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를 위한 그림 일기_정은혜
변화를 위한 그림일기
정은혜 _ 샨티
p67
어린아이의 마음에 가장 큰 불안을 심어주는 가정 환경은 폭력적인 가정 환경이 아니다. 끊임없이 에측불허의 상태에 놓이는 가정 환경이다. 즉 불안은 정답과 오답이 어디에 있는지 모를 때 극대화 된다. 하지만 반대로 자유 의사를 가질 수 있는 용기는 정답과 오답이 애초부터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시작된다. '정답'이라는 외적 동기가 없으므로 내적인 동기가 그만큼 더 중요해진다. 즉 무엇을 표현하고 싶고, 왜 표현하고 싶고,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표현하고, 그 표현된 것을 어떤 방식으로 보여줄지, 그 단계 단계마다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지는 용기를 배울 수 있는 과목이 미술이다. 하지만 미술 과목에서 아이들이 용기를 배우고 자기 표현을 배우고 책임 있는 자유를 경험하는 대신, 자신은 정답을 모른다는, 그래서 어떻게 하든 답을 맞출 수 없다는 불안감을 배운 것 같다.
p69
행복해지기 위한 확실한 방법은 없지만, 불행해지는 확실한 방법은 하나 있다. 나를 다른 이들과 비교하는 것이다. 비교는 위로 아래로 옆으로 얼마든지 가능하며, 끝고 없고 한도 없다. 우리는 비교당하면서 어른이 되는데, 그러나 보니 불행하게도 비교를 자신의 내적 경험으로 가지고 와 자신을 늘 남과 비교하는 사람이 된다. 이것이 우리의 삶에서 놀이를 빼았았고,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든 다급함으로 우리를 몰아갔다. 비교당하는 것도 억울한데, 어쩌다 스스로를 남들과 비교하는 사람이 되었을까? 왜 비교의 목소리와 싸우지 않고 그것을 꿀꺽 삼켰을까?
이는 우리가 상대 평가를 하는 사람이 된 것과도 관계가 있다. 비교는 자기의 자리를 찾기위한 노력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기 위해서 우리는 왼쪽, 오른쪽, 위, 아래를 살핀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를 아는 것은 내가 어떻게 사회에서 관계를 맺고 행동할지를 아는 기준점이 된다. 관계망 안에서 내가 어디 있는지를 모르고는 적절하게 관계를 맺기 힘들다. 하지망 모든 사람이 서로를 보고 자신의 위치를 찾으려고 한다면, 우리는 서로에게서 기준점을 찾기보다 마치 거울에 비친 모습을 보듯 상대에게 투사된 자신의 모습을 볼 뿐이다. 거울로 된 방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상대에게 되비쳐진 자기 모습을 볼 뿐 실제로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를 가늠할 수가 없게 된다. 그러니 결국 서로에게 자기를 투사하며 비교하는 습관만 남을 뿐이다.
때로는 공공연히, 그리고 때로는 은밀하게, 수치심의 경험은 대개 소외되고 무시당하고 놀림당한 기억으로 간직된다. 그결과 그 느낌은 두려운 것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그 느낌을 피하려면 내 행동, 생각, 감저을 바꿔야한다고 배웠다. 그 모든 과정에서 우리는 변화했고, 그 결과 지금이 모습이 되었다. 문화는 우리에게 수치심을 가르킨다. 누가 인기가 있고 누가 인기가 없는지 알려준다. 나면서부터 완벽한 몸매를 갈구하는 사람은 없다. 나면서부터 자기 얘기 꺼내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도 없다. 나면서부터 나이 먹는 걸 두려워하는 사람도 없다. 한손에는 명품을 들고 한손에는 등이 휘어질 것 같은 카드빚을 안고 태어나는 사람도 없다. 수치심은 우리 밖에서 오는 것이다. 바로 우리가 속한 사회의 문화 말이다. 나면서부터 우리 안에 있는 것은 오직 소속감을 느끼고 관계를 맺고 싶어 하는 지극히 인간적인 욕구일 뿐이다.
