게는 거슬리는 일이 될 것이다. 그러니 그들의 반발을 달게 받을 수 밖에 도리가 없지 않곗는가'하고 마음을 다잡은 거지요. 고통스러웠지만 그냥 견뎌 내기로 했던 거예요. 세상에 맞서서 싸우는 게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나를 지키기 위해서는 묵묵히 참고 견디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고등학교 때도 그랬고 대학에 들어간 후에도, 그리고 이후에도 줄곧 그랬어요. 남들이 뭐라하든 개의치 말고 묵묵히 내가 가고 싶은 길로 계속 가겠다는 원칙을 지키느라 그렇게 했던 거지요.

 

p63

일과표를 작성했어요. 매일 공부할 분량을 미리 정해서, 내가 선생님이 되어 나를 가르치는 식이었어요. 공부와 관련해서도 나 혼자 해결을 해야 한다면 대학에서 배우는 내용을 그런 방법으로 채워가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내가 선생님 노릇을 하자면 학생에게 효과적으로 설명해 줄 수 있을 만큼 빈틈없이 공부해야 하니까,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학습법이 아니겠어요?

 

p70

뭔가를 꼭 해야만 한다거나 어떤 일을 몸바쳐 이루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었어요. 나는 그저 하고 싶은 일을 열심히 했을 뿐이에요. 다음에 뭐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좀처럼 들지를 않았어요. 그냥 언제나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좋은 시간을 보냈던 셈이지요.

 

p72

어떤 일에 완벽하게 몰두할 줄 알고, 또한 자신의 일을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해서 나름의 방식으로 꾸려 가는 것, 그중에서도 과학을 하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는 어렸을 때나 어른이 되었을 때나 변함없이 자신의 일에 흠뻑 빠져드는 그녀만의 집중력일 것이다.

이러한 성향과 관련해서 그녀가 꿈구던 특별한 능력은 '몸으로부터 자유롭게'되는 것이었다. 바바라는 전에도 이러한 자유를 맛본적이 몇번 있었다. 해변을 따라 출렁출렁 걸르면서 날아가는 느낌을 배우려 했고, 공부에 몰입하다가 문득 삼매경에 빠져 버린 적도 가끔 있었다. ...

아마 대학교 3학년 때일 거예요. 지구에 대해 공부하는 과목을 들었는데, 정말 재미있었어요. 학기물 시험이 다가왔는데, 어찌나 공부가 재미있던지 그게 시험으로 이러진다는 생각을 전혀 못했어요. 관련된 내용을 다 아는데, 뭐 시험이 따로 필요하겠어요? 시험 할아버지가 와도 상관이 없지요. 나는 시험 문제를 어떻게 냈는지 너무나 궁금해서 기다릴 수가 없을 정도였어요. 시험을 볼 때 조차도 너무나 궁금해서 기다릴 수가 없을 정도였어요. 시험을 볼때조차도 너무 신나고 재미있어서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어요. 일사천리 일필휘지로 내가 아는 내용을 정리했지요...

이런 일을 겪으면서 우리 육체는 그토록 번거롭다는 생각을 또 한번 하게 되었어요. 그냥 보고 듣고 느끼며 좋아하는 게 더 중요한데, 대개의 형식은 오히려 그걸 차단하는 쪽이잖아요...이러한 몰입 능력은 과학자로서의 창조력과 상상력을 샘솟게 하는 원천인 동시에 다른 분야에도 비슷한 효과를 발휘한다.

 

p84

천신만고 끝에 함께 일할 사람을 구하긴 했는데, 아이고 이 사람마저 얼마 있다가 달아나 버렸어요

한동한 무척 의기소침했다고 한다. 그러나 다시 힘을 내었다.

다른 도리가 없었어요. 거기서 포기할 수는 없는 일 아니에요?

나머지 절반의 일도 혼자서 꾸려 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좋아 기꺼이 그 일도 다 해내고 말겠어 하고 다짐했지요

 

p88

이렇게 뛰어난 젊은이들을 코넬대학으로 불러모은 구심점에는 그들의 지도교수인 롤린스 에머슨이 있었다. 그는 당시 옥수수 유전학 분야의 최고 권위자로 식물교배학과의 학과장이자 동시에 대학원장이었다. 아울러 학생들에게는 마음으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는 참으로 훌륭한 지도교수이기도 했다. 그 밑에서 모두들 지독한 훈련을 받았지만, 이들의 실험실에 대한 열정과 개방성이 유지될 수 있었던 까닭은 오직 하나, 지도교수 에머슨의 고매한 인품 덕분이었다.

 

p91

모드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학문을 하는 사람들 역시 자기가 관심 있는 대상이나 함께 지내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나름대로의 세계관을 만들어 간다. 사람들은 각자의 성향에 따라 관심거리가 서로 다르게 마련이다. 마르쿠스 로우즈는 항상 마음이 열려 있었으며, 매사에 너그럽고 참으로 수더분한 성품의 소유자 였다.

