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6월

비운만큼 아름다운 세상

여행길 2013. 6. 19. 10:12

비운만큼 아름다운 세상

_ 좌선ㅂ버의 길라잡이 입문편 _ 길도훈

 

 

p5

 

좌선은 근본 진리(성품 자리)를 체득하는 것으로써 본래면목을 찾고 그에 의한 진리를 관조하는 길이고 무시선은 근본 진리를 돌이켜 살피어 그 일 그 일에서 진리의 행을 닦는 길이다.

인간의 본래의 마음이 근본 진리이고 선심이며 온전한 삶의 씨앗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태어나서 생활에 필요한 지식을 배우다가 천진 면목을 잃게 되어 삶이 온통 고정 관념으로 뒤덮이게 된다.

 

p6

거창하지는 않아도 작은 일 하나에서도 선심을 드리우는 삶. 이러한 삶을 물질문명과 복지제도가 잘 된 서구에서도 점차 갈구하고 있다. 사람들의 인지가 밝아지고 있다는 증거이다.

우리 주위에서도 선심이 깃든 수행의 길을 찾아 나서며 지고한 인생을 갈구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세상이 그들을 외면하여 홀로 도심을 숨기고서 지켜가는 외통이가 되어 살아간다. 또한 과도한 일에 의해서 선심이 소진되어 가는 것을 세상의 한 모퉁이에서 가슴 아파마ㅕ 사는 사람도 있다. 따사로운 햇살과 싱그러운 바람을 좋다 보니 어느 새 뿌리보다 가지와 잎이 무성한 나무를 보며 머지않아 닥쳐올 태풍을 걱정하는 것처럼 말이다.

어떠한 역경 속에서도 서심을 잃지 않고 초연하게 이겨낼 수 있는 마음과 전쟁의 폭탄 속에서도 온전한 마음으로 일의 실마리를 하나하나 풀어갈 수 있기까지 선심을 키울 수 있는 프로그램과 그 느낌을 함께 공유하며 키워갈 수 있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p14

육근의 기관을 운용하는 것도 오히려 존절히 하려든, 하물며 쓸데없는 망념을 끊이어 두뇌의 등불을 주야로 계속하리요. 그러므로 좌선은 이 모든 망념을 제거하고 진여의 본성을 나타내며, 일체의 화기 내리게 하고 청정한 수기를 불어내기 위한 공부니라.

 

p17

대범 좌선이라 함은 마음을 일경에 주하여 모든 생각을 제거함이 예로부터 통례이니, 그러므로 각각 그 주장과 방편을 따라 그 주하는 법이 실로 많으나, 마음을 머리나 외경에 주한 즉 생각이 동하고 기운이 올라 안전이 잘 되지 아니하고, 마음을 단전에 주한 즉 생각이 잘 동하지 아니하고 기운도 잘 내리게 되어 안정을 쉽게 얻나니라.

 

p21

마음을 비우면 자신에게 솔직해지고, 맑은 샘물처럼 신선한 생각과 행동이 나타나고, 재물에 대한 시각의 변화로 삶의 윤택함과 보람을 위해 쓰게 되고, 애정이 풋풋한 인정으로 변하여 가장 인간다움으로 바뀌게 된다. 원불교에서는 자성 정, 자성 혜, 자성 계로 간추려서 말한다.

그렇지만 이 비움의 철학을 실존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안일한 마음으로는 엄두재기 조차 쉽지 않은 일이다.

마음을 비우면 멍청해 질 것 같지만 사실은 비우면 아름다워지고 밝게 빛나게 된다. 사람의 마음이 완전히 빌 때 영지는 전후생을 넘나들고, 마음은 한없이 넓어져 다 포용하고 용서하며 베풀게 된다.

 

p23

배움에 의해 기억하는 것을 넘어서서 내 마음 속에 법이 확고하게 자리 잡을 수 있는 길은 심신으로 증득해 가는 것밖에 없다. 그 길은 진리의 근본을 깨우쳐 알게 하는 '깨달음으 길'이다. 깨달음의 길을 걷는 방법 중 하나가 선이다.

 

p27

넌 스스로의 부족함을 알고 있으니 앞으로 많이 크겠다.