브레네 브라운 '나는 왜 내 편이 아닌가'p25
새로운 기술이나 또 하나의 자격증을 갖추면 우리가 갖고 있는 불안감이 해소 될 것 같지만, 내담자를 만날 때 자신이 정말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과 어떻게 도와야 할지 모르겠다는 막막함은 없애야 할 것이 아니다. 이론에 무장되어 있으면 자칫 자기가 잘 안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우리가 다루는 많은 것은 사실 궁극적으로는 알 수 가 없는 것들이다. 사람의 마음을 감정을 무엇이 그 사람을 자유롭게 해줄지를, 무엇이 그 사람의 변화를 이끌 것인지를 우리는 궁극적으로 알지 못한다. 죽음으로 삶이 끝나는 확실한 진리 앞에서, 삶의 의미가 어떠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지 어떻게 확실히 알 것인가? 확실하지 않은 것이 삶의 조건인데, 그것을 확실하게 말하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물론 충분히 배워야 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배움이 나의 불안감을 잠재우지 못하며, 불안은 살아있다는 증겅지 없애야 할 어떤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답을 알기 위해서 공부를 한다고 생각하지만, 내 생각에는 그것은 공부의 목적이 아니다. 공부의 목적은 질문하는 법을 배우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경험하는 데 있다.
그림 일기 그리는 법븡 배우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림을 기술적으로 완벽하게 또는 뛰어나게 잘 그릴 필요가 없다. 그러니 이책도 너무 잘 배우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꼭 필요한 그림 기술만 배우면 된다. 치유적 그림 그리기는 자심과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을 또 그 세상에서 맺는 관계뜰과 관계 속에서 느끼는 감정을 표현하기 위한 방식이다.
그리고 자심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나를 비추는 타인의 표정이나 인정과 상관없이 스스로 자신의 감정을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자신이 좋은지 싫은지 슬픈지 기쁜지 화가 나는지 알 수 있는 자기 안에 중심이 생긴다. 이 중심에 설때 비로소 우리는 자신의 존재가 빛날 수 있는 인생의 결정들을 하게 된다. 자신의 중심을 갖지 못하고, 타인이 비춰주는 거울로만 자신을 본다면, 우리는 자기 삶에서 중요한 어떤 사람(부모나 선생님이나 배우자)이 대신 선택해 주는 삶을 살게될 가능성이 크다.
감정은 말이나 글이 아닌 그림을 훨씬 더 잘 표현이 된다. 감정은 이미지 프로세싱과 마찬가지로 우뇌 중심적인 활동이며, 이미지로 표현이 가능한 몸의 경험이기 때문이다. (좀더 자세히 말하자면 감정은 우뇌가 주로 처리하지만 좌뇌가 관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감정이 어떻게 느껴지는기를 우뇌가 담당하는 동안, 좌뇌는 그 감정이 무엇인지르 파악한다고 한다.
p93
영어로 'vulnerability'는 한국어로 '취약함'이라고 번역이 되고는 하는데, 나는 '연약함'이라는 단어가 더 마음에 든다. 이단어에는 ;ability'라는 단어, 즉 능력이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연약함은 다시 말하면 '연약할 수 있는 능력'이라는 것이다. 치유적 그림을 그리는 것은 연약함을 드러내는 행위이고, 아리러니하게도 스스로를 포장하고 방어하는 대신 자신 안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방식이야말로 우리가 어른이 되면서 배운 수치심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다. 왜냐하면 연약함 속에는 우리가 만들어놓은 벽을 뚫을 수 있는 힘인 공감, 사랑, 친절함 같은 보살피는 마음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연약함을 두려움, 죄책감, 비애, 슬픔, 실망 등의 다른 어두운 감정들과 동일시하면 그것을 버리고 싶어진다. 우리는 이런 감정들을(우리의 삶과 일, 리더십에 지대한 영향을 미침에도) 입에 담기조차 싫어한다. 많은 이들이 연약함이 우리가 갈망하는 감정과 경험의 요람이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고, 나 또한 이를 깨닫는 데 10년이 넘는 시간이 필요했다. 연약함은 사랑, 소속감, 기쁨, 용기, 공감, 창의성의 모태이다. 희망, 책임감, 진정성의 원천이기도 하다
브레네 브라운 '대담하게 맞서기'
p99
치유적 그림 일기는 연약함을 드러내는 방식의 그림 그리기이다. 남에게 보여주거나 심지어 자기 내면의 판단자에 의해 평가받는 그림이 아니라, 오롯이 내면의 부족함과 떨림과 아쉬움과 감동과 사랑을 드러내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문제는 외부의 판단자가 아니라 내부에 집을 짓고 사는 판단자일 것이다.
좋고 귀한 것을 판단자에게 이제 그만 보여주자. 그는 뭐라고 판단할 자격이 없다. 판단자는 비교당하고 상처받은 아이의 커다란 그림자이거나, 나를 판단했던 부모님이나 선생님이나 내 삶의 영향력을 행사한 사람들이 내면화된 이미지요 목소리일 것이다. 한마디로 진실이 아니다.
