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사람들이 개인적 현실을 직접 개선할 생각은 못하고 단지 그 결과물인 보이는 삶만을 개선시키려 발버둥치고 있다는 사실이 이상하지 않을 수 없다. ...같은 직장에 두 사람이 다닌다 해도 자신의 세상을 서로 완전히 다르게 볼 수 있다.
개인적 현실이 우리를 정의한다. 그것은 우리가 믿는 신념, 느끼는 감정, 각자 고유한 기억들, 그리고 평생에 걸친 경험과 관계들로 이루어져 있다. 어떤 이의 삶이 어떻게 펼쳐질지 이보다 더 결정적인 요소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진정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심각한 이해 부족 상태에서 삶을 만들어가고 있다.
삶을 개선하기 위해 그토록 많은 시간을 일에 쓰면서도, 정작 개인적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거의 시간을 쓰지 않는다는 사실...
악의 없음 harmlessness 이며 일체의 생명에까지 닿는 공감능력
당신이 느끼는 한계의 대부분은 실은 스스로 지워 놓은 것이다. 당신의 진면목을 알지 못한다면, 전해들은 신념들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오래된 상처를 핥기나 하고, 빛바랜 규칙에 길들여지고, 회의감과 자책감에 고통받을 뿐이다. 어떤 삶도 이들 한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당신이 글자를 배우기 전이라면, 그것은 무의미한 얼룩들에 불과하다. 읽는 법을 배운 뒤라야 비로소 의미가 부여되는 것이다.
육체가 우리의 생명유지 장치이자 개인적 탈것이며 거처인 마당에, 이에 대해 반감이 드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도대체 육체가 정신적 환영이라는 게 말이 되는가?
육체는 마음이 만들어낸 현실에 순응한다....유전자는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수많은 원인자 중 하나일 뿐이다.
메타현실이 오감으로 인지 될 수 없는 까닭은 그것이 어떤 모습도 어떤 장소도 아니기 때문이다.
연민, 탄력성, 있는 그대로 받아들ㄹ이기, 진리에 대한 관심, 방어적인 태도가 없음, 인지적 불협화음을 견디는 능력(일관성 없는 생각, 신념, 또는 태도를 견디는 능력), 감정적 불편함에 대한 참을성, 감사, 낮은 불안 수준, 진면목, 겸손
진짜 현실을 얻는 것은 어떤 과정이다. 그리고 그 시작은 일상의 환영에 대한 당신의 잘못된 신뢰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이다.
내 목표는 당신이 자기 육체를 바라보며 혼란스러워 하게끔 시비를 거는 것이 아니다. 나의 목표는 자신을 한계로 잡아끄는 모든 해석들로부터 당신을 해방시키는 것이다. 자신을 한계 지음으로써, 우리는 스스로 작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