 

p95

로우즈과 비들, 이들에게 코넬대학은 앞으로의 성공과 출세를 보장하는 첫 단추와도 같은 것이었다. 젊은 시절을 다 바쳐 코넬에서 쌓은 훈련이 그들에게는 이제 곧 유능한 학자로 이름을 얻고 야심차게 출세가도를 달리기 위한 전제 조건인 셈이었다. 그러나 바바라 매클린톡에게는 그런 식의 구첵적 계획이 전혀 없었다. 앞으로 뭐가 되겠다는 생각이 전혀 없이 그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열심히 했을 따름이었다. 앞으로 어떤 활돌을 한다는 생각이 도무지 살에 닿게 다가오지를 않았던 것이다.

 

p124

나는 세포를 관찰할 때면 현미경을 타고 내려가서 세포속으로 들어가거든, 거기서 빙 둘러보는 거야

 

p126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너무나 좋았어요. 그래서 이른 새벽부터 눈을 뜨면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지를 못한 채 바로 뛰쳐나가곤 했답니다. 유전학을 하는 내 친구 하나는 나더러 꼭 유치원 애들 같아고, 유치원 가는게 하도 좋아서 잠도  못 자고 설레는 어린아이 같다고 놀려댔어요...

그때는 걱정이 딱 하나밖에 없었어요. 혹시라도 사고가 나서 일찍 죽으면 어떡하나, 그러면 내 실험 결과를 못 보고 죽을 텐데, 그럼 어떡하나 싶더라고요....

오로지 내가 몰두하는 실험밖에 다른 생각이 없었어요.....

몇 년이 더 흘러 30대 중반을 훌쩍 넘은 다음에야 그녀는 현실적인 문제에 직면했다고 한다. 어느날 아침 눈을 떴는데, 몸시 억울하고 답답한 마음이 들더라는 것이다.

세상에! 이건 정말 너무하구나, 여자라는 이류로 이렇게 아무 대가도 얻지 못할 수가 있단 말인가?

 

p154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고 그에 마땅한 대접을 받기는 커녕, 오히려 소외당하고 냉대를 받는 불행한 시절이었지만, 그녀는 나름대로 이를 보상하고도 남을 정신적 희열로 하루하루 충만한 삶을 사는 독특한 생활양식을 개발할 수 있었다. 아인슈타인이 말하는 "안온하고 편안한 일상적 삶의 굴레 안에서는 결코 맛볼 수 없는 고요와 평온함"을 그녀는 은밀하게 즐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번잡한 인간관계를 피해 한 조각 자연과 내밀하게 소통하면서, 거기서 맛보는 희열을 벗삼아 고달픈 세월을 통과하는 그녀만의 독특한 방식이었다.

그리고 또하나 이러한 체험을 통해 그녀는 독특한 자기긍정, 가기 확신을 획득했다고 말할 수 있다.

 

p174

그것은 아무리 사소한 것도 그냥 보아 넘기지 않는 과학자로서의 탁월한 자질이었다. 염색체에서 일어나는 모든 변화를 그렇게도 철두철미하게 관찰하는 지독한 끈기, 이를 통해 그녀는 말그대로 이분야의 최고가 될 수 있었다. 훌륭한 남자들은 매클린톡이 사소하고 편중된 분야에 빠져 있다고 지적했지만, 그녀가 끈질기게 추구한 것은 협소한 분야에의 몰입 그 자체는 결코 아니었다. 그녀에게는 사소한 것에 대한 몰두가 곧 생명 전체의 이해를 위한 작업이었다.

생명에 대한 온전한 이해 이말에 담긴 각별한 의미는 바바라 매클린콕이 수행하는 과학의 핵심이다. 매클린콕에게는 아주 조그만 흔적 하나가 그 생명 전체를 이해하는 단서였다. 깊이 들어가다 보면 결국 전체의 모습이 드러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p177

매클린톡은, 사람의 마음은 우리가 실제 의식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일을 할 수 있다고 얘기한다...

나 자신에 대한 신뢰를 회복했다는 일종의 안도감과도 같았어요. 마음이라는 컴퓨터가 하는 일, 그게 정확하다는 믿음을 확인하는 일이었지요...

그녀가 열심히 하는 일은 옥수수 조직에서 보이는 가는 줄무늬와 열성형질이 발현된 결과를 꼼꼼히 관찰하는 것이고, 나머지는 모두 그녀의 컴퓨터가 알아서 한다는 것이다. ...

여기서 그녀가 하는 이야기의 핵심은, 그런 판단을 하는 그녀의 마음 상태, 즉 추호의 동요도 일지 않는 자신에 대한 깊은 신뢰였다.

