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홍식의 수심결 강의
p54
그런데 이것을 모르고 '한생각'을 일으켜요. "부처가 뭘까?"하고요. 바로 의심이 생겨서 어두움(무명)에 빠집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 여여(항상 그러함)하던 그 자리가 숨어버려요. 가려져요. 거기에 '감정'이 희로애락으로 덧칠을 하죠. '오감'까지 등장하여 우리를 유혹하면 우리는 본래의 부처 자리를 아주 잊어버립니다. 이것이 현실이에요.
p56
"내가 옳다" "내가 틀리다"...'알아차지느 자리'가 바로 우리의 순수의식 즉 부처 자리 입니다. ... 그런데 신통하게도 그 자리란 것이 생각, 감정을 초월해 있는 자리예요. 생각, 감정을 초월해있으면서, 생각, 감정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으 똑똑히 알아차리고 있는 자리죠....
오감에, 감정에, 생각에 관심을 기울이지 마시고 오직 '모르쇠'로 일관하세요. 그것들에 집착한다면 여러분은 영원히 현상계에 머물게 될 것입니다. 그것들이 일어나든 사라지든 관심을 가지지 마시고, 그것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똑똑히 알아차리고 있는 자리, 생각 이전의 맑은 거울 같은 자리, 이 자리에만 모든 관심을 기울여 보세요. 그 자리의 실체를 분명히 확인 하세요. 이것이 참나를 깨닫는 비법입니다.
p60
직지인심(곧장 자신의 마음자리를 가리킴)이 마음공부의 핵심입니다. 원래부터 조금도 때가 묻은 적이 없는 그 자리를 그냥 되찾으면 되는 것입니다. .. 물론 잃어버린 적도 없고요...부처가 되고자 한다면 '불성'을 찾아야지, 자신의 생각, 감정, 오감(몸)을 괴롭힌다고 될 일이 아니죠.
...모든 현상계를 나툰 근원인 마음의 본체 '참 마음'
p64
좋다 싫다하는 모든 번뇌, 망상이 일어나기 이전의 치우침 없는 자리, 참 마음자리에서 천지 만물이 다 나왔다 이 소리입니다....
답답한 생각을 청산하고 지혜로운 생각을 하며, 이기적인 감정을 제압하고 자비의 감정으로 삶을 채우며, 사악한 말과 망령된 행동을 종식하고 나와 남 모두에게 좋은 말과 행동들로 삶을 장식해야 합니다. 이것이 '부처의 완성'입니다. ...
우리가 각자의 마음을 곧장 들여다봄으로써, 위대한 지혜, 자비의 씨알이 되는 자신의 불성, 참마음을 되찾는 것을 '견성'이라고 합니다. ...
우리의 청정, 광명한 '참 마음'을 가리는 두 가지 어두움, 즉 1) 진리를 가리는 '무지'와 2) 나, 내 것에 집착하는 '아집'이 제거된 만큼 '지혜'와 '자비'가 현현하게 됩니다. ...
우리가 '견성'의 체험을 통해 우리 내면의 절대계를 체득했다고 해서, 곧장 우리 현상계가 변하는 것은 아닙니다. 현상계에는 현상계의 법칙이 있어요. 현상계의 법칙은 간단합니다. '원인'이 있어야 '결과'가 있다는 것입니다.
p72
비록 우리의 생각, 감정, 행위가 더럽고 지저분하고 추잡스럽더라고, 그러한 헛된 생각, 이기적 감정, 그릇된 행동들의 존재의 뿌리가 되는 참 마음 자리는 언제 어디서나 여여할 뿐이니, 지금 이순간 그 본체를 찾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방법도 어렵지 않아요. 청정하고 광명한 빛을 가리는 생각, 감정, 오감의 '허망한 인연'들만 내려놓으면 됩니다.
p76
배고프다는 것 '알며'...화내고 있다는 것을 '알며'... 과연 이 '아는 자'는 어떤 물건인가?
...능히 보고 듣고 깨달아 알아차리는 자가 필경 그대의 '불성'일 것이다.
p77
배고픈 줄, 목마른 줄, 추운 줄, 더운 줄, 화난 줄, 기쁜 줄 '알아차리는 그 자리'가 핵심입니다. ....
각각의 알음알이가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무심히 바라보며 즉각 알아차리는 그 자리
..."나는 ~이다", "나는 ~을 가지고 있다"는 말을 하고, 생각을 일으키는 바로 '그 자리'
...온갖 마음의 변화를 알아차리기만 할 뿐, 집착하지 않는 자리입니다.
..'지루함'이 일어나잖아요. 그럼 "지루하다"라고 생각하고 끝내지 마시고, "지루하다"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자리를 찾아보세요.
이것이 '회광반조'라는 것입니다. '지루하다'라는 생각이 일어나는 순간, 그러한 생각과 감정 전체를 통으로 '한 덩어리'를 만들고 그것을 무심히 바라보세요... '지루하다'는 생각, 감정이 일어날 때, 그러한 생각과 감정을 괄호로 묶어서 통으로 '바라보는 자'와 분리한 뒤, 그러한 대상에 끌려가거나 집착하지 말고 그냥 무심히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만 하는 겁니다.