너는 아직 미완성의 차와 같아

아직은 좋은 차를 만들어 가는 과정 속에 있어

지금부터 습관을 잘 길들여 가면 좋은 차처럼 훌륭한 사람이 될 거야

...순진무구한 마음 위해서 점차 커가는 욕심은 성취의 힘으로 변하지만, 욕심이 커가다 보면 예의 염치나 공정한 법칙을 생각할 겨를 도 없이 욕심대로 살아가게 된다. ...

옛말에 넘치는 것보다 좀 모자란 것이 낫다는 것처럼, 말과 행동을 제 때에 멈출 수 없다면 말과 행동을 어눌한 듯 삼가 하는 것보다 더 못하다.

멈출 수 있는 힘, 이것이 수양력이고 선력이다. ...

멈출수 있는 힘이 중요하지만 진리로 향하는 집중력 등이 없다면 마치 오토바이에 대형 승용차의 브레이크를 얻은 것처럼 조화롭지 못하다. 집중력은 진리를 꿰뚫는 데 필요할 뿐만 아니라 마음의 자유를 얻는 힘의 바탕이기도 하다.

 

p30

마음의 자유를 얻는 것은 자기로부터의 조용한 혁명이다.

..그 동안의 관념과 욕심을 놓고 내 삶의 껍질을 벗어놓으면 중생에서 부처로 된다. 그리고 놓고 또 놓으며, 비우고 또 비워서 마음이 약간 바뀌어도 삶의 형태는 확 바뀌게 된다. 출발점의 작은 오차가 결과에 이르러서는 엄청난 오차를 내듯이, 한 마음에 따라 인생의 행로가 다르게 나타난다.

 

p32

선을 하는 마음에도 크고 작음이 있다. 다수의 행복에 초점을 맞추어서 선을 하는 것과 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ㅐ 선을 하는 것 모두가 앉아 있는 모습이 같아 보일지는 모르지만 실지에 있어서는 큰 차이를 보인다.

많은 사람들이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에는 자비가 있지만 자신의 행복만을 위하는 마음에는 개인주의가 있다. 물론 개인을 위해 수행을 하든지 많은 사람을 위해서 선을 하든지 최후의 결과는 하나이다. 개인을 위해서 수도를 한다고 하지만 깨닫고 나서 보면 이미 모든 것이 부처임을 알게 되어 불공을 안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 이르기까지 공부의 질이나 폭이 다르다. 다수의 행복에 생각의 촛점을 맞추는 사람이 훨씬 더 공부의 질이 좋고 폭이 넓은 인품과 일을 하게 된다. .....

서원이 크다고 하여도 그 시작점은 자기의 내면이다.앞에서 선을 조용한 혁명이라 이름하는 것은 자기의 내면에서부터 전환을 가져온다는 뜻이다. 이 전환의 요체는 바로 마음의 안정과 슬기로움과 정성심이다.

 

 p36

원불교의 좌선은 마음에 이어 식망현진(망념을 쉬고 진성을 기른다)하고 몸에 있어 수승화강(물 기운을 올리고 불 기운을 내린다)하는 방법으로 단전주선을 하게 한다. ...

묵조선은 불교의 조동종 계통으로서 일본에서 널리 하는 방법이고 간화선은 임제종 계통으로 한국에서 널리 행하는 방법이다. ...

원불교는 주로 단전주선에의한 묵조선으로 좌선의 바탕을 삼고, 정신이 맑을 때 잠시 의두와 성리를 마음에 걸고 궁구하고 연마하는 것으로 선의 방법을 취한다.

 

p48

좌선의 방법 2조에서 "편안한 자세에서 전시의 힘을 단전에 툭 부리어, 일념의 주착도 없이 다만 단전에 기운 주해 있는 것만 대중 잡으로" 하였듯이 좌선의 방법 가운데 가장 핵심이라 할 수 있다.