 

p178

매클린톡은 대학원 시절부터 실험실에서 가장 힘들고 까다로운 작업을 도맡아 했다. 아무리 고역스러운 일도 언제나 몸소 해치우는식이었다. 연륜이 쌓이다 보면 대부분 판에 박힌 일이나 궂은 일은 조교들에게 시키게 마련인데, 그녀는 결코 그러지 않았다. 늘 초보자처럼 모든 일을 끙끙거리며 혼자 해냈다. 그건 정말 예외적인 일이다.

 

p181

그런 믿음은 아마도 그녀가 몰두했던 옥수수에 대한 내밀하고 온전한 지식에서 유래할 것이다. 그녀는 밭에 있는 옥수수 한 그루 한 그루를 빠짐없이 알고 있었다. 오죽하면 어떤 동료하나는 매클린톡은 자신이 연구하고 있는 모든 옥수수의 생활기록부를 쓸 수 있을 거라는 얘기를 했다. 아울러 매클린톡은 가늠할 수 없는 마음의 작용을 믿고 있었다. 그녀는 옥수수라는 생명이 벌이는 복잡하고 오묘한 활동을 볼 줄 알았고, 더욱이 마음의 눈으로 바라본 사실들을 온전히 받아들였다. 자신의 믿음이 혹시라도 균형을 잃을까 봐 주의 깊게 살피면서, 옥수수라는 생명과 소통하는 자신의 감각을 깊이 신뢰한 것이다.

 

p201

이런 일은 그래요. 죽을힘을 다해 매달려도 문제 자체가 납득되지 않는 경우에는 무엇보다 자기 자신의 문제부터 풀어야 해요. 그러면 저절로 답이 보여요. 그러면 문제가 언제 풀리는지도 알 수 있어요. 자기 자신의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것은 뭘까요. 우리가 어떤 난관에 봉착했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이 문제인지, 왜 지금 문제를 파악하지 못하는지 알아내는 거예요.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먼저 성찰해야 해요. 그런데 사람들은 보통 그렇게들 하지 않지요. 글쎄요. 그때 나 자신에 대해서 어떤 질문을 했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네요. 한 가지 확실한 건 실험실을 벗어나 밖으로 좀 나가 보자는 거였요. ..그리고는 내가 무엇 때문에 문제를 풀지 못하는지 먼저 그 이유를 찾기 시작했어요....

덧붙여 알게 된 것은, 내가 그 일에 빠져들수록 점점 더 염색체가 커지더라는 사실에에요. 그리고 정말로 거기에 몰두했을때, 나는 염색체 바깥에 있지 않았어요. 그 안에 있었어요. 그들의 시스템속에서 그들과 함께 움직였지요. 내가 그 속에 들어가 있으니 모든게 다 크게 보일 수 밖에 없죠...

지극한 마음으로 바라복 있노라면 그들이 나의 일부가 되지요. 그러면 나 자신은 잊어버려요. 그래요, 그게 중요해요, 나 자신을 완전히 잊어버리는 거 말이에요. 거기에는 더 이상 내가 없어요...

나라는 자의식이 없어진다는 얘기였다. 그렇다. 예술가나 시인, 진정으로 사랑에 빠진 남녀 혹은 신비주의자들도 이런 상태를 즐겨 노래했다. 진정한 앎이란 이러한 자기 해체를 통해 이루어진다고 말이다.그에 비해 과학에서는 주체와 객체의 확연한 분리를 통해 지식을 구하는 게 상식인데, 매클린톡은 오히려 이렇게 엄격한 분리가 아니라 온전한 합체를 통해 더욱 진정한 지식이 가능하다고 생각한것이다. ....

과학에서도 정말로 핵심을 관통하는지식은 주체와 객체의 엄격한 분리가 아니라 오히려 일체를 통해 그러니까 수동적 대상인 객체가 능동적 존재인 주체 안으로 온전히 흡수되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경우가 많다.

 

p233

발생학의 입장은 유전학과 중요한 차이가 있었다. 확정 현상이 어떤 식으로 벌어지든, 생명체가 발생하는 과정을 이해하는 열쇠는 결코 유전자 그 자체가 아니라는 얘기였다. 즉, 생명체 발생은 어느 순간에도 생명이라는 시스템이 하나의 단위로 함께 작용을 한다는 것이 발생학의 입장이었다.