내면에 있는 판단자를 쉽게 나가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판단자가 자신이 그린 그림을 '애 같다'고 놀리면 '고맙다'고 말하자! 바라던 것이라고! 판단자가 뭐라고 하면 움츠러들지 말고 화를 내자. 그 대신 서로를 돌봐주고 응원하고 지지하고 내면의 연약함을 사랑스럽게 봐주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서로의 그림을 보아주면 좋겠다.
p171
부흥회에 참석하여 영적인 체험을 하거나 한바탕 굿판을 벌여 모든 악귀를 다 몰아내 버리고 싶은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감정이 갖는 불편함과 묵직함, 어색함을 더 잘 보유함으로써 그 감정이 우리에게 전하는 목소리를 잘 듣고 잘 감당하고 잘 보내는 사람이 될 수 있다. `
p179
타인의문제보다 자신의 문제를 더 잘 못보는 이유는, 중이 제 머리 못 깎고 치료사가 자기 문제를 못 푸는 것과 마찬가지로 문제를 내면의 전체적인 경험으로 느끼기 때문이다. 문제속에 내가 빠져 있을 때 창조적으로 문제를 풀기란 정말 힘들다. 먼저 문제를 내 몸 밖으로 끄집어내야 문제가 어떻게 생겼는지, 처음과 끝이 어디에 있는지, 어디에 엉킴이 있는지 알 수 있다. 이 과정을 미술 채료에서는 외재화라고 부른다. 자신의 내적인 경험을 바깥으로 끌어내면 바라보기가 가능해진다. 이것이 미술 치료에서 치료의 핵심이다.
p180
서른살이 심리학에게 묻다 등의 베스트셀러를 펴낸 정신과의사 김혜남 선생님이 책에 사인을 해줄 때 늘 쓰는 표현이 있다. 삶을 축제처럼! 국립정신병원 의사로 일하면서 시부모님 모시고, 역시 의사인 남편 내조하고, 자식들킹고, 저술활동까지 하며 열심히만 살았는데, 한창인 나이에 파킨슨병에 걸려버렸다. 처음에는 너무나 억울하고 서러웠다고 한다. 그러다가 느낀 것이 '내가 삶을 숙제처럼 살았구나'하는 것이었다. ..
나 역시도 삶을 축제처럼 살고 싶은 사람이다. 늘 그런 바람으로 살아왔다. 반짝이는 순간들이 좋고, 일상을 잊게 하는 몰입의 순간들이 좋다. ...김혜남 선생님도 삶을 축제처럼 산다는 것이 재미있는 것만 하라는 말이 아니라고 덧붙였다. 삶을 축제처럼 산다는 건 축제를 만들기 위해 준비하고 노력하고 축제 후에 청소까지 하는 전 과정을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이준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예술가는 하루 작업실 안 간다고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 하루가 아니라 매일매일 아무 작업도 안 한다고 해도 누가 뭐라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정말 아무것도 안 하다가는 자기만 망한다.
p182
숙제처럼 살든 축제처럼 살든 우리의 삶을 지탱하는 것은 일상이다. 우리는 궁극적으로 일상을 벗어나서는 건강하게 살 수가 없다. 썰물과 밀물의 반복, 낮과 밤의 반복, 깨어 있는 시간과 잠자는 시간의 반복이 만들어내는 일상은 지구의 생명 있는 모든 것들이 따라 사는 리듬이다.
우리의 리듬은 해와 달과 별들의 움직임에 맞추어져 있다. 우주적인 리듬과 일상의 리듬은 하나이며, 이 리듬을 거스르고는 건강하게 살 수 없다. 늘 변화하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는 항상성을 유지하는 자연처럼 매일의 그림일기가 파도치는 삶에서 고요한 중심을 만들어줄 것이다. 이런 하루하루가 쌓여서 일상과 삶 전체의 리듬이 조화로워지고, 현실을 직시하는 힘과 가능성을 상상하는 힘이 커질 것이며, 당신이 상상하는 변화를 살게 될 것이다.
p185
원하는 결과를 상상하지 말고, 원하는 것을 이루기 우해서 자신이 노력하는 과정을 상상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상상을 하려면 어떠한 노력이 필요한지에 대한 탐구가 있어야 한다.
그림 일기는 자기가 원하는 변화를 이루기 위해 어떠한 노력이 필요한지 탐구하고, 필요한 과정을 리어설하고, 변화된 모습을 가시화하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
자신의 마음을 열고, 새로운 삶의 패턴을 만드는 연습을 하고, 새로운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믿음과 동기를 키워서, 필요한 행동을 하게끔 하는 방법인 것이다. ...