 

p63

그러나 꼭유면해야 할 것이 있다. 호흡을 짧게 들이쉬다가 길게 내쉬는 것이 편안하다고 하여 이런 숨쉬기를 계속 해서는 곤란하다. 호흡에 깊이가 있고 힘이 있는 동시에 영단을 쌓으려면 흡장호단의 단전주선을 해야 하는 것이다. 좋은 기운을 길들이는 동시에 깨달음에 이르러 마음의 자유를 얻기까지 바르고 큰 수행의 길을 가기 위해서 어렵지만 우리의 길을 찾아서 가는 것이다.

 

p65

좌선 전후의 몸가짐

좌선을 하려고 앉을 때에는 몸가짐을 단아하고 자연스럽게 하여야 하고, 좌선을 끝내고 일어날 때에는 편안하고 상서롭게 가져야 한다. 좌선 전후에 몸가지믈 급하고 거칠게 가지면, 좌선을 하기 전에는 선에 방해하게 되고, 좌선 후에는 좌선이 하였던 성정이 거칠게 되어 좌선을 한 보람이 반감이 된다.

 

p68

흡장호단의 호흡을 잘 할 수 있는 법은 들이쉴 때는 유념, 내쉴때는 무념으로 하면 된다.

....자연호흡은 건강한아기의 맑고 깊은 호흡과 같으나, 그 위에 미세한 부드러움과 힘이 더 있다. 이 호흡은 만들어가기 보다는 마음이 단전에 젖어 들어서 그냥 놔두면 되어지는 것이다.

 

p70

일하는 가운데에서도 한 순간이라도 영단을 잊어버리면 그것은 습관에 젖은 한 행동에 불과하게 된다. 영단을 어둡게 하는 것이 욕심이고 관념이다. 그러므로 영단이 온전한 힘을 얻으려면 성리가 되어서 생활 속에서 살아나야 하는 것이다.

수행인이라면 영단과 성리를 생명처럼 여겨야 한다. ....

선을 시작할 때는 생각에 의지해서 호흡을 기를 수 있으나 궁극에 이르러서는 이 하나의 기운이 되어야 한다. ...

우리도 최고의 수행자가 되려면 만들어지기 이전에 좋은 기운에 이르러야 한다. 기운은 마음 가짐의 발현이다. 큰 도인도 그 기운을 한 때는 숨길 수 있어도 자연스럽게 발현되는 기운은 전부 숨길 수는 없는 것이다. 다만 그 경지에 가야 그 기운을 느낄 수 가 있으니 보통 수행자에게는 수수께끼일 수밖에 없다.

 

p73

많은 사람들이 한껏 수련을 했다고 해도 기 수련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기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수양에 있어 기운을 다스리는 것이 쉽고 빠른 방법이기는 하나 수양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마음인 것이다. ....

마치 고양이가 쥐를 잡으려고 할 때 마음과 기운과 눈을 쥐에서 떠나지 않는 것처럼 마음과 기운과 전신의 힘을 단전에 내 맡기듯이 툭 부리어 내가 곧 단전이 되는 것을 말한다.

 

p77

호흡을 하는 초입자는 들숨에서의 마음가짐ㅇㄹ 그냥 공기를 마신다는 막연 함에서 벗어나 우주의 신령한 기운을 단전에 모은다는 데 두어야 한다.

 

p78

단전에 마음을 머물게 하는 것도 하나의 집착이 아니냐고 반문 할 수가 있다. 그렇다. 집착이다. 그러나 마음 하나에 수많은 집착을 묶어서 녹여내는 것이다. 결국에는 그 단전에 마음을 머물게 하는 것도 놓아야 한다.

 

p79

단전주가 잘되고 선이 편안하면 자꾸만앉고 싶어지는데, 이때 부터 선에 탄력을 얻게 된다. 그러나 해야 할 일을 놓고 앉아 있는 것은 오히려 선의 본질을 어둡게 하는 것이므로 이때 분연히 일어나야 한다.

...수행은 가슴과 정성으로 하는 것이다.

 

p81

큰 도를 구하려는 사람으 기운이 편안한 가운데 다보록하며, 마음은 안정된 가운데 힘이 있어야 한다. 이렇게 되려면 정성스런 마음으로 적공하지 않으면 안 된다.

