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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런하우스-너에게 말하기

여행길 2020. 9. 10. 22:33

"글쎄요. 설명하기가 좀 어렵네요. 그냥 직접 경험해보시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나는 모임을 이끌 때 자주 이런 질문을 받는데, 그때마다 되도록 설명을 피한다. 왜냐하면 설명을 하다 보면 자칫 토론으로 흘러 머리만 복잡해질 뿐 별로 이득이 없기 때문이다.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처럼 강한 감정이 분출되는 것은 분명히 여기서 생긴 일 때문만은 아니다. 살아오면서 받은 수많은 상처들이 자기도 모르게 건드려지며 불쑥 삐져나온 것이다...나의 스승들은 심리치료는 눈으로 하는 것이란 말을 자주 했다.

 

그렇게 되기까기는 시간이 좀 걸리리라 봅니다. 서둘러 어떤 결과물을 내어놓으려 하지 않겠습니다. 겉모습이 좀 바뀐다고 해서 속이 달라지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모임에서 흔히 초기에 상호 불신으로 인해 갈등과 충돌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상호 간에 신뢰가 생겨 친밀감이 형성됩니다. ...

 이번에 입주하신 여덟 분은 모두 개성이 뚜렷하신 분들 같아 보입니다. 저는 이분들과 함께 앞으로 1년 동안 어떤 경험을 할지 전혀 예상 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며이 믿습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겪던 상관없이 결국에는 구성원들 모두가 매우 소중한 경험을 할 것이며, 그로 인해 다 함께 성장할 것이라는 점입니다.

 

봄비는 도와달라는 듯이 자꾸 나를 쳐다본다. 그러나 나는 말없이 앉아 있다. 내가 자꾸 나서면 구성원들이 내게 너무 의존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직 모임이 불안정하지만, 분명히 구성원들의 내면에는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힘이 있을 거라도 나는 믿는다.

 

"지금 기분이 어떠 신가요?"

...

"뭐가 무서우신가요?"

...

이런 순간엔 우리가 도와줄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 그는 혼자 해내야만 한다. 우리는 혼자서 고군분투하며 새끼를 낳는 소를 지켜보는 심정으로 계속 그를 응시하고 있다.

...

"지금 기분이 어떠신가요?"

...

"어떤 것이 생각나셨나요?"

다시 내가 묻는다. 오아시의 이런 감정 반응은 지금 상황만으로는 잘 설명이 되지 않는다. 아마도 과거의 해결되지 않은 감정이 뭔가에 의해 건드려져 나타났을 것이다. 나는 그 배경을 탐색하고자 질문을 던진다.

...

"오늘은 참 많은 일들이 있었네요. 여러분들의 진솔한 마음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셔서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시간이 많이 되었네요. 토요일 저녁에 다시 만나겠습니다. 편안한 밤 되시기 바랍니다."

 

지나간 시간들처럼 이 순간도 다시 오지 않을 거란 생각에 가슴이 먹먹하다.

 

인간 행동의 얼마나 많은 부분들이 사실 껍질에 불과한 것인지, 우리는 내면의 상처들을 만나고 아파하고 눈물을 흘리고 치유가 되기 전까지는 그것을 온전히 깨닫기 어렵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상처들을 억압하여 내면 깊숙이 가둔다. 그것을 직면하는 것이 아프고 두렵기 때문이다. 상처들은 껍질 속에 갇힌 채 우리의 존재로부터 소외된다. 하지만 그것들은 결코 그냥 없어지지 않는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불쑥불쑥 고개를 내밀어 우리를 불안에 빠뜨리거나 공허와 외로움에 허우적 거리게 만든다.

 

"질문하는 마음이 무엇이신지 좀 말씀해주시죠"

나는 그의 질문에 바로 답하기보다는 그의 마음이 무엇인지 드러나게 해주는 것이 낫겠다는 판단을 한다.

"걱정이 돼서 그럽니다. 요즘 형편도 어려운 것 같던데..."

"평화님이 장학금을 못 받는 것이 오아시스 님에게 어떤 영향르 미칠 것 같습니까?"

이번에도 나는 그의 질문에 바로 답하기 보다는 그의 마음이 좀 더 드러나도록 직면시키기로 한다. 흔히 질문은 수면 아래에 심층적 관심사를 감추고 있기 때문이다.

"갑자기 그렇게 물으시니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떠오르는 생각이 하나 있는데 말씀드려도 괜찮겠습니까?"

"말씀해보시죠"

"평화님이 안 계시면, 우리 모임이 어떻게 될지 걱정이 됩니다"

 

"많이 힘드셨겠어요"

 

"다들 지금 이 순간의 마음이 어떠신지 알아차리고, 말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질문만 하시는데 자신의 마음을 좀 표현해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