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5월

(사주명리로 삶의 지도 그리기)다르게 살고 싶다_박장금

여행길 2018. 5. 11. 14:51

(사주명리로 삶의 지도 그리기)

다르게 살고 싶다_박장금_스로비_2017


p21

첫 강의에서 채운선생(예술의 달인, 호모 아르텍스의 저자)이 한 말은 내가 꿈꾸던 예술이 얼마나 삶과 분리된 것인가를 자각하게 했다.

위대한 예술가는 그들이 남김 작품 때문이 아니라 그 작품에 이르기까지의 과정때문에 위대한 거예요. 그들 역시 우리와 똑같이 고민하고 실패하고 절망하지만, 중요한 건 그 다음이에요. 그 순간에 그들이 어떻게 삶을 긍정하는지, 어떻게 장애물을 뛰어넘는지를 배워야 해요. 그들이 어떻게 세상과 만나고, 어떻게 세상을 느끼고, 어떻게 세상에게 말을 건네는지를 배워야 하는 거지요


과도한 꿈이 얼마나 일상을 비루하게 만드는가를 알게 되면 일상에 충실할 수 있다. 폐기는 기운을 안으로 수렴하는 일이다. 나만 잘나가야 한다는 마음을 접고 일상에 충실하기. 그러기 위해 자기 성찰이 필요하다. 그래야 금기인 폐기를 기를 수 있다.

그동안 내 머릿속을 채웠떤 스펙, 승진, 돈, 명예...이런 단어들이 사회가 주입한 욕망임을 깨닫는 순간 아차, 싶었다. 삶에 정답이 있는게 아니라 얼마든지 다른 삶을 구성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마치 신세계가 열리는 것 같았다. 늑대가 붉은 장막을 걷어내지 못한 것처럼 사회가 원하는 삶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바로 나였다. 붉은 장막을 알아차려 넘으면 거기에 자유가 있다.


 p27

갈수록 쌈닭이 돼가는 나에게 고미숙 선생은 무슨 문제가 있느냐고 물었다. "선생님...제가 수강생으로 온 지는 좀 됐지만 연구실 멤버로는 초년생인데 저에 대한 배려가 너무 없는 것 같아요" 이렇게 말하면 내말에 공감하면서 뭐가 힘드냐고 위로라도 해줄 줄 알았다. 그런데 전혀 예상치 못한 답변이 돌아왔다. "아니, 연구실에서 하고 싶은 공부하는데 더 부슨 배려가 필요한 거지?"

그 말을 듣는 순간 멍해졌다. 그렇지, 회사와 제도에서 벗어나 하고 싶은 공부를 맘껏 하는데 뭐가 더 필요하단 말인가. 그제야 주어진 현실은 외면하고 굳이 결핍을 찾으려는 나를 보았다. 언제부터 이런 결핍상태에 빠져 있었던 것일까?


p53

자연은 성과를 내기 위해 살지 않는다. 자연에는 정답이 없고 오행의 흐름만이 이어지니 삶에는 실수하고 배우고 다시 시작하는 과정만 있을 뿐이다.


낭송 동의보감 내경편_사계절의 리듬에 맞춰라

봄철 석 달은 싹이 돋는 시기이다. 천지가 모두 생동하고 만물이 자라난다. 밤에 잠자리에 들고 일찍 일어난다. 천천히 뜰을 거닐고 머리를 품고 몸을 편한하게 하여 마음의 의욕을 일으켜야 한다. 만물이 생겨나는 것을 도와주어야지 죽여서는 안 되고, 남에게 베풀되 빼앗지 말며, 상을 주어야지 벌을 주어서는 안 된다. 이것이 봄에 호응하는 일이니 봄의 양생법이다. 이것을 지키지 않으면 간이 상하고 여름이 되면 찬 기운으로 인한 병이 생기니 자라나는 힘이 적어진다.


p60

과도한 꿈이 얼마나 일상을 비루하게 만드는가를 알게 되면 일상에 충실할 수 있다. 폐기는 기운을 안으로 수렴하는 일이다. 나만 잘나가야 한다는 마음을 접고 일상에 충실하기. 그러기 위해 자기 성찰이 필요하다. 그래야 금기인 폐기를 기를 수 있다.