 

p84

선의 방법은 신분의성이다. 꼭 해야 할 중대사임을 믿고 분발심을 내는 가운데서 의심이 생긴다. 서울에 꼭 급하게 볼 일이 있을 때 어떻게 하면 어서 갈꼬 생각하고, 마침내 서둘어 진행하는 것이 신분의성이다. 신분의성이 서야 철저한 선이 된다.

 

p85

초심자가 지고한 좌선법을 배우기 위해서는 기초적인 훈련이 필요한 데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가르쳐 주려는 의욕이 앞섰기 때문이다. 그 기초적인 훈련은 다름이 아니다. 우선, 마음을 편안하게 하여 선의 마음에 이를 수 있는 준비를 한다.

 

p88

선정에 드는 것은 일심에 따른 것이지 단전에 있는 것이 아니므로 꼭 단전 호흡에 수행의 판단기준을 모을 필요는 없다. 단전이 곧 깨달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

스승께서 건강을 해치면서 공부를 속히 이루려 하지 말라. 건강을 해치고는 항마밖에 못한다.건강해야 출가위도 되고 여래위도 된다고 말씀해 주신것도 이 무렵인 듯 싶다.

 

p91

자세는 호흡을 도와줘야 하는 법이다. 선에 있어서는 호흡이 자세를 우선해야 한다. ...

선을 하기 전의 마음 가짐은 선의 내용에 여양을 미친다. 선을 하기 전에 기운이 순수하고 편안해야 몸의 기운도 좋아질 뿐만 아니라 호흡도 편안해 진다. 그래야 그 마음이 호흡을 의지해서 단전에 머무를 수 있다. ...

원불교 좌선법은 단전주선이다. 호흡을 단전으로 하되 마음이 단전을 떠나지 않고 머물러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 단전에서 마음이 사는 것이다. 마음이 단전에 살다 보면 젖어 들고 젖다 보면 선정에 들게 된다.

 

p94

수행이란 망념이 들어왔을 때 망념이 들어왔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알아차리는 즉시 망념은 사라진다.

들어온 망념을 자꾸 없애다 보면 전생의 업마저 긁어내어 마음과 기운이 점점 평온해지고 집중력이 생겨난다.

 

p97

일부에서는 열심히 한다고 하지마 안으로 꾸준하게 분발심을 일으키지 못한다면 대부분이 습관적인 선에 흐르기 쉽다.

 

p98

여기에서 법위까지 언급하게 된 것은 원불교는 마음을 사용하는 법을 가르치는 종교답게 선의 궁극적인 목적도 움직이건 머무는 모든 상황에서 마음의 자유를 얻자는 데 있는 것이지 앉아서 극락을 구하는 데 있지 않기 때문이다.

 

p99

좌선 중에 모든 망념을 제거하고 진성을 기르는 것이, 일이 있을 때를 생각하여 욕심을 제거하는 것이다. 누군가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물건을 준다고 할 때에 마음이 넘치지 않을 수 있을까. 누군가가 내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물거늘 빼앗아 갈 때에 마음은 상하지 않을 수 있을까하고 반조하며 준비한 마음과 무료하게 마음을 앉아서 맑히는 것이 마음이 맑은 데에는 같을 지 모르나 마음을 사용하는 힘에 있어서는 확연히 다륵 나타난다.

 

p103

서원이 무슨 뜻입니까? 서원이란 소망이란 뜻이 담겼는데 나 만을 위한 소망이 아니라 근본적인 자아를 성찰하고 마음의 근원에서 솟아나는 지혜로써 세상의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곳에 희생의 손길을 건넬 수 있기를 바라는 소망입니다.

 

p116

선을 하는 사람은 이때 내가 하지 않으면 언제 하겠느냐하느 결단의 마음이 있어야 하고 지도자는 기다리는 마음으로 함께 하다 보면 어느날 갑자기 된다. 문제는 정성이다. 정성밖에 없다.

 

p120

미는 호흡은 의식을 호흡과 호흡이 하나가 되어서 움직여야 한다. 이것은 선을 체득한 경지에 따라서 다르나 초심자들은 등 뒤에서 단전 배 표면으로 향하여 피스톤으로 민다는 생각으로해야 한다. ...이 단저넷 발생한 열의 위치는 선을 함으로서 점점 깊어져서 단전의 본래 자리에 가까워진다. ...