 

p240

어떤 일을 앞두고 마음이 불안하면 그만큼 열심히 준비를 하게 마련이다. 매클린톡 역시 6년간의 작업을 정리해 발표하는 행사이니 만큼 무척 정성껏 준비했고 모든 상황에 철저하게 대비했다. 그런 까닭에 자신의 발표가 그렇게 묵살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p241

긴 시점에서 볼 때 매클린톡처럼 자신의 일이나 삶에 대해 확고한 믿음을 가진 사람은 끝까지 기다리며 자신의 말을 들어 줄 사람이 있을 거라는 믿음 또한 확고하다. 그러한 믿음이 없으면 자신의 방식을 고집할 수가 없을 것이다. 시작한 일을 마치기 위해서라도 그런 믿음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p244

1951년 심포지엄에서의 낭패 이후 모든 것이 달라져 버렸다. 유전학 분야에서 왕따를 당한 사건은 그녀의 학문적인 활동뿐아리라 정신적인 기반에까지 침투했고, 이는 예상치 못한 차원으로 비약되기 시작했다. 학계에서 따돌림을 당하면서도 매클린톡은 한 10년가량 자신의 작업이 갖는 의미를 설명하느라 나름대로 모색을 해 보았지만 결국 모든 시도는 허사가 되고 말았다. 그 결과 언제부턴가 아예 입을 다물어 버린다. ...이후 매클린톡은 점점 더 위축되어칩거상태로 들어간 채 자신의 일에만 빠져든다. 그 대신 점점 더 충실하게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더욱더더 올곧은 길 만을 향해 한발한발 걸어나갔다....

이 무렵에 시작된 고통스러운 세월에 대해 매클린톡은 한결 경쾌한 해석을 한다.

뭐 그런대로 괜찮았어요

언제부턴가 그녀는 유전학 분야에서 따돌림을 당하기 시작했고, 누구도 그녀가 하는 작업에 대해서는 듣고 싶어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시간이 더 흐른 후 매클린톡은 이런 상황 자체를 진심으로 기꺼워하기 시작했다.

참 다행이다 싶었어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얘기만 즐겨하거든요. 자기들의 일과 자기들이 얼마나 훌륭하게 그 일을 해냈는지 얘기하는데, 나는 드디어 귀 기울여 듣는 법을 익히게 되었었요. 그 무렵에 나는 정말 열심히 듣는 법을 배웠어요...

가만히 앉아서 공짜로 공부하는 셈이었어요. 너무나 좋은 기회 였지요. 더욱 좋은 일은, 남의 얘기를 잘 듣는 연습을 할 수 있었다는 점이에요. 남의 말을 경청하는 일은 생각처럼 쉬운게 아니거든요

 

p250

다위의 전통을 계승하는 진화혼에서 가정하는 기본 명제는 유전적 변이형의 출현은 절대 우연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매클린톡은 지금, 유전적 변화가 생명체로부터 모종의 조절을 받는다는 얘기를 하고 있으니, 이는 진화론의 기본 전제를 거스르는 주장이었다.

 

p252

과학에서도 특히 새로운 원리나 법칙을 발견하는 과정에는 이런식의 요소, 즉 이성을 초월하고 논리를 초월하는 정신능력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은 널리 알려져 있다. 이와 관련해 아인슈타인의 유명한 얘기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가장 기본이 되는 자연 법칙은 결고 머리로 알아내는 게 아니다. 그건 그냥, 살면서 깨달은 진리와 함꼐 직감적으로 알아채곤 하는 것이다.

 

p254

어느날 다이슨은 드디어 파인만의 논거를 알아차렸다. 그의 말을 간신히 알아들은 다이슨은 왜 그의 말이 그토록 알아듣기 어려웠는지 간파할 수 있었다. 당시의 상황을 다이슨은 이렇게 피력했다.

파인만의 이론이 다른 물리학자들에게 그토록 알아듣기 어려운 이유는 분명했다. 파인만은 수학공식을 전혀 사용하지 않은 것이다. 그는 모든 문제를 머릿속에서 풀어 버렸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그림이 너무나 선명해서 공식을 적용하며 확인할 필요조차 없었던 것이다. 파인만은 잣니이 연구하는 물리 현상을 언제나 하나의 그림으로 파악했다. 그리고는 이를 요약하는 간결한 공식으로 답을 얻곤했다. 대부분의 물리학자는 평생을 수학공식에 매달려 산다. 어려운 수학공식에 매달려 끙끙거리는 물리학자들을 파인만은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들 대부분은 분석적인 사고로 사물을 나누어 보는 데 비해, 파인만은 전체적인 시각에서 사물을 종합했기 때문이다.

 

p257

아는 만큼 보이기 때문에, 더 많이 알면 알수록 더 잘 보인다.

 

p257

깊은 성찰과 묵상을 통해 깨달음에 이르는 이야기는 더 이상 희귀한 게 아니지만, 매클린톡의 경우는 단순한 종교적 깨달음의 차원을 넘어선다. 마음의 눈만이 아니라 실제의 눈으로도 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훨씬 더 강력하다. 그녀는 몸과 마음의 눈이 일치해 함께 보기 때문에 자신의 체험을 일상적인 언어로 설명해내기가 그만큼 더 힘들었던 것이다. 매클린톡은 참으로 오랜 세월을 이 일에 몰두 하면서, 자신의 작업을 몸과 마음으로 함께 느끼는 일이라고 불렀다....