...
우리가 이것을 바라보기 전에는 아무런 의심 없이 '나=지루함'이었죠. 그런데, '지루함'ㅇ르 객관화시켜서 바라보자. "나=/지루함"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마음에 순간순간 떠오르는 모든 '대상'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히시고, 그냥 그러한 대상들의 생멸을 초월한 '바라보는 자'로서만 존재해보세요.. 지루함이라는 대상을 바라보는 자가 아닌 순수한 바라보는 자로서 존재해보십시오.
p89
우리의 '참마음'을 원효스님꼐서는 '한 마음'이라고 부르셨습니다. 왜 한 마음이라고 하느냐 하면요. 일체의 현상계는 움, 양이 둘로 나뉘어 있는데, 이 참마음은 둘로 나뉘지를 않죠....
우리의 '참 마음'이 '허공'과 다른점이 바로 이것이죠. 허공과는 달리 텅 비어 있으되 신령스러운 인식능력, 즉 알아차리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 말입니다. .... 우리가 무슨 직을 하건, 그 순간에 불성이 없어진 것이 아니에요. 우리가 그 자리를 잊어버리고 못 찾는 것뿐이죠!
p97
'유심조' 우주 만물이란 우리 마음에 비칠 때만 존재 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이거든요. 우리 마음에 비치지 않는 것을 어찌 생각하고 말하고 묘사할 수 있겠습니까?
p100
의심하고(생각), 답답해하고(감정), 묻는(오감) 그 자리가 바로 불성이 현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
생각, 감정, 오감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고요한 상태에서 바라보고 있는 그 자리는 어디인가?하고 돌이켜 보세요.
...나의 의식을 안으로 돌이켜서, 그러한 모든 의식의 근원을 곧장 바라보는 방법입니다.
p106
이미 견성을 해서 우리의 본래 모습이 시간, 공간을 초월한 '부처'란 사실을 알았잖아요. 그런데 자꾸 우리 마음속에서 뭔가 묵은 습기들이 올라와요. 고정관념, 습관들이 자꾸 튀어나옵니다. 그 때마다 당황하거나 좌절하지 말고, 그냥 그것들이 본래 '부처자리'에서 허망하게 일어난 실체가 없는 '헛된 물건'이란 사실을 직시하고, 그것들이 나온 자리인 참나 자리를 잃어버리지 말라는 이야기 입니다.
p107
보임을 잘 하는 이는 생각, 감정, 오감의 모든 현상계의 변화가 '참 마음 자리'에서 일어나는 '허공꽃'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지 않고, 항상 놓고 가는 집착 없는 삶을 삽니다. 현상계를 버리지도 않고, 그렇다고 현상계에 빠지지도 않으면서, 걸림 없이 자유자재로 지혜홉게 살아가죠.
p124
간절히 원하라!
정성껏 노력하라!
일념으로 집중하라!
연구하고 분석하라!
p126
보조스님 말씀처럼 저 사람은 전생에 공부 많이 해서 이번 생에 좀 수월하나 보다 하시고, 그 사람보다 더 노력하면 됩니다. 알고 나면 다 같으니까요. ...좀 더 닦고 덜 닦고의 차이죠. 누구나 깨닫고 닦고 하면 다 갈 수 있습니다.
p133
제아무리 절대계를 깨치고 '참나'를 깨달아 알아도, 현상계에 살면서 원인-결과를 무시해서는 큰일 납니다. 우리를 고해 현상계에 얽어매는 것도 '인과법'이지만 우리를 해탈의 길로 인도하는 것도 인과법입니다. 인과를 무시하지 마시고, 나와 남에게 모두 고통을 주는 악한 인과 나쁜 인과를 절대로 짓지 마시고, 나와 남 모두에게 행복을 주는 선한 인과 좋은 인과를 한량없이 지으시길 바랍니다. 그것이 '점수'의 길이며, '돈오'와 함께 해탈에 이르는 길 입니다.
p140
"좋은 결과를 얻고 싶으면 좋은 원인을 지으십시오"현상계를 개조하기 위해서는 오직 이 길밖에 없습니다. 모든 부처, 보살들께서도 오직 이 방법을 통해 궁극의 해탈을 이루셨습니다.
p140
지난 과거에 연연해 할 필요가 없습니다. 지금 이 순간부터 다시 시작하면 됩니다. 인과법칙을 굳게 믿고 전진하십시오! 선택, 판단의 기로에서 남에게는 해로운데 나에게만 유리한 업을 짓지 마십시오. 항상 나와 남 모두에게 유리한 업을 지어야 합니다. 이것이 부처님의 위대한 덕상을 갖추는 비법이에요....