이렇게 하여 발생한 열과 기운이 단전에 가득차면, 이때부터는 지켜보듯이 길러가야 한다. 이 정도만 되면 지켜 보기만 하여도 기운이 보존되며 영단으로서 길러갈 수 있게 된다.

 

p129

어느 날은 몸에 기운이 유난히도 없을 때가 있다....이럴 때는 선을 잘하려는 마음을 놓고, 몸을 어딘가에 기댁 앉거나 소파에 앉아도 좋다. 가능한 가장 편안한 상태에서 몸의 힘을 빼고 앉는다. 숨의 길이나 세기르 ㄹ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단전으로 호흡이 될 수 있도록 한다.

 

p133

생각을 놓고 마음을 놓으니

인생을 아름답게 채워 갈 수 있는여유와 신선한 생각이

소리가 없어도 듣고 잎이 없어도

만물과 더불어 듣고 이야기 할 수 있다. ...

지금 쉬고 있는

숨을 바라본다

그리고 충부하게 느낀다.

 

p159

선의 궁극은 단전을 통하여 마음을 모으고 모아서 단을 이루는 동시에 마음이 맑아지고 열리어 진리와 합일하고 진리와 더불어 둘 아닌 마음을 사용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p164

그렇다고 상생의 기운을 버릴 수는 없는 것이다. 감싸 안다 보면 어느 때인가는 돌아오는 것도 인간이니 믿고 긷려 주는 마음이 중요하다.

 

p170

여기에서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한 경지의 선의 맛을 보았다고 자만 자족하지 말고 꾸준히 하여 보다 더 맑고 영롱하며 다스운 기운이 내 기운이 되어서 내면에서부터 발현되기까지 적공하고 적공하자는 것이다.

하는 만큼 기운은 순수하고 평온하여 질 것이다. 순수는 생각으로 헤아려서 되는 것이 아니다. 수행과 훈련으로 그렇게 되어져야 하는 것이다.

 

p172

사람이 살다 보면 자리가 남을 억압하고, 돈이 사람을 속이고 명예가 양심을속인다. 이해할 수는 있지만 도란 인정으로 건네는 것이 아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진리가 도를 주지 않는다. ....

마음이 맑고자 한다면 기득권으로부터 청빈해야 한다. 이런 사람은 자리가 권력의 상징이 아니라 일의 상징이 되고 보은의 상징이 되는 것이다. 자리 뿐만 아니라 돈과 명예도 마찬가지이다. ...

올라간 만큼 마음을 비워야 하는데 말이 쉽지 실지에 있어서느 참으로 어렵다.

까닭을 놓지 않아야 하는데...

어차피 실력을 쌓아두면 자리도 생기고, 잘하면 명예도 생기게 되어 있는 것, 또 없으면 어쩌겠는가 사업장은 접어두고 공부장을 삼고 살아가면 되지 복 짓는 일은 잠시 접어 두고 공부로써 도락을 즐기며 질펀하게 살아가는 것 또한 천상라기 아닌가....

괜히 사업한다며 부족한 도심으로 죄 짓고 살 것 없다. 도심이 좀 부족하면 내려올 줄 알아야 한다.

 

p177

수행자란 수행의 고뇌를 사랑하며 정성스럽게 적공해 가는 사람이고, 수행의 평온함을 기다릴 줄 알며, 근본 지혜의 발현에 겸손할 줄 아는 사람이다. 이런 수행자에게는 진리가 한 모습만이 아닌 온 전체의 모습으로 함께 할 것이다.

여기서 염려할 부분이 있다. 진리를 알아가려면 선을 해야 하는 것인 줄 아는 것까지는 좋다. 그러나 선만하면 진리는 다 얻어진다는 생각에 고착이 될까 염려스럽다. 진리는 선만을 해서 구하기는 어렵다. 선하는 사람이 진리를 얻기 위해서는 의식이 중요하다. 선을 정성스럽게 하면 진리는 반드시 진리의 본체를 보여준다. 그러나 의식의 크기에 비례하여 진리가 열린다. 그 의식이 곧 서원이고, 화두를 말하는 것이다. 이것이 없는 수행은 설사 진리가 열렸다고 해도 모른다.