그림을 그리면 많은 훈련이 필요한 시각화 명상과 달리 이미지가 잘 잊히지 않고, 실제로 그려진 이미지가 사라지는 일도 없다.
p190
변화는 지금여기에서만 가능하다. 우리는 자신의 모습을 벗어버리고 남의 모습을 입으려고 노력하는데 아무리 노력해도 신데렐라가 12시 땡하면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오는 것처럼, 우리는 결국 우리 자신밖에는 만날 수 없지 않은가. 변화는 지금 여기 당신이 있는 곳, 당신의 현재 모습 그대로 당신이란 존재를 온전히 받아들일 때에만 가능하다. 어쩌면 변화보다 힘든것이 지금 자기 모습을 받아들이는 것일지도 모른다. ...
고통속에 있으면서도 자신의 문제를 이해하기 전에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고 하는 사람들은 독화살을 맞고도 뽑지 않고 있는 전장의 장수와도 같다.
p192
변화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단계가 지금 여기의 자신을 받아들이고 그러한 자기와 공감하는 것이다. 그런 다음에 변화의 모습을 상상하고 그리는 것이 그림 일기가 취하는 변화의 방식이다.
여기서 공감이란, 아픔을 인정하고 아픔을 기꺼이 느끼겠노라 하는 의지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중요한 단어는 '기꺼이'이다. 기꺼이 한 선택을 나와 내 아픔 사이의 경계를 열어준다. 경계가 열릴 때 아픔의 통로만 열리는 것이 아니라, 측은지심, 연민, 사랑의 마음 또한 열려서, 고통을 경험해도 두렵지 않고 아파도 깊어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내면의 성장을 위한 모든 변화는 공감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나 자신과 공감을 한다는 것은, 나의 감정을 모두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회피하고 누르던 방식에서 벗어나서 모든 감정을(분노, 고통, 슬픔) 나의 것으로 인정하고, 나름대로 이유가 있음을 이해하고, 그리고 기꺼이 느끼겠노라 마음을 여는 것이다.
물론 진정한 변화를 위해서는 그림 그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구체적인 생각의 변화 행동의 변화, 삶의 패턴의 변화가 있어야 진짜 변화가 찾아온다.
p193
심리학자 너새니얼 브랜든에 의하면 자기 효능감이 있다는 것은 절대 실수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이해해서 실수를 바로잡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다'라고 했다. 자기 효능감은 살면서 겪는 도느 문제를 극복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아니다. 반드시 배워야 하는 것을 익히고, 자신의 가치 판단에 따라 주어진 과제와 도전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합리적이고 양심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을 확신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자기 효능감은 과정에 대한 믿음이고, 결과적으로 자신이 기울인 노력에 대해 성공을 기대하는 내적경향을 만한다.
...그림일기를 통해 당신으 나신과 무의식과 으식이 만나고, ...당신 안에 있는 귀한 존재를 만날 수 있다. 나는 낙심되는 일이 있어서 주눅이 들고 우울하고 아무렇게나 살고 싶은 마음이 들때, 내 안에서 나를 일으키는 존재를 만난다. 나를 무지무지 사랑하는 존재이다.
p207
최소한의 목표를 설정하되 매일 반복해서 그림 일기를 그리는 리듬은 꼭 지키자. 매일 아침 스케치북을 여는 것을 목표로 시작한다.
p209
어떤 문제가 있음을 알아차리고 그 문제를 풀려고 하거나 나아지려고 하는 순간 우리는 의식적 무능력 단계로 들어간다. 이것이 문제구나라고 알아차리는 단계이다. 이때 어떤 사람들은 좌절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의지력을 발휘해 무능력 단계를 능력단계로 만들려고 노력한다. 전 단계로 회기하고 싶을 수도 있지만, 일단 의식화가 된 것이 무의식화가 될 수는 없는 노륵시다. 이 단계는 자신과 싸우는 단계이고 이전에 못 느끼던 불안을 마주하는 단계이다. ..
불만투성이인 현실을 바꾸고 싶지만, 지금 가진 것을 놓지는 못하겠다는 사람에게.
당신은 불만-안정과 불안-자유 중 어떤 것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사람들은 안정과 자유를 선택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선물 세트는 없다.
변화는 안정에서 자유로 향하는 여정이며, 그 길에서 만드시 불만에서 불안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겪는다. 그런데 이러한 방법으로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는 길은 삶에 지쳐 있는 현대인들에게는 버거운 것 같다.