우리는 항상 '현재'에서 좋은 업을 짓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과거, 미래가 모두 정화됩니다. 매 순간 바른 업(생각, 감정, 오감)을 짓기만 하면 되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의 '무의식'까지 정화됩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드러나거나 잠재된 모든 '무지, 아집'의 업이 제거되고, '지혜, 자비'의 업이 드러나게 됩니다. 이것이 현상계의 덕을 이루는 비밀이며, 점수의 핵심 요결입니다.
p143
먼저 부처의 씨알인 '참나'를 투철히 자각하고(돈오), 그 다음 참나의 도움을 받으면서 자신의 오염된 업장을 하나하나 정화하여 참나의 전지, 전능이 현상계에 온전히 드러나도록 업장을 개조해야 합니다.
p147
공부의 본질은 나, 내것에 집착하는 이기적 자아인 '에고'를 정화하는 것이며, 에고의 정화를 통해 나, 남을 모두 이롭게 하는 '지혜, 자비'를 배양하는 것에 있어요. 이것이 모든 부처님들의 공통점이며, 이것이 되어야 부처가 되고, 보살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p148
공부의 본질은 우리의 '이기심'을 제압하여 '불성'대로 살자는 것인데, '신통력'을 얻고 보면 이기심이 춤을 춰요. 참 제압하기 힘듭니다. 열심히 공부하는 중에 얻어진 신통력이 오히려 마장이 돼요. 자꾸 자랑하고 싶고, 써보고 싶고, 이걸로 돈도 벌고 싶고, 권력도 얻고 싶고 그럽니다. 이러니 마장이죠. 차라리 없느니만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성인들께서 신통력을 말단으로 보는 것입니다. 지혜, 자비는 안 그래요. 쓰면 쓸수록 여럿이 좋죠. 나도 좋고 남도 좋고. 이것이 본질, 말단이 나뉘는 이유입니다.
p160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죠. 곧 소멸하고 말 '몸뚱이'를 애지중지하고, 온갖 허망한 번뇌, 망상으로 가득 찬 '마음' 잠시도 놓아버리지 못합니다. 이것이 일체 중생들의 살림살이예요. 이런 생활 빠리 청산해야 합니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 겁니까?...
우리가 아무리 고귀한 생각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생각'일 뿐이고, 아무리 고귀한 감정을 내더라도 여전히 '감정'일 뿐입니다. 그것이 그대로 '참나 자리'는 아니거든요....
생각에서 찾고, 감정에서 찾고, 오감에서 찾는 것, 모두다 "마음 바깥에서 부처를 찾아 이리저리 헤맨다"는 것에 불과합니다. 아무리 뒤지고 다녀도 '부처'를 찾을 수 없습니다. 나무를 구하려면 숲으로 가고, 물고기를 잡으려면 바다로 가야죠. 부처 없는 곳에서 부처를 찾으니 그게 찾아집니까? 자신의 오감이나 만족시키고, 기분이나 좀 풀고, 마음의 위안이나 조금 받고 마는 것이죠. 이런 식으로 해서는 세세생생 빌고 또 빌어도 부처님을 만날 수가 없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여러분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나라는 느낌'을 직접 느껴보세요. 아마 여러분이 쉽게 느낄 수 있는 나라는 느낌은 '앉아있는 나'이거나 '서있는 나', 혹은 '우울한 나'이거너나 '기쁜 나', 그리고 '고민하는 나'이거나 '답답한 나'일 겁니다. 모두 시간, 공간, 그리고 오감, 감정, 생각에 의해 제약된 '나'일 거예요. 온갖 대상들에 의해 덧칠해지고 왜곡된 '나'죠. 그래도 그 느낌에 주목해보세요. 외적 요인들에 의해 왜곡되어 있더라도 '나'는 '나'니까요.
그 '나라는 느낌'에서 시간 공간, 오감, 감정, 생각에 의해 왜곡되지 않은 '순수한 존재감'을 찾아보세요. 시간ㄷ 인식하지 못하고, 공간도 인식하지 못하고, 오감도 인식하지 못하며, 감정도 느끼지 못하고, 생각도 인식하지 못하는 순수한 상태로 존재해보세요. 방법은 아주 쉽습니다. '나라는 느낌'에 시선을 고정하고, 일어나고 사라지는 다른 것들을 전혀 인식하지 않는 것입니다. 일어나든 사라지든 무시하고 관심을 주지 않는 것입니다. 모든 관심을 오직 '순수한 나의 존재감'에만 두는 거예요. 이 상태에 안착할 수 있다면 우리는 '참나'의 현존을 느끼고 체험할 수 있습니다.
이 방법을 보조스님은 다음과 같이 인도하고 계십니다. "한생각이 일어날 때, 그 생각이 나온 자리로 의식의 빛을 돌이켜라! 그리고 자신의 본성을 똑똑히 보라! 그리고 자신의 본성을 똑똑히 보라!"..
순수한 나는 우리의 생각, 감점, 오감에 의해서 항상 물들게 됩니다. ..
'나'라고만 하면 어떤 제약도 느끼지 못하는데, '고민하는 나', '답답한 나'라고 하면 그 즉시 시간, 공간, 생각, 감정, 오감에 의해 족쇄가 채워집니다. ..
한 생각이 일어날 때, "지루하다"는 한 생각이 내 마음속에 울려 퍼질 때, 나와 지루함을 동일시하여 '나=지루함'이라고 판단하려고 할 때, '나'를 '지루한 나'로 만들지 마십시오. 100% 순수한 나를 지루함과 동일시하지 마십시오. 지루함이란 우리 마음에 잠시 머물다 사라지는 생각, 감정에 불과합니다.