나아가는 과정이 곧 천간의 리듬을 경험하는 일이다. 봄의 전반기에 해당하는 '갑목'부터 겨울의 수반기인 '계수'까지 두루두루 경함하는 과정 자체가 천간을 자기 몸에 새기는 일이자 공부인 셈이다. 머릿속에 천간의 흐름이 그려지면 아무리 어려운 일을 시작하거나 일이 더뎌도 여유가 생긴다. 씨를 뿌리고 바로 열매를 딸 수 없음을 알기에 쓸데없이 욕심내지 않는다. 공부는 기다림이다. 자연의 리듬을 알면 막연한 기다림이 되지 않는다. 변화하는 모든 과정을 경험하면서 그때그때 시공간의 주인이 될 수 있다.

천간 :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

지지 :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혜


갑목 / 을목/ 병화 / 정화/ 무토 / 기토/ 경금/ 신금/ 임수/ 계수

자수 / 축토/ 인목 / 묘목/ 진토/ 사화 / 오화 / 미토 / 신금/ 유금/ 술토 / 해수


p74

하늘과 땅이 바깥에 있는 게 아니라 내 안에 있음을 알아가면서, 외부 척도에 휘둘리지 않고 자연인 나를 보게 한 진짜 공부와 만난 것이다.


p75

천간은 하늘이며 인간의 마음이다. 인간은 행동하려면 먼저 마음을 내야한다. 마음먹지 않고 저절로 되는 일은 없다. 그리고 마음을 냈으면 그것을 이루기 위한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런데도 우리는 시간을 내지 않으면서 결과만 얻고 싶어한다.


p76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쓰게 되나요?" 그들의 공통 질문이다. 고미숙 선생은 "글쓰기 비법 같은 건 없다"고 잘라 말한다. 그의 경우 글과 밥이 하나가 되는데 15년이 걸렸다고 한다. 그때까지 한달 벌어서 한달 쓰는 상태였지만 글쓰기 수련만은 치열하게 했단다. ..

그러니까 무언가를 바라고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과정이 곧 천간의 리듬을 경험하는 일이다. 봄의 전반기에 해당하는 '갑목'부터 겨울의 수반기인 '계수'까지 두루두루 경함하는 과정 자체가 천간을 자기 몸에 새기는 일이자 공부인 셈이다. 머릿속에 천간의 흐름이 그려지면 아무리 어려운 일을 시작하거나 일이 더뎌도 여유가 생긴다. 씨를 뿌리고 바로 열매를 딸 수 없음을 알기에 쓸데없이 욕심내지 않는다. 공부는 기다림이다. 자연의 리듬을 알면 막연한 기다림이 되지 않는다. 변화하는 모든 과정을 경험하면서 그때그때 시공간의 주인이 될 수 있다.


p81

연구실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면 자기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그런 모습을 솔직하게 인정하면 되는데 대부분 변명하기 급급하다. 그러다 관계는 다 깨지고 어느 순간 연구실에서 사라진다.

어린 H도 연구실 생활이 쉽지는 않았겠지만 자기를 굽히고 내세우지 않았다. 그게  H가 살아남은 이유이다. 서바이벌의 달인! ...

살아남기 위한 을목의 생명력은 자기 실속 챙기기로 드러난다. 명분이 중요한 갑목은 자신이 불리해도 솔직하게 의견을 말해서 문제를 해결하지만 을목은 실속이 우선이라 손해볼 것 같으면 입을 딱 다문다. 그러고 나서 감정을 억압한 것만 기억한다. 이럴 때 그 자리에서 정면충돌하지 못한 이유를 돌아보아야 억울함이 생기지 않는다. 이런 경우는 을목 뿐 아니라 모든 음간들에게 해당하니 잘 기억하기 바란다.


P85

병화가 나르시시즘에 빠지지 않으려면 꾸준히 자기를 성찰해야 한다. 발산하는 빛만큼 빈 곳을 성찰로 채우지 않으면 조절 능력을 상실할 수 있다. 병화의 능력은 자연이 준 것이다. 태양은 보상을 바라지 않는다. 오직 자신을 태울 뿐이고, 만물은 그 밝음으로 성장할 뿐이다. 그 원리를 이해하지 못한 병화는 존재감을 드러내다 끝내 재가 되어 소멸할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P87

정화 일간인 나는 감정이 폭발해서 수습이 안 될 때가 종종 있다. 상대방의 못마땅한 점을 참고 참다가 폭발하는 식이다. 명리를 공부하면서 나를 계속 관찰하다 알게 된 사실은, 상대방 때문에 화가 났다고 생각 했는데 나 자신에게 화가 난 경우가 더 많다는 점이다. 게다가 타인을 이해하는 노력없이 내 잣대만 들이대니 더더욱 소통될 리가 없었다

자기 일간과 나머지 일간은 정말 다르다. 서 있는 자리가 어디냐에 따라 보이는 풍경도 다른 법. 서로 다른 위치에서 바라보는 세상은 같지 않다. 이 점을 염두에 두어야 역지사지하는 마음이 열린다.