매클린톡은 옥수수 밭에서 무럭무럭 자라는 식물을 바라보면서, 그 이파리와 열매에 생기는 얼룩무늬를 헤아리면서, 그리고 현미경 속에 전개되는 염색체의 구조 변화를 관찰하면서 자연이 만들어내는 질소의 결에 자신의 호흡을 일치시키곤 했다. 대자연을 교재로 몸과 마음의 눈으로 함께 보고 읽어내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p259

루돌프 아른하임은 <예술과 시각>이라는 불후의 명저에에 다음과 같은 점을 강조한다.

인간의 감각이 바깥 세상의 이미지를 받아들여 그 형상을 새기고 이를 해석하는 데는 의식의 차원과 무의식의 차원이 함께 작용한다. 이때 무의식은 지각할 수 있는 대상들에 대한 의식적 차원의 반성 없이는 우리의 경험을 받아들일 수 없다. 의식과 무의식은 결고 별개로 작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물을 보는 일에는 모종의 주관적 요소가 내재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무언가를 보는 능동적 행동, 즉 일종의 그림을 만드는 행위가 개입되며 보는 자의 고유한 방식이 반드시 전제되기에 어떤 사람도 각자의 관점을 완전히 벗어난채 어떤 사물을 볼 수는 없다는 설명이다. 이렇듯 어떤 사물을 본 후 산출된 결과는 주관적인 시각의 내면적 요소로 규정되므로 완전히 객관적이고 가치중립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자료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주관적인 시점으로 인한 민감한 차이가 일상에까지 문제가 되는 일은 거의 없다. 어떤 일을 함께 도모하는 정도의 일상적 차원에서 사람들은 대략 서로 소통할 수 있는 공동의 시각을 충분히 공유하고 있기때문이다.

그에 비해 과학과 예술의 영역에서는  주관성과 객관성의 경계가 한결 모호하고 까다롭다. 두 분야 모두 일상적 시각으로는 포착할 수 없는 미묘한 현상들에 관심을 갖기 때문에 이런 현상을 감지할 수 있는 내면적 응시가 요구된다.

내면적 응시를 통한 원리의 깨침. 이는 결코 한낱 비유적 표현에 그치는 말이 아니다. 이는 과학의 현장에서 실제로 필요한 구체적인 능력으로, 과학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창조적 순간에는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각별한 집중력이다 <과학적 상상력>이라는 책을 통해 이와 관련된 주제를 다룬 제랄드 홀튼은 노벨상을 받은 두 사람의 물리학자 로버트 밀리컨과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창조적인 작업 과정에 그들 자신의 고유한 시각이 어떻게 작용했는지를 간파하고 이를 흥미롭게 묘사했다.

홀튼의 해석에 따르면 밀리컨이 전자를 발견한 과정은 성토마스가 대천사를 알현한 것과 비슷하고 장 페랭이 원자를 본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들에게는 도대체 어떤 공통점이 있는 것일까? 밀리컨이 사물을 연구한 방버 중 홀튼이 지적한 다음의 세가지 중요한 특성을 살펴본다면 그 의미가 좀더 명확해질 것이다.

첫째, 자신의 눈앞에 벌어지는 사건을 아주 신선하고 맑은 눈으로 바라본다.

둘째, 자신이 본 사건을 탁월한 상상력으로 정교하게 시각화시켜 결론을 유도한다.

셋째, 이 모든 방법론의 배후에는 명백하게 인정되지도 확실하게 부석되지도 않은 이론이 미리 상정되어 있다. 이 이론은 그가 눈으로 관찰하고 해석한 전기적 현사에 바탕을 두고 있다....

수학에서 다루는 도형들도 우리의 감각으로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대상들과 전혀 다르지 않다. ...

매클린톡은 실험재료가 가진 속성을 발견하는 과정뿐 아니라 그 단서를 찾아내고 또 이를 확증하는 방식 역시 보는 일에 의지했다. 이 점에서 그녀의 작업 방식은 예술가의 그것과 닮은꼴이다. 어찌 보면 그녀의 작업이나 예술가들의 활동은 모두 매우 주관적인 시각으로 진행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냥 거기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이들 작업의 성패 여부는, 그들의 주관적 시건이 나름대로 얼마나 보편성을 갖는지에 달려 있다. 즉 많은 사람들이 그동안 미쳐 깨닫지 못했던 새로운 감흥을 느끼면서 그들의 독특한 감각을 공유할 수 있어야만 성공할 수 있는 것이다.

 

p275

물리학의 전통은 원래 복잡한 사물의 양상을 단순한 양식으로 축약하는 것이어서, 이 훈련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아무리 현란한 대자연의 신비라도 주변적인 현상을 삭제한 채 핵심 요소만을 간결하게 뽑아내는 데 선수였다.