...지루하다는 한 생각이 일어날 때, 지루함이라는 대상을 향해 치달리는 우리의 의식을 돌이켜서, '지루함'이라는 생각이 일어난 자리인 순수한 나, 참나 자리로 향하게 하시기 바랍니다. 이때 우리 마음속에 존재하는 텅 비어 고요하되 신령스러운 앎을 지닌 나의 본체가 확연히 드러나게 됩니다.
p198
우리가 안다, 모른다 하는 것은 모두 생각일 뿐입니다. 안다는 것도 생각이요, 모른다하는 것도 생각입니다. 안다, 모른다. 좋다, 싫다 모두 생각입니다. 그걸 넘어가야 참 세상이 나옵니다.
내 겉모습, 내 성격, 내 사고방식, 내 행동방식, 내 가족, 내 재산, 내 신분, 내 학벌, 이런 거 다 참나가 아니에요. 모두 생각, 감정, 오감의 영역에 속하는 것들이잖아요. 이런 것들에 너무 집착하지 마세요. 이런 것 가지고 남을 함부로 재단하지도 마시고요.
...
내가 성격이 좋구나 하고 아는 자리가 참나 자리고요, 내가 성격이 좋지 않구나 하는 아는 자리가 바로 참나 자리입니다. 성격은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지만, 그것을 알아차리는 자리인 참나는 동일하죠. 참나는 성격의 좋고 나쁨에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p201
시간을 내서 고요히 앉아서 마음을 닦아보세요. 먼저 오감을 뭇하십시오. 오감을 일일이 없애라는 것이 아니고, 오감에 끌려가지 마시하는 겁니다. 뭔가 보이고 들리고 냄새가 나고 감촉이 느껴지고 하다라도 그냥 모르쇠로 일관하세요. 모르겠다 하고 버티세요. 무관심에는 당할 자가 없ㅅ브니다. 일어나든지 말든지 관심을 주지 마세요. 오감도 우리의 관심을 먹고 자랍니다. 우리가 관심을 주지 않으며 그 존재의 의의가 없어져 버립니다.
오감이 좀 잠잠해직 나면 마음을 무시하세요. 마음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지는 않는지? 마음이 말하는 소리들 즉 생ㄱ가이 일으키는 소음들에 신경 쓰지 마세요. 하루 종일 있었던 여러 일들에 대해 이런저런 의견을 내놓으며 온갖 성토를 할 겁니다. 가만히 있어 보면, 하루 종일 있었던 일 중에서 좋은 일 나쁜 일 떠올라서 기분이 오락가락 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도 무시하세요. 거기에 관심을 주다 보면, 생각이 중심을 못잡고 끌려갑니다. 마음을 챙기지 못해서는 어떤 명상도 성공할 수 없어요. 정신 단단히 차리고 끌려가지 마세요.
무슨 생각, 감정이 엄습해오든지. 그러든지 말든지 난 모르겠다. 하는 각오로 버티세요. 기분이 나쁘면 기분 나쁜 줄 아는 자리가 바로 참나 자리이고, 좋으면 좋은 줄 아는 자리가 바로 참나 자리입니다. ..중요한 것은 오고 가는 모든 것을 똑똑히 보고 있는 자리 입니다. ..
관심을 오로지 몸과 마음의 여러 현상을 아는 자리에만 두어보세요. ...보조스님께서는 이 자리를 텅비어 고요하되, 신령스럽게 아는 마음이라고 표현하셨습니다. ...오감, 감정, 생각이 모두 사라지고 없으니 텅 비어 고요한 자리죠. 또한 오감, 감정, 생각을 초월해 존재하되 모든 것을 알아차리는 자리이니 참으로 신령스럽게 아는 자리가 아니겠습니까?
p212
그 자리에서 튀어나온 생각, 감정, 오감에 주목하지 마시고, 그런 일체의 마음의 작용들이 튀어나온 그 자리만을 주목하세요. 그 자리만 지긋이 지켜보고 계시면 변화가 일어납니다. ...나의 참모습을 알고 나면 남의 참모습도 알게 됩니다. 너도 그것이 있구나하고 그냥 알게 돼요. 그러면 서로 배려하지 배척하지 않습니다. 상대방에게서 부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니까요.
p217
의문을 가지세요. 인생에 대한 의문 없이 사는 것은, 당장에는 편할지 몰라도 참으로 답답한 노릇입니다. 의문을 내지 않는 한 답도 얻을 수 없거든요. 의문이 없으면 답도 없습니다. 이것이 현상계의 철칙이에요. 원인을 지어야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의문을 진지하게 던지세요. 그리고 그 의문의 답이 나올 때까지 한 눈을 팔지 말고 탐구하세요. 그러면 답이 반드시 나옵니다. 이것이 참나-각성의 철칙입니다.
p227
하느님께 참다운 기도를 바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마음속을 들여다보고, 개성과 에고를 지닌 이성, 감성, 의지 작용을 일으키는 혼을 초월하여야 합니다. 그 뒤에 남은 순수한 영의 상태, 즉 에고를 초월한 진리의 상태에서 우리는 우리 마음속에 내려와 계신 하느님의 현존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p228
먼저 소리를 들어보세요. 아무 소리나 좋아요. 소리하나를 정확히 들어보세요. 1) 소리를 듣는 것에 집중 2) 소리를 듣는 나를 느껴봅니다 3) 소리에 의해 제약되지 않은 순수한 나로서만 존재합니다. 이상이 견성에 이르는 요결입니다. ...부처님께서 가장 중시하셨던 호흡도 아주 중요한 바라보기의 대상입니다. ...