P93

변화의 시기를 알아차리기느 쉽지 않단. 가장 좋은 방법은 주변의 조언을 듣는 것이다. 운이 나쁘면 고집을 부린다. 아무리 주변에서 말해도 괜한 자존심을 부리면서 귀를 막는다. 이거야말로 가장 흉한 모양새다.


P100

계계 병존은 응축 이운이 이어져서 일의 속도가 느리고 장애가 자주 발생할 수 있다....

부정적일 땐 응축하는 힘을 과도하게 자기 것 챙기기나 정면 돌파하지 않고 잔머리를 굴리는 데 써버린다...

될 때까지 하는 태도가 바로 계수의 기질을 잘 보여주는 면이다. 새롭게 시작하려면 생명의 집약체인 씨앗이 필요하다. 그래서 계수는 남들이 알아주든 말든 끈기 있게 기본기를 다진다.

계수는 인생의 주기로 보면 노년기에 해당한다. 노인이 되면 체력은 떨어지지만 정신력은 고양된다. 하지만 나이가 든다고 누구나 지혜로운 노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고전 소설에 보면 자기 이익을 챙기는 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인색한 존재로 노파가 종종 등장한다.

계수의 힘을 지혜로 쓸 것인가 인색함으로 쓸 것인가. 선택권은 자신에게 있으니, 인생은 그 자체로 배움이다.


P101

사주명리에서 천간은 의식의 세계이고 지지는 몸에 새겨진 생리적인 리듬이다. 천간이 인간의 의지라면 지지는 인간이 처한 환경을 의미한다.


P112

사주에 진토가 있으면 용이 승천하듯 급작스러운 변화를 일으키거나 변화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갑자기 승진하거나 추락할 수도 있고, 삶이 변화무쌍하다. 생각하는 범주가 커서 현실 감각이 떨어져 보이지만, 남들이 시도하지 않는 큰 비전을 세우기 때문에 도약할 가능성도 크다.

진월에는 만물이 한껏 성장해서 겉모양새는 여름과 비슷하나 아직 여름은 오지 않았다. 스케일이 크고 화려한 겉과는 달리 속은 매우 조심스럽고 경게심이 많은 성정으로 나타난다.


P134

계절은 이미 여름(식상)을 지나 환절기(재성)인데 계속 봄(비겁)을 고집하면 봄(비겁)과 환절기(재성)가 충돌한다. 비겁의 고집은 대부분 자의식이 발동해 생기므로 자의식을 버려야 순환하는 흐름을 탈 수 있다.

비겁이 강한 사람은 독신인 경우가 많은데 존재감을 드러내기 좋아하고 주변에 늘 사람이 많기 때문에 외로움도 별로 타지 않는다.

비겁은 사람을 불러들이지만 경쟁과 나뭄 사이에 있다. 또 존재의 축인 일간과 같은 오행이여서 자기 힘이라 여긴 존재가 어느 순간 경쟁자로 돌변하기도 한다. 친구와 적을 구분하는 것은 자기 마음이다. 비겁을 잘 쓱 싶다면 열린 마음을 유지하자.


P135

물건이 없어지고 엉망이 되자 스트레스가 엄청났는데, 어느 날 '아, 이건 내 것이 아니구나'하고 깨달았다.

그러자 동생들이 물건을 마구 만져도 마음이 불편하지 않았다. 얼마나 시달렸으면 그런 생각을 했나 싶기도 한데, 한편으로는 독식하고 싶은 욕망이 얼마나 컸으면 그토록 신경을 썼나 싶다. ..겁재는 독식 할 수 ㅇ벗다. 대신 늘 나의 지원군이 있다는 걸 생각하자...

포용하는 마음이 커지면 경쟁자는 얼마든지 친구가 된다.


P107

축토는 목표가 확실하고 그걸 향해 가는 힘이 대단하나 요란하지 않다. 느려도 묵묵히 일하는 소처럼 축토는 자기만의 길을 뚜벅뚜벅 걸아가는 힘이다.