 

p302

매클린톡은 이를 일종의 선입견 때문이라고 이해했다. 특정 개념에 생각이 묶여 있는 까닭에 아무리 구체적인 사례를 제시한다 해도, 밝은 눈과 맑은 정신으로 그걸 읽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선입견은 무의식의 차원에서 작용하면서, 가능한 일과 그렇지 못한 일로 사태를 미리 갈라놓는 위력이 있다. 그래서 아무리 논리적으로 명백한 모순이 눈앞에 드러나도 그걸 제대로 볼 수가 없는 것이다. ...

전문서적에 파묻펴 산 세월이 길면 길수록, 심오한 강연에 귀 기울인 경륜이 깊어질수록 자신들이 갖고 있는 선입견의 정체를 깨닫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가 그만큼 더 어렵다느 사실을 알게 된다. ...똑같은 자료라도 그것을 해석하는 방식은 변할 수 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매클린톡의 생각에 그중에서도 가장 위험한 것으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이 전부인 줄만 알고 그걸 통해서 모든 현상을 설명하려는 우매함이었다.

 

p303

생명체 안에서는 온갖 멋진 일이 다 일어나요. 너무나도 기가 막힌 현상들이 얼마든지 벌어집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을 다 해낼 뿐아니라, 우리 생각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고 훌륭한 방법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 무한한 가능성을 몇가지 원리로 뭉뚱그려 놓을 수는 없는 거지요.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중앙 통제론...그런 식의 만병통치약을 없느니까요...어떤 분야든 마찬가지다 새로운 시야를 개척해 가는 탐구자들에게 가장 커다란 도전은 자기 스스로의 선입견이 가로막는 한계로 부터 벗어나는 작업이다. 자신의 시야를 가로막는 스스로의 선입견, 이를 떨쳐내지 못한다면 눈앞에 벌어진 실제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

많은 경우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 답을 이끌어낼 뿐이라는 느낌이 들어요.

마음속에다 이미 정답들을 정해 놓은 채, 그걸 찾아 사물을 추적할 따름이에요. 이런 까닭에 엉뚱한 결과가 나왔을 경우 절대로 사물의 이야기를 듣지 않지요. 행여 그런 말을 들었다 햐도, 잘못 들을 것이려니 하며 얼른 귀를 닫아 버리죠. 정말 중요한 것 사물이 말하는 그대로를 가감없이 귀 기울일 줄 알아야 한다는 거예요

 

p305

그녀는 이제 더이상의 노력은 무의미한 일이라고 확신하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세월은 흘렀고 그녀의 연구는 계속되었다. 언제나처럼 그녀의 공부는 삶을 지탱하고 위로를 얻는 힘의 원천이었다. 동료들로부터는 냉담한 반응을 받는다 해도 자기 스스로 깨우치는 새로운 지식에 대한 기쁨 자체가 그녀에겐 커다른 보상이었다.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다. 정말로 열심히 그리고 정성스럽게 들여다보면 아무리 조그만 생명체라도 자신의 비밀을 가르쳐 준다느 사실을 말이다. 아무리 작은 생명체라도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정확히 만들어낸다. 모든 생명체는 나름대로 각 특성을 가능케 하는 유전형질과 그 기능들이 드러나도록 이를 조정하는 기계적인 원리를 다양하게 진화시켰으니, 그 사연을 알아내려면 진정 열심히 귀 기울여야한다는 것이다 .

 

p309

생명의 기적은 그러하다. 번번이 엉뚱한 자리에서 우리의 허를 찌르고 다시금 경탄을 하게 만드는 신비로움이 역동을 치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과학의 위대함을 이러하다. 선입견 때문에 절대로 다른 것을 인정할 수 없을 것 같던 상황에서도, 자연의 놀라운 현상을 포착해내는 감수성 덕분에 모든 난관을 이겨낼 수 있는 것이다.

 

p324

아무리 그녀의 견해를 비난하고 조롱거리로 만든다고 해도 매클린톡의 주장을 모두 묵살할 수는 없는 형편이 되고 말았다. 유전자는 결코 견고하고 안정적인 상태가 아니라 이른바 역동적인 평형 상태를 유지하는 아주 복잡한 구조라는 사실이 너무나 자명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리이동이 가능한 유전인자, 이들은 모두 같은 구조로서 지극히 단순한 하등생물부터 고등생물에 이르기까지 대단히 공통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결코 독단적으로 활동하는 법이 없고 또한 그 현상이 애매모호한 경우도 절대로 없다.

 

p327

과학을 하는 사람은 운명적으로 기존에 알려진 어떤 이론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낯선 상황들에 봉착하게 마련이다. 이때 과학은 어떤 제약도 설정하지 않은 채 가능한 모든 시도를 허용해야 한다. 이는 과학의 본질과도 상통한다. 전혀 다른 방향에서 새로운 시각으로 사물을 대할 줄 알아야 한다. 기존에 고수해 왔던 방식을 포기하고 전혀 예상치 않은 방법으로 자연의 질서에 다가갈 수 있기 위해서는 과학의 중심으로 연결되는 다양한 통로를 언제라도 열어 두어야한다. ...