나라는 존재감은 생생해요. 이것이 견성의 실증입니다....
먼저 자신의 들어오고 나가는 숨을 집중해서 바라보시고
숨을 바라보는 나를 주목하신 다음
순수한 나를 주목하시면 됩니다.
p248
생각 감정에는 진리에 대한 무지와 나, 내것만을 중시하는 아집이 현현해있습니다. 세세생생 마음을 어떻게 닦고 관리해왔느냐?의 차이에 기이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참나는 이러한 도식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
부처는 부처인 이유가 있으며, 범부는 범부인 이유가 있습니다. 누구나 자기가 뿌린 대로 거둡니다. 이것이 현상계의 철칙이에요.
...우리의 참나 자리는 현상계의 구별이 붙지 못하는 자리로서, 단지 알아차리는 자리일 뿐입니다. 이것이 불성입니다.
p264
나와 남에게 고통을 주고 해를 끼치는 나쁜 습관은 버리고 또 버리고, 나와 남에게 행복을 주고 이익을 주는 좋은 습관은 익히고 또 익혀서 완전히 내것이 되게 하라, 그러면 행동, 말, 생각이 모두 정화되어 부처의 경지에 이를 것이라는 겁니다.
p269
잘못된 습관의 종자들에게 관심을 주어서는 안 됩니다...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좋은 습관에게는 적극적인 관심을 표명하며, 그것을 습관화하여야 합니다. 무의식에 뿌리내리도록 생각하고, 말로하고, 행동으로..관심을 주고, 자꾸 생각하고, 자꾸 말로 발표하고, 자꾸 몸으로 표현하세요.
p278
부처라는 것이 별다른 존재가 아닙니다. 망령된 생각을 안하고, 이상한 행동을 안 하는 사람이에요. 황당한 생각이 나고, 이상한 짓이 하고 싶더라도, 정신 바짝 차리고 '참나'자리를 잊지 않으면서 그러한 행동들을 바로 잡으라는 겁니다. 우리의 에고(이기적 자아)는 항상 나를 최고로 여기며, 세상천지를 내 것으로 만들려고 덤빕니다. 그러니 그 생각이나 감정, 행동들이 그릇되기 쉽죠
에고는 개체적 자아로서의 느낌으로, 이것이 아주 없어지면 현상계에 존재할 수가 없어요..또 에고가 있어야 개성도 있죠. 부처님도 개성이 있어요...에고가 없이는 지혜, 자비도 배양될 수 없습니다 공덕도 쌓을 수 없고요. 중생의 아픔도 느낄 수 없고 중생을 도와 줄 수도 없습니다. ..에고는 죽여 없애는 것이 아니라, 성숙시키는 겁니다. 에고는 심부름꾼이에요 참나가 주인이라면 에고는 하인입니다. 에고는 없애야 하는 존재가 아니죠. 잘 부려서 허튼 짓 안하도록 잘 인도하기만 하면 됩니다.
언제 어디서나 에고가 제 욕심 안 부리고, 참나의 뜻을 잘 따르도록 성숙시켜야 합니다. 그래야만 에고의 인위적 조작이 가해지지 않은 보래 모습인 '무위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p282
생각, 감정, 오감으로 이루어진 현상계가 절대계에 의지해 존재한다는 것을 체험적으로 알기 때문에 생각, 감정, 오감을 닦더라도 그것에 너무 집착하지 않아요. ...절대계의 차원에서는 선악이 본래 없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현상계의 차원에서는 부지런히 선을 닦고 악을 버리는 수행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다운 보살의 길이요. 인과법을 따르되 인과법을 초월하죠. 온갖 선행을 다 짓되 선행의 결과에 집착하지 않고, 선행, 악행을 모두 초월한 절대선의 자리를 굳게 지킨다는 말입니다. ..
내가 선행을 쌓았다. 내가 악행을 지었다는 사실에만 집착해선는 에고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현상계의 본질인 인과법칙에서 벗어날 수도 없습니다. ...
참나에 의거하여 선행을 닦되 닦았다는 인과에 집착하지 않으며, 악행을 버리되 버렸다는 인과에 집착하지 않는 수행...
육조단경에서..
무엇을 무념이라고 하는가? 일체의 현상, 사물들을 봄에 마음이 조금도 오염되지 않은 것을 무념이라고 한다. 모든 장소에 두루 작용하나 또한 일체의 장소에 집착하지 않는다. ...