P146

양생이란 타고난 생명 에너지를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기술이다. '동의보감'에서는 양생을 위해 멀리해야 할 비결을 말한다. '양생에는 다섯 가지 어려움이 있다. 명예와 돈을 멀리하지 못하는 것이 첫째 어려움이며, 감정을 없애지 못하는 것이 둘째 어려움이며, 음악과 여색을 멀리 못하는 것이 셋째 어려움이며, 맛있는 음식을 절제하지 못하는 것이 넷째 어려움이며, 신이 허약하고 정이 흩어지는 것이 다섯째 어려움이다. 이 다섯 가지를 마음속에서 없앨 수 있다면 믿음이 날로 더해 가도 도와 덕이 날로 온전해지며, 선을 빌지 않아도 복이 있게 되고 장수를 바라자 않아도 저절로 오래 살게 되니, 이것이 양생의 요점이다. ...

필요이상으로 돈 욕심을 내면 타고난 생명력이 소진되어 병으로 이어진다. 재성에 머물지 말고 순환하는 길을 고민해야 한다.


P147

관성이 강한 사람은 수평적 관계가 아닌 수직적 관계를 중시하고, 주어진 현실이나 조직, 규범 가치 등 외적인 척도를 내면화하여 조직이나 관계에서 인정받고 싶어 한다. 이런 성향을 리더십으로 이러지지만 자칫 잘못하면 지배욕으로 흐를 수 있으며, 책임감이 강한 만큼 상대에게도 그런 태도를 바란다.


P163

변화를 거부하고 안주하거나 제멋대로 허세를 부리면 그 자체가 자살골이다. ..그만큼 살기 위해 운의 흐름을 이해해야 한다는 선현들의 절박한 심정이 드러난 게 아닐까. 결국 운을 제대로 타려면 자신과 전쟁을 벌여야 한다. 계속 변하는 운과 안정을 원하는 나의 끊임없는 대결! 그래서 운이란 변하는 흐름에 맞게 스스로 훈련하는 과정이다. ...

개운...

개천은 저절로 되는 게 아니라 물이 흐르는 이치르 알아야 개입할 수있다. 자연을 속속들이 관찰하고 이치를 알아야 내를 흐르게 할 수 있다.


P166

우리에겐 낯선 표현이다. 원무민은 자신의 재능을 언급하지 않는다. 영혼이라고 표현한 어떤 힘에 감응해 손이 움직였다는 것이다. 그때 나는 몸에 내재한 자연의 힘을 언어화하는 그의 시선에 무척 놀랐다. 그렇다. 몸은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힘이 심장을 뛰게 하고 숨 쉬게 한다. 심장에게 빨리 뛰라고 닦달한들 심장이 우리 말대로 움직일 이 없지 않나. 그런데도 '나'라는 주체가 무엇이라도 할 수 있을 것처럼 착각한다. 과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그것이 자기 몸에서 일어나는 두령무을 해결해주지 않는다.


P183

수행이라면 거창하게 생각하기 쉬운데 일상에서 잘못된 습관 하나 바꾸는 것에서 비롯된다. 습관을 바꾸면 개운한다고 하니, 사소한 습관 하나 바꾸는 일이 운을 바꾸는 것만큼이나 대단한 일이라는 의미다. 아이가 걸음마를 배우듯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끈기로 평생을 익혀야 한다. 그래야 순환하는 삶을 살 수 있다.


격치고 "천시"

너의 지혜에 교만하지 말라, 너의 지혜가 얕은지 모른다.

너의 능력에 자긍하지 말라, 너의 능력이 혹 척박한지 모른다.

너의 재목을 앞세우지 말라, 너의 재목이 치졸한지 모른다.

너의 노력을 과장하지 말라, 너의 노력이 궁색한지 모른다.


P199

이 글은 인간은 자기식으로 세상을 보지만 누구나 지혜와 능력, 재목이나 노력 중 적어도 한 가지를 타고난다는 말인데, 명리에서 전하는 메시지와 다르지 않다. 인간은 누구나 뛰어난 점이 있으니 아무리 재능이 출중해도 자만하거나 남을 무시하지 말라는 얘기다. 어떤 대단한 능력도 치우침의 결과라는 것, 또 어떤 능력(여름)을 타고 났음은 다른능력(겨울)을 부여받지 못한 것과 같다.


P200

여름이 겨울보다 훌륭한가? 가을이 봄보다 위대한가? 무엇이 더 낫고 모자란다고 감히 누가 논할 수 있나. 애초에 비교 불가한 일 아닌가. 사람도 마찬가지다. 저마다 존재할 뿐이다.