그녀의 작업에는 과학자 개인이 자연에 대해 어떤 마음을 갖느냐에 따라 완전히 상이한 방식으로 사물을 보는 일이 가능하며, 과학적 성과물의 성격도 전혀 달라질 수있다는 점을 극명하게 드러난다. 어떻게 매클린톡은 다른 동료들보다 더 멀리 그리고 더 깊이 유전학의 신비 속으로 빠져들곤 했던 것일까?

그녀의 답은 간결하다. 언제나 똑같은 대답을 한다. 충분히 시간을 갖고 열심히 들여다보면서 '대상이 하는 말을 귀 기울여 들을 주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나에게 와서 스스로 얘기하도록 마음을 열고 들으라는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생명에 대한 느낌을 개발하는 일이며, 생명이 어떻게 자라는지를 깨우쳐야 하며, 생명의 각부분을 빠짐없이 헤아릴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식물도 두 그루가 똑같은 경우는 절대 없어요. 모두가 다르거든요. 그런 차이 서로의 다름을 알아야해요...

생명과의 교감을 통한 생명의 느낌은 문자 그대로 그녀의 시각을 확장시켰다 그뿐 아니라 가까운 동료나 학문적 성취를 통해서는 맛볼 수 없는 특별한 위로가 되었으며, 평생토록 그녀의 외롭고 고단한 삶을 지켜 주었다. 모순된 말처럼 들리지만 자연과학 역시 감정적 몰입 없이는 훌륭한 결과를 산출할 수 없다. 감정적으로 몰입한 상태가 아니라면 기나긴 세월동안 그토록 혹독한 조건 속에서 묵묵히 작업을 수행하는 힘과 투지가 도저히 나올 수 없다. 아인슈타인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하늘의 별들과 우주의 조화, 이 세상 삼라만상이 펼쳐진 오묘한 신비, 그 놀라운 활동의 원리를 이성의 힘으로 캐내고자 케플러와 뉴턴은 오랜 세월 외로운 작업에 몰두했다. 이들이 품고있던 간절한 열망의 깊이는 과연 어느 정도였을까?

그에 비해 매클린톡이 획득했던 생명의 느낌은 훌륭한 남성과학자들의 경우와 상당한 차이가 있다. 이 세상 삼라만상의 오묘한 원리를 이성의 힘에 의존해 캐낸 결과가 이었으니까 말이다. 매클린톡의 열망은 이성뿐 아니라 그 이상의 열정까지 다 쏟아서 태초부터의 세상을 끌어안고 삼라만상의 원리 너머까지 몽땅 이해하고픈 열망이었다. ....

모든 생명체는 나른대로 삶의 양식이 있고 나름대로의 질서가 있지만, 과학자들은 오로지 그 일부만을 살펴볼 수 있을 뿐이다. 아무리 머리를 짜서 흉내낸다 해도 생명체의 놀라운 능력을 온전히 따라갈 수는 없다. 스스로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생명력을 흉내낸 작품을 고안할 수는 없는 것이다....자연의 끝없는 창조력에 비해 우리의 과학 지식은 너무나 볼품이 없다. ....

인간의 욕심대로 자연을 조절할 수 있는 게아니거든요.

그러고 보면 정말로 황당한 것은 생명의 놀라운 힘을 그토록 얕잡아 보는 우리 인간의 경박함이다. 예컨대 식물이 얼마나 능동적으로 환경에 적응하고 유연하게 대처하늕,우리는 충분히 주목하지 못하고 있다.

 

p332

우리는 대개 그 분야에 관심이 있고 필요가 있어야 어떤 능력을 계발하게 된다. 자기가 관심을 두는 분야는 유난히 눈에 잘 들어어는 법이다. 다른 사람의 눈에는 띄지 않ㅈ만, 내눈에는 그것만 보이게 된다. ...

바바라 매클린톡에게는 생명 그 자체가 대단히 중요한 하나의 화두였다. 그건 그냥 단순하게 식물이나 동물을 의미하는게 아니라 살아 있음을 총칭이며 그게 곧 나일 수 있는  모든 대상의 이름이었다. 그래서 생명르 이루는 모든 요소는 다시 그 자체로 소중한 생명인 것이다.

 

p333

오늘날 분자생물학에서 규정한 법칙을 어기는 예외적 현상들,...자연의 질서와 어긋나는 상황일 수 없다. ...생명의 기본 단위인 세포, 그리고 이들이 모여 독립된 활동을 영위하는 생명체는 모두 독특한 짜임새를 갖고 있어서, 그 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제 멋대로 벌어지는 일은 있을 수 없다. ...

아인슈타인은 "오로지 직관과 마음의 공명을 통해서만 이러한 법칙에 도달할 수 있다. 특별한 작품은 머릿속에서 정교하게 끼워 맞춘 결과로 생산되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것은 가슴에서 곧장 튀어나온다.