예수님은 율법만 잘 지킨다고 하느님 나라 가는 것이 아니라고 여기셨죠. 자기 마음속에 하느님을 모셔야지. 겉모습으로만 선행을 하고서 다 되었다고 여기면 큰일이라고 하셨습니다. ...
불교에 비유하자면 돈오는 모르고 점수만 닦는 수행자와, 돈오만 중시하여 점수를 닦지 앟는 수행자에 비유할 수 있어요. 둘다 잘못되었다는 겁니다
p289
명심보감 중에서
"선이 작다고 행동으로 옮기지 않아서는 안 되며, 악이 작다고 행동으로 옮겨서는 안 된다 ...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선은 하고 악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을 모르면 인간으로서 부족합니다. 나와 남에게 이롭고 좋은 일이 선입니다. 이런 일은 되도록 많이 해야죠. 나와 남에게 고통을 안겨주는 일, 나에게는 유리한데 남에게는 피눈물을 안겨주는 일이 바로 악입니다. 이런 일은 아무리 작더라도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합니다. 반드시 그 대가를 치러야 하거든요. 그것이 인과법칙이에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뿌린 대로 거두는 법이에요.
사정이 이러하니 현상계를 살아가는 우리는 부지런히 선을 하고 악을 버려서 하루하루 닦아가야 합니다. 죽기 전까지 닦고 또 닦아서 잠시도 쉬어서는 안 됩니다. 아무리 작은 선이라도 무시하지 말고 꼭 행하고, 아무리 작은 악이라도 무시하지 말고 절대로 행하지 말아야 해요. 이것이 점수의 바른 길입니다.
그런데 점수에도 차원이 있어요. 현상계의 법칙만을 전부로 알고 닦아서는 인과법칙으로 이루어진 현상계를 넘어설 수가 없어요....선행을 행하되 그 주체가 '나'라는 것을 내려놓지 못해요. 또 선행을 하고서 그 결과를 기대하게 됩니다. 그래서 선행의 결과물을 다른 사람의 소유가 아닌 내것을 만들고 싶어 합니다. 또한 이런 선행의 주체가 사란 사실이 널리 알려지기를 원합니다. 그렇게 무지 아집이 그득한데 어떻게 완전하고 청정한 선행을 할 수 있겠습니까?
p294
부처님께서 위대한 선행을 닦을 수 있었던 비밀은, 선악이 본래 없는 그 자리를 너무도 잘 아셨기 때문입니다. 선이라는 이름, 악이라는 이름에 집착해서는 에고의 이기적 욕심이 끊어지지를 않습니다. "내가 선을 했다" "내가 악을 했다"는 에고의 분별에서 벗어날 수가 없어요.
...선행을 한 장본인이 바로 나라는 에고의 아집에서 벗어나십시오.
...열심히 닦되 닦음이 없는 닦음을 행해야 합니다.
일체의 형상은 모두 현상계의 작품일 분입니다. 그러니 형상을 초월하여 존재하는 형상 없는 진리를 곧장 꺠달ㅇ야 합니다. 금강경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어요.
만약 시간과 공간에 의해 표현된 모든 형상들이 본래 형상이 없다는 것을 꿰뚫어 볼 수 있다면 부처를 볼 수 있을 것이다. ...
물론 현상계를 살아가는 한 이러한 구분은 엄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각각의 형상에 따라 차별성을 가지고 대해야 하죠. 현상계는 절대계가 아니에요. 그러므로 선악이 모두 형상일 뿐이라고 하더라도, 선은 해야 하고 악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p297
쉼 없이 밀려드는 파도를 무슨 수로 고요하게 합니까?
파도랑 싸워서는 끝이 없어요. 번뇌와 싸우지 마세요. 번뇌는 제아무리 위협적이어도 현상계에서만 존재합니다. 곧장 내 마음속의 본체 자리인 절대계의 참나 자리를 직시하세요. 그럼 그 순간 모든 번뇌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없을 겁니다. ..파도와 싸워서는 답이 안 나옵니다. 밤새 끙끙 앓아도 답이 없어요. 번뇌를 초월해 존재하는 참나 자리를 투철히 알아야만, 번뇌를 다스리는 힘이 생겨납니다. 무엇보다 먼저 이자리를 알아야 합니다. ..
그러나 잡념이 일어나는 것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그 잡념을 알아차림이 더딜까 두려울 따름이다.는 말이 있는 것입니다. 마음은 본래 생각하는 것이 그 주 임무입니다. 바다에 파도가 끝이 없듯이 마음에 생각도 끝이 없어요... 잡념과 싸우지 마시고, 현상계의 요동하는 마음이 아닌 순수의식 자리에 모든 관심을 집중해야 합니다.
방법은 어렵지 않습니다. "내 마음에 잡념이 일어났구나!"라고 강력히 집중하여 알아차리면 됩니다. 마음에 잡념이 일어났다는 것을 빈틈없이 알아차리기만 하세요. 잡념과 자신을 동일시하지 마시고, 잡념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고요히 바라보기만 하세요. 나는 잡념이 아니라는 사실을 명확히 알아차리고 바라보십시오. 모든 관심을 알아차리는 자신에게로 돌리세요. 그러면 모든 잡념은 삽시간에 사라지고 나만 오롯이 남게 될 것입니다.