사람은 누구나 타고난 기운에 익숙해서 주야장천 그곳에 머물려 하고 부족한 기운은 생소해서 건너뛴다. 이는 여름을 받아들이기 힘들다며 봄에서 가을로 건너뛰는 것과 같다. 여름을 넘지 않는 몸과 마음으로 겨울 추위를 제대로 이겨낼 수 있을까?

자기 한계를 넘지 않으며 반드시 관계에서 문제가 생기고, 그게 쌓이면 병이 된다. 나에게 익숙하지 않은 기운(이게 바로 '용신'이다)을 건너 뛰지 않아야 관계가 원활하고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친구들의 평범한 이야기 속에서 어떤 문학 작품도 가뿐히 뛰어넘는 리얼리티를 느끼게 되었다. 이는 내 친구들이 특별해서가 아니라, 내가 어느새 그들 생활의 일부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때 두번째 깨달음이 왔다. 타인의 이야기를 사려깊게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이야기의 공동체를 만들게 된다는 것..

어디로 가야 할지 아는 사람은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다 한가운데서도 끝까지 키를 놓지 않는 법이다. 남을 흉내 내는 삶이 아니라 자기가 걸어가는 자리가 바로 길인 삶의 펼쳐지게 된다. ..

'지금의 자신을 만든 것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솔직한 답을 찾아가다보면, 자기 안의 고통, 분노, 수치, 지질함, 외로움...온갖 감정이 봇물 터지듯 올라온다. 감정을 피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만나야 한다. 누드 글쓰기를 하는 이유도 감정의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나는 학인들에게 '너무 잘 쓰려고 하지 말고 매 순간 올라오는 감정과 부딫혀라'고 말한다. 평가를 두려워하지 말고 자신부터 마음을 열라고.

어찌어찌 힘들게 들을 썼다고 끝이 아니라 합평이 기다린다. 글을 나누면 자기 검열한 결과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가장 빈번한 형태는 자신을 피해자로 기술하는 경우이다. 원하지 않았는데 결혼을 했다든지, 가족을 위해 희생하고 직장상사를 잘못 만난 사연 등등. 남 탓을 하거나 자신이 얼마나 희생했는가를 강조한다. 학인들은 동정과 연민을 보내고 글쓴이는 위로를 받는다. 하지만 이런 글은 자신을 드라마나 소설 속 주인공으로 여기면서 쓴 글일 뿐, 새로운 삶의 지도를 그리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심리적인 누드 상태로 글을 쓰는 이유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자기가 삶에서 왜 주도적이지 못했는가를 냉철하게 보지 않으면 동정과 연민에 기대게 되고 습관만 더 견고해진다.

운명의 지도를 그리기 위한 글쓰기는 자기를 해체하는 작업이다. 육친의 순환 속에서 집착하는 욕망을 냉정하게 보고 감정에 휘둘리지 않을 때 다른 존재로 거듭난다. 이런 과정을 건너뛰면 어릴 때 생긴 문제가 나이 든다고 절대 해결되지 않는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은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


p211

불통비겁이 통비겁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자기 생각을 내려놓은 다음 잘 듣고 상대와 소통해야 한다. 소통하지 않는 자존심은 자의식일 뿐이다. 그리고 관성과 재성을 잘 사용해야 한다. 관계 안에서 부딫히는 과정을 공부로 삼아 자아를 성찰하고, 삶의 현장에서 겪는 경험을 통해 자신을 변화시키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비겁이 많은 사람은 치부나 병을 감추고 끙끙거리기 쉬우므로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게 좋다. 그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수치스럽다고 생각하는 사안을 자기 입으로 말하는 순간, 해결할 길이 열린다. 더는 감출 필요가 없기에 수치와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병은 안으로 뭉친 기운이라서 비겁인이 기운을 풀고 순환하려면 자의식의 방에서 나와야 한다. 에티오피아 속담에 '병을 숨기는 자에게는 약이 없다'는 말을 새겨볼 일이다.

(경쟁심 내려놓고 친구로 인식하기, 역지사지하는 태도로 의견 펼치기. 어떤 경우든 주체적으로 행동하기)


p242

인성인은 이상 따로 현실 따로 생각하기 쉽다. 지금 내가 두발로 서 있는 곳이 전부이다. 비루한 이곳에 있는 지질한 그 사람이 최선의 조건이다. 인성인은 그 조건을 받아들이지 못해 자기만의 유토피아를 그린다. 자신이 원하는 시공간과 사람이 어딘가 있을 거라는 생각은 망상이다. 사람과 공간을 바꾸어 봤자 똑같은 패턴을 반복할 뿐, 지금 마주치는 것들과 공존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이제 망상의 늪에서 웅크리지 말고 현실로 뛰어들어 배워야 한다.