 

p188

재미를 느낀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일이다. 재미는 곳 선에 흥미를 얻고 지속적으로 해낼수 있는 원동력이기도 하지만 재미는 곧 재능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선을 일순간에 잘 되는 것이 아니라 정성에 따라 효능이 극대화 되기 때문이다. ....

조금은 느려도 정성이 있으면 시간이 좀 더디다는 것 뿐이지 반드시 선력을 얻게 되는 것이다.

 

p197

살다 보면 고의든 아니든 애매한 소리를 듣거나 공연한 불이익이 올 때가 있다. 또한 신체 리듬과 감정 리듬에 의해 마음이 울적하고 불안할 때가 있다. 이러한 스트레스를 남에게 풀 것이 아니라 마찬가지로 염불(영주) 일성에 넣어 풀어야 한다.

 

p201

들어왔다고 해도 대우를 받으려고 하지 고개 숙여 배움을 청하지 않는다. 도문을 한낱, 새로운 지식의 터전으로 여길 뿐 정신의 스승을 찾으려 하지 않는다.

 

p205

정신을 소모한 만큼 정신을 보충할 수가 이어야 영성이 함몰되지 않는다. 영성이 함몰되고 정신이 고갈되면 결국에는 일의 노예로 전락되고 만다.

마음이 허전하거나 불안아혀 짜증이 많아진다는것이 그 하나의 현성이라고 하겠다. ....생활이 아무리 바쁘다 해도 이 생에서 우선해야 할 것은 소모된 정신을 끊임없이 보충해 가는데 필요한 선이다. 선하는 시간을 많이 가져야 한다.

 

p207

현실적인 제도가 정기훈련을 해낼 수 있도록 뒷받침 할 수 없다면, 자기 스스로 일이한가한 시기를 정하여 정기훈련 기간을 정해놓고 적공을 해야 한다. 이때는 밖으로 향하는 마음과 행동과 일을 중리고 수행시간을 늘려서 선의 정력을 키워가야 한다.

 

p214

많은 능력을 얻어도 모르는 척하는 도인이 많은 것은 존절히 할 줄 알기 때문이다. 보물이 있다고 소문을 내면 도독이 모이는 것처럼 숨김으로써 도를 보존하기도 한다. 또한 이 모든 것은 도를 보존하려고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도리에 도움이 안되기 때문에 나타내지 않는 것이다.

 

p217

허령이 열릴 때 감추고 일생을 참으면 지각을 얻고 신명을 얻을 수가 있는 것이다. 사람이 돈 벌어 놓고 안 쓰기 어렵듯이 허령을 얻어 가지고 안 쓰기 어렵다. 허령이 열릴 때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p245

음식을 먹을 때 될 수 있는 대로 죽음에 이르러서 아픔이 간진된 고기와 살아있는 것을 먹지 말 것이며, 채식일지라도 탐식을 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다고 맛있게 먹는 것과 탐식을 구별하지 못하면 곤란하다. 탐식은 음식을 보고 욕심을 내어 염치를 잃을 정도로 음식에 집착을 보이는 것이고 맛있게 먹는 것은 음식에 대한 감사하고 음식의 맛을 느끼며 즐거운 마음으로 먹는 것이다. 음식을 먹을 수 있음에 감사하고 맛있게 먹는 것은 것은 건강한 삶을 영위하는 데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p254

일반인은 칭찬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좋아하고, 자기를 비난하는 소리를 들으면 몹시 언짢아 하여 밤잠을 설치게 되나,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은 정당한 칭찬이라면 감사를 드리고 정당한 비판이라면 감수하고 참회를 한다. 그러나 정당하지 않은 일이라면 변명할 자리에서는 변명을 하고 그렇지 않은 감정에 의한 비난이라면 듣고 잊어버린다.

또한 일반인은 말을 듣고 공부인의 말의 이면을 듣는다.

 

 

 

선을 하는 마음 속에는 현실의 모든 일이 마음 내면의 세계에 함축되어 있다. 이것을 알아차려 참 마음을 길러서 힘 있게 하고, 잡다한 마음을 녹여서 없애는 것이다. 이 힘으로 현실적인 시련들을 이겨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