잡념 덕에 견성할 수 있어요. 버릴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
번뇌가 일어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번뇌가 일어나는대로 본래 자리에 모든 것을 맡기고 자유롭게 닦아가세요. 번뇌가 일어났다고 자책할 시간이 없어요. ...
돈오의 체험을 통하여 번뇌가 오염시킬 수 없는 순수한 나 자리를 되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번뇌는 물론 타인의 번뇌까지 제거할 수 있는 중생구제, 홍익인간의 대사업을 추진해야 합니다.
p300
그래서 깨달은 사람에게는 비록 밖에서 날아 들어온 망상과 번뇌가 있더라도 모두 제호를 이루게 된다. 다만 미혹에는 뿌리가 없고, 허공꽃 같은 3계는 바람에 사라지는 연기와 같으며, 헛되이 변화한 현상계는 끓는 물에 사라지는 얼음과 같음을 바라볼 뿐이다.
만약 이와 같이 생각 생각마다 닦고 익혀서(참 마음자리를) 바라보고 돌아보기를 잊지 않고 선정과 지혜를 고르게 챙긴다면, 사랑하거나 미워하는 마음이 자연히 옅어지고, 자비와 지혜가 자연스럽게 점차 밝아지며, 죄업이 자연히 끊어지고, 공덕이 자연히 늘어나게 될 것이니, 번뇌가 다할 때에 육신의 생사가 끊어질 것이다.
p 321
에고의 차단=선정, 참나의 각성=지혜
p325
선정이란 한가지 주제에 일념으로 집중해서 모든 에고의 작용(생각, 감정, 오감)을 고요하고 잠잠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보통 처음에는 호습, 생각, 감정, 오감 중에 하나에 집중하는 것이 좋으며, 나중에는 참나 자체에 집중할 수 있게 됩니다. 이 모든 것이 선정에 해당합니다.
p355
통달한 사람이란...아무튼 자신의 표면의식과 무의식을 깨끗이 정화하여 더이상 무지와 아집의 업장에 장애를 받지 않는 사람을 말해요.
...내 뜻대로 말고, 참나의 뜻대로 살라!
내안의 영원한 자리 참나를 찾아내서, 여기에 모든 것을 턱 맡기고 참나의 뜻대로 살아가면 되는 겁니다. 역대 모든 성자들의 공통 주장이 "에고의 뜻대로 살지 말고, 참나의 뜻대로 살자!"는 ...
모두 다 이기적 자아인 에고의 욕망에 따르는 무지, 아집의 삶을 살지 말고, 대아적 자아인 참나의 뜻에 따르는 지혜, 자비의 삶을 살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절대계, 현상계에서 우리가 누를 수 있는 최선의 삶이에요. ..
사람이 타지 않은 빈배는 파도를 타고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것에 성내지 않아요. 올라가면 올라간 것에 만족하고 내려가면 내려간 것에 만족해요. 언제 어느 순간이나 그 처한 자리에 만족합니다. 안분지족(자신이 처한 자리에 만족해 함)의 극치이죠. 그러나 사람이 탄배는 그렇지 못합니다. 올라가면 올라간 것에 만족하여 내려가지 않고자 몸부림 치며, 내려가면 내려간 것에 불만을 품고 올라가지 못한 것에 성을 내고 화를 품습니다.
빈배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무념을 종지로 살라는 것과 같은 소리입니다. 생각이 하나도 없는 것이 무념이 아니며, 사람이 아주 없어야만 빈 배가 되는 것이 아니에요. 사람이 배를 타고 몰더라도 파도에 순응하여 배를 몰면 빈 배와 같아지며, 생각을 하더라도 에고의 욕망으로 울고 웃지 않으면 무념인 겁니다. 이것을 깨달아 자신이 처한 매 상황마다 '에고의 뜻'이 재잘대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서, 어떤 인연에 처하더라도 자유자재하여 걸림이 없으면, 그는 진정한 도인이며 통달한 사람이에요. 이러한 사람은 매사에 악을 저지를 가능성이 없어요. 매사가 지혜롭고 매사가 자비롭습니다. 그리고 정작 본인은 선을 해야지 악을 하지 말아야지 하는 의식조차 없습니다. 이미 선 자체니까요.
자연 그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삶이 힘든 이유는 나, 내 것에 집착하는 에고에 의해 좌지주지되기 때문이에요. ...
현상계는 '마음, 대상'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이 둘의 만남에서 발생하는 각종 분별 망상이 우리를 윤회의 수뢰바퀴 속으로 몰아넣는 겁니다. ...우리의 에고는 대상을 대함에 각종 욕심과 집착을 지니죠. 따라서 점진적인 수행을 닦는 이는 우리 에고의 대상이 되는 대상을 마음에서 털어버리고자 노력하며, 대상을 대한 마음이 헛된 알을알이를 일으키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
p363
육근이 경계를 대하더라도 마음이 의식에 반영된 대상을 따르지 않는 것을 선정이라 하며, 마음과 경계가 모두 텅 비어 있음을 알아서 비추어 보고 관찰함에 어리석음이 없는 것을 지혜라고 한다.