(인정욕망과 의존하고 싶은 마음에서 벗어나기, 처음부터 편한 관계가 없음을 깨닫고 상대방 수용하기, 행동보다 생각하는 기운이 강하므로 자신을 식상과 비교하지 않기,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현장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관계 맺기


낭송 동의수세보원 '공부란 무엇인가'

머물지 말아야하는데 머무는 것은 속에 욕심을 숨긴 것이고

당연히 결단해야 하는데 결단하지 않는 것은

속에 사사로운 마음을 숨긴 것이다.

생각의 기세가 넓고 멀다면 얻음이 만 배가 될 것이고

뜻의 역량이 확고하고 깊다면 이익이 만 배가 될 것이다.

남에게 기대서 요행을 바라는 것은 안으로 방탕한 마음을 품은 것이고

당연히 해야할 일에 태만한 것은 안으로 안일한 마음을 품을 것이고

몸이 당연히 행해야 할 일에 앞장서면 세상이 도울 것이고

요행을 바라는 마음을 끊으면 사방에서 도울 것이다.


p255

이제 난 불편하면 솔직하게 물어보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최대한 경청하려고 노력한다. 예전처럼 불편해지면 쉽게 관계를 단절하는 일은 하지 않는다. 망상과 기대 없이 담백한 관계를 맺다보니, 한사람과도 다양한 관계가 열리고 새로운 사람들과 조율해나가는 과정도 두렵지 않다.

더부살이 프로젝트는 관계를 통해(관성), 나를 성찰하는(인성) 단계를 거쳐, 새로운 나(비겁)로 태어나게 한 수행 공간이었다. 내 사주는 식상이 강해서 시작은 즉흥적으로 잘하지만 다른 사람의 처지에서 생각하는 힘은 부족했다.

나를 제어하는 관계 속으로 들어가자 내 식상을 날뛸 수가 없었다. 마음대로 하다간 바로 아웃이기 때문이다. 함께 사는 삶은 내가 바뀌기 위한 통과의례인 셈이다.


p287

워낙 취향이 다르다 보니 공부를 같이할 수는 없었고, 공부 이야기조차 마음껏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 불만족은 깨달음으로 이어졌다. 식상은 결과를 미리 생각하지 않는 기운이다. 나의 이익을 미리 계산하지 않고, 일단 마음 넉넉하게 소통하고 봐야한다. 이것이 식상과 재성이 다른 점이다. 지금까지 나는 남들을 위하여 뭔가를 할 때 그들의 '일'을 대신해서 '좋은 결과'를 얻게 도와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건 식상이 아니다. 남을 키워주는 기운은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것이다. 서로가 솔직해질 수있도록 상대의 추악하고 무지하며 불가해한 모습조차 편견 없이 응시하는 것이다. (이것은 어저면 나 자신의 '추악하고 무지하며 불가해한 모습;을 비추는 거울일지도 모른다.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친구들의 평범한 이야기 속에서 어떤 문학 작품도 가뿐히 뛰어넘는 리얼리티를 느끼게 되었다. 이는 내 친구들이 특별해서가 아니라, 내가 어느새 그들 생활의 일부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때 두번째 깨달음이 왔다. 타인의 이야기를 사려깊게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이야기의 공동체를 만들게 된다는 것..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인터뷰어는 위화에게 어떻게 반복되는 악몽을 끝냈냐고 물었다. 그러자 위화는 꿈에서 자신이 마침내 죽는 것을 보자 악몽도 완전히 끝났다고 했다. 자신이 어떤 상태로 살아왔고 또 살고 있는지 드디어 객관적으로 이해한 것이다.


낭송 동의보감 내경편

옛사람들은 잡념이 없고 욕심이 적어서

정신이 안정되었고

과도한 일로 몸을 피로하게 하지 않았다.

어떤 음식도 달게 먹고 어떤 옷도 편안하게 입으며

지위가 높건 낮건 서로 부러워하지 않는 소박한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욕망이 눈을 피로하게 하지 못하고

음란한 것들이 마음을 현혹하지 못했다.

어리석은 사람이나 지혜로운 사람이나 현명한 사람이나 모자란 사람이나 할 것 없이

외부 환경에 얽매이지 않고 도리에 맞게 살았다.

때문에 그들은 모두 백 살이 되어도 노쇠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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