 

p334

자연에 대한 깊은 경외심, 이제 곧 알게 될 내용들과 하나가 되는 능력, 이런 것들은 엄격한 논리와 이성적 판단으로 무장된 통상적 과학의 방식과는 상당히 다른 면모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과학의 전통을 살펴보면 이렇게 상방된 두 가지 모습은 사실상 언제나 공존했다. 자연과 하나가 되는 경험은 신비주의 전통에서는 대단히 익숙한 개념이었다. 아울러 자연의 질서를 이루는 근원적 신비는 언제나 과학에서 새로운 발견을 이루는 과정에 중요한 몫을 차지해 왔다. ..

과학의 방식은 사물의 관계를 꼼꼼하게 따지는데 요긴합니다. 견고하게 믿을 만한 방법이지요. 그러나 그게 곧 진리는 결코 아닙니다.

더욱이 서구 중심의 과학적 방법이 자연의 섭리를 깨우치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라는 것이, 평생토록 깨닫는 데는 과학이라 부르는 방식 말고도 얼마든지 요긴하고 믿을 만한 방식이 여럿 있다는 것이 매클린톡의 변치 않는 신념이었다.

 

p335

티베트 승려들의 수행중에서 특별히 그녀의 관심을 끈 것은 두가지 였다. 하나는 이른바 달리는 승려단의 수행법으로 이들은 하루 종일 달음질을 해도 피곤한 기색이 없다고 한다. 그녀가 어렸을적에 혼자서 개발한 날 듯이 달리는 방법과 너무나 똑같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자신의 체온을 조절하는 방법이었다. ....신체적 기능들도 역시 마음의 영향으로 조절이 가능하다는 점을 믿게 되었다.

 

p338

양자역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닐스 보어는 더욱 선명하게 이런 점을 이야기한다.

양자이론을 통해 깨달은 중요한 사실은 생명과 우주의 실존적 드라마에서 배우와 관객의 입장을 온전히 설정하려면, 우리는 결국 부처나 노자와 같은 동양의 사상가들이 간파한 인식론적 깨우침의 문제에 직면한다는 점이다.

 

p339

정확하게 어느 정도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녀는 대상과의 일체감을 강렬하게 느낄 수 있는 능력을 계발해 왔다.

일체 만물은 근본적으로 하나입니다. 두 가지 대상을 정확하게 나누는 금을 긋기란 사실상 불가능하죠. 보통은 이런 식의 금을 긋고 살게 되지만, 이런 경계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거든요. 그러나 우리의 교육을 보면 계속해서 이런 금긋기의 연속이에요. 실제로는 없는 금을 여기저기 그어대도록 가르칩니다. ...

어떤 사물을 표현할 적에 예술가뿐 아니라 과학자에게도 중요한 것은 눈앞에 있는 대상에다 영성을 입히는 일이다. 함께 나눌 수 있는 생명력을 부여하는 것. 일체감을 느끼며 서로 통하는 그런 작업 말이다....

동시에 그녀는 과학자로서 이러한 확신이 있다. 대상과의 일체감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렇게 하는 과학은 결코 온전할 수가 없다는 것, 그것은 자연을 조각 내서 그 부분만 이해하는 행위일 뿐 아니라 나아가 자연을 조각 내는 버릇만 키우게 될 뿐이라는 것이다.

 

p342

늘 충분한 시간을 갖고 관찰하라. ...

이런 점에서 그녀는 운이 좋은 편이다. 느릿느릿 작동하는 기술을 응용했고, 천천히 성장하는 생명을 연구했다. 그녀가 작업을 하던 시절에도 옥수수는 사람들이 즐겨 쓰는 재료가 아니었다. 기껏해야 1년에 두차례 수확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매클린톡은 얼마 동안 그렇게 일하다가 나중에는 오히려 1년에 한 차례만 심는 쪽으로 작업의 속도를 더 늦추었다. 모든 현상을 제대로 관찰하려면 1년에 한 번만 수확하는 것도 벅차다는 결론이었다. ....

매클린톡은 이런 상황도 좀더 긴 안목과 긴 호흡으로 보자고 한다. 자연은 결국 자기네처럼 소통이 가능한 과학자들의 편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

특정한 답을 찾아내기 위해 자연을 사육하거나 추적하는 식이 아니라, 인내심과 공경심으로 생명의 다양성과 복잡성을 살피는 생물학의 전통을 반드시 회복해야 한다는 시념이었다.

유전자는 돌덩이처럼 무감각하고 견고한 것이 아니라 그렇게도 유연하고 망가지기 쉬운 존재이며, 세포안에서 일어나는 복잡한 활동들이 얼마나 상호 의존적이며 조화롭게 통합되고 있는지를 올바르게 이해하려면 시각을 새롭게 하고 마음을 크게 열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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