...또한 선악의 경계를 만나면 마음이 동요합니다. 여기서 선악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객관적인 도덕기준으로서의 선악이 아니라, 선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말하며, 악은 자기가 싫어하는 것을 말하는 겁니다. 즉 좋고 싫음을 말해요. 앞에서 말한 것처럼 빈배가 되어야 하는데, 자신이 좋아하는 경계 혹은 자신이 아주 싫어하는 경계를 만나면 동요해요. ...
그러니 마음에 떠오르는 경계에 대해 집착하지 않고 빨리빨리 털어 버리는 공부를 해야 합니다. ...
한편으로는 참나를 더욱 투철히 밝히고, 한편으로는 참나를 가리는 장애물들을 확실히 치워야 합니다. ...
업을 정화하기 위해서 마음과 대상을 모두 물리쳐야 되는 것은 아니에요. 집착만 없애면 됩니다. 우리가 물리쳐야 할 것은 집착이지, 마음, 대상이 아니거든요. 마음, 대상이 없으면 부처님의 보신(부처님께서 영계에 나투시는 몸)과 화신(부처님께서 물질계에 나투시는 몸)이 모두 작용할 수 없을 것입니다. 마음이든 대상경계든, 집착하지 않고 쓰는 이에겐 모두 참나의 나툼일 뿐입니다.
마음이 대상을 대하되 항상 고요하여 일체의 번뇌가 일어나지 않으면 그것이 선정입니다. 그리고 마음과 대상경계가 본래 참나의 나툼일 뿐이라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고 있으면 지혜죠.
.."이건 내 것이 아니야. 이걸 잃어버린 사람은 얼마나 가슴이 아프겠는가?"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에 에고의 헛된 욕망에 안 끌려갑니다. 이것이 지혜죠.
p377
참나가 본래 갖추고 있는 선정, 지혜인 자기 본성의 선정, 지혜를 따르는 자성문과
마음이 지니는 흐리멍덩함과 산란함을 다스리는 선정, 지혜인 수상문
p387
팔풍 (여덟가지 번뇌의 바람) : 이익, 쇠퇴, 훼손, 명예, 칭찬, 비난, 고통, 즐거움
세가지 느낌 : 즐거운 느낌, 불쾌한 느낌, 좋지도 불쾌하지도 않은 느낌
이익, 쇠퇴 (로또가 되었든 복권이 되었든 갑자기 횡재하면 우리 마음이 흔들리죠, +, -든 흔들립니다. 번뇌가 일어나요)
훼손, 명예(사람들은 누구나 명예를 중시합니다. 명예는 에고가 사회에서 인정을 받았다는 증표거든요. 그런데 누군가가 우리의 명예를 훼손시킨단 말이에요. 에고가 치명적인 상처를 받습니다. 정말 분노가 치밀어 오르겠죠. 마음이 흔들려요. 반대로 사회에서 인정을 받아서 명예가 생기면 마음이 또 흔들리죠. 이럴 때 흔히 자만하고 실수를 하고 그럽니다.
칭찬, 비난은 훼손, 명예와 동일합니다. ..
재산이 들어와도 담담, 재산이 나가도 담담, 남들이 자신을 비방하고 헐뜯서도 담담, 칭찬해도 담담...집착이 없어요. 그래서 담담할 수 있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에고와 업장이 정화되었다는 증표입니다. ...
병이 없으면 약이 필요없다. 업장이 없으면 점문의 수행이 필요 없다. 그러나 병이 있으면 반드시 약을 먹고 치료를 해야 한다. 그래서 병이 있는이 즉 돈오 이후에도 업장이 남아있는 이는 당연히 점문의 수행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p397
업장은 우리의 부족한 점, 모자란 점을 정확히 보여주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소중한 공부의 점검자들
..."과연 내 안에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참나, 불성이 존재하기는 하는 것일까?"
...꼭 돌로 풀을 눌러놓은 것 같아 자유로울 수없어요.
p406
참나는 이기적인 목표나 자극적인 재미에 무심합니다. 신기한 자리예요. 항상 공정하고 대아적이며 나와 남을 동등하게 배려하는 자리입니다. 언래 그런 자리예요.
p411
참나의 각성(돈오), 업장의 정화(정수)..이제 길을 알았으니, 죽는 그 순간까지 열심히 정진해야 합니다. ...
사람 목숨은 언제 끝날지 모르니, 지금 이순간부터 열심히 공부하라는 것입니다.
p419
사과 : 네 가지 성인의 과보 : 수다원과 사다함과, 아나함과, 아라한과
p429
문제가 발생했으면, 올바른 답을 찾아서 문제를 해결할 생각을 해야 옳습니다. ...
문제가 발생했으면 그 답을 정확히 찾아야지, "큰일 났다!"고만 외쳐서는 도와 줄 수 없는 겁니다.
...길어야 100년도 못하는 육신의 안락과 쾌락 때문에 한번 되찾기만 하면 억만 겁을 두고 우리를 부유하고 풍요롭게 할 이 보물(참나)을 절대로 포기하기 마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