P210
사람이 근본적인 변화를 경험하려면 이것과 저것 사이에 존재하는 혼란스러운 과도기에 들어갔다 와야 한다. ..
그 혼란은 새로운 자아가 태어날 수 있는 열린 가능성을 제공한다.
변화의 시작에서 만나는 저항감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시도를 해보다가 '나는 역시 안 돼'하며 포기하고는 한다. 저항감이 일어나는 것을 몹시 풀변하게 여기고 뭔가 잘못되었다고 해석하기 때문이다. 저항감은 잘못 가고 있는 신호가 아니라 변화의 길에 들어왔다는 신호일 수 있다.
변화는 침숙함을 찾는 것과는 상반되는 경험이다. ..익숙한 환겨을 찾아가게 하거나 그 환경을 만들게 하는 무의식적 힘은 어마어마하다. 저항이 있음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운명의 굴레를 벗어나기 힘들다.
소리를 내라고 했다. ..
아침에 일어나서 일과를 시작하기 전 먼저 그림 일기장을 펼친다. 새로운 생각을 떠올리지 말고 이미 마음속에 들어와 있는 생각을 글로 몇줄 쓴다. 생각을 키우거나 이어가지 말고, 마음속에 이미있는 생각을 간략하게 쓰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글에서 이미지를 건진다. ..
결과가 아닌 과정, 그리고 그과정을 경험하고 있는 자신을 상상할 때, 우리의 마음과 행동이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게 된다. 그리고 온 마음으로 하는 기도는 늘 응답을 받는다.
...돈과 성공보다 내면과 자연의 흐름에 따라 사는 삶을 선택해왔다. ...
살아 있으려면 창조해야한다. 창조는 살아있음의 기운이 움직이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P261
긴장하고 있는 우리를 보면서 '자 여러분 웃으세요, 어차피 잘 안 될 거예요'하고 했다. 잘하려고 포즈를 잡고 있다가 피식 웃음이 나왔다. 어차피 잘 안 될 거라니. 그러니 웃으라고,그러니 즐기라고, 이게 바로 정답이 아닌가?...
중요한 건 당신은 당신 삶에 관한 한 최고의 전문가라는 점이다. 정답을 찾고 움직이려고 한다면 처음부터 시작하기도 힘들것이다. 정답은 최종 목적지가 아니라 자신이 나아가는 한 발자국 한 발자국에 들어 있다. 그러니 완성이나 완벽을 목표로 두지 말고, 자신의 길을 향해 찾아나서는 것을 목표로 두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 이보다 기쁘고 재미있는 여정도 없을 것이다.
P293`
차가운 성격의 어머니에게 외롭다거나 아프다고 말해보지 못한 아이는 어른이 된 지금도 그 때 못받앗던 엄마의 사랑이 그리웠다. 그래서 성인이 된 자신의 모습을 상징하는 종이인형을 만들었고, 이 어른이 된 자기가 어린 자기를 안아주었다. 원망하는 마음이 녹으면서 원망의 눈물이 연민과 사랑의 눈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
마지막 작업으로 엄마가 아이를 따뜻하네 안아주는 장면을 찰흙으로 표현했는데, 그러면서 그분은 비로소 눈물이 멈추고 환한 얼굴이 되었다. 이러한 상징적인 작업을 통해서 자기가 자신의 어머니가 되고 그 어머니에게 안긴 경험을 하게 되면서, 평생 갖고 있던 결핍과 아쉬움에서 스르르 풀려나기 시작했다. 건강이 악화되어 요양 병원에 계시는 아픈 어머니를 외면하고 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그 분을 이 작업을 마치고 이제 가벼운 마음으로 아픈 어머니를 찾아뵐 수 있겠다고 환한 얼굴로 말했다.
위의 예들을 치료사와 함께 하고 지지하는 집단 안에서 진행이 되었던 것이다. 만약 이작업을 혼자서 한다면 무조건 내면 아이의 말을 들어주고, 쓰다듬어 주고, 보호해주고, 사랑해주자.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거나 어떤 조치를 취하려 하지 말고, 그냥 아이의 어리광을 들어주고, 원하는 음식도 해주고, 원하는 옷도 입혀주자. 무조건 사랑해 주고 이해해 주고 용서해 주자. 아이가 원하는 것을 해주다 보면 자기 내면이 밝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P303
내가 바이올린을 잘 켜지도 못하면서 전공을 하고 싶다고 했을 때, 선생님 중에 한 분은 아침에 떠오르는 해를 보며 기도하는 마음으로 신실하게 소리를 내라고 했다. ..
소리를 내는 것을 기도하는 것을 내 마음속에 심어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