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과 사의 큰도_전이창
전이창 / 솝리 / 2004
p15
중생들은 평소에 탐욕과 집착으로 정신을 탕진하고 고갈시켜서 정신 기운이 초롱불보다 희미해졌거나 또는 지은 복덕이 없어서 아무리 잘 죽고 싶어도 잘 죽을 수가 없다. 잘 죽지 못하면 잘 태어나기 또한 어려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최령한 인간으로 태어났을 때 살아 생전에 부지런히 생사해탈의 생사대도를 연마해서 잘 살아야 잘 죽을 수 있고, 잘 죽어야 잘 태어날 수 있으며, 잘 태어나야 또한 잘 죽을 수 있는 것이다.
p19
사람들은 평소에 죽음을 아예 자신과는 관계가 없는 먼 일로 알고 죽음 같은 것은 생각지도 아니하고 사는 데에만 급급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죽음이 눈앞에 다가오면 그때서야 비로소 공포 속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며 당황하고 불안에 떤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지각이 있는 사람은 살아 생전에 미리 죽어 갈 준비 공부를 한다. 그것은 길 떠나는 사람이 여행에 필요한 물건들을 미리미리 잘 챙겨서 여유 있게 여행 길에 오르는 것과 같다.
p21
우리가 생사를 해결하기로 하면 좌우에서 이끌어 주고, 밀어주고, 도움을 주는 불연과 법연을 잘 맺는 공부를 해야하고, 부처님과 진리에 대한 확실한 믿음을 가져야 하며, 고해 중생을 건지려는 큰 서원을 세워야 한다. 또 정신, 육신, 물질로 헌신 봉공하여 공덕을 닦고, 복력을 쌓아야 하며, 심성 단련의 정진 적공으로 착념을 놓고, 업력을 녹여서 필경 내 본래 자성을 회복하여야 한다. 그래야 우주와 내가 하나가 되고, 영생 불사의 수명을 얻게 되며, 무한 동력을 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p22
일생을 끝내고 새로운 생을 개척하는 중요한 갈림길에 있는 사후 사십구 일 동안에도 영가의 새로운 생을 위하여 정신 육신 물질로 공을 들여 주어야 한다. 부모로, 자식으로, 형제로, 부부로, 친척 이웃 등 가까운 인연으로 만났을 때 다같이 천도될 수 있도록 정성ㅇ르 다해 서로 도와주느 것이 중요하다.
p32
석가여래께서도 새벽 별을 보고 도를 깨치셨다. 별자리에 의의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수천 년 내려오면서 ㅁ낳은 사람들이 그 별을 보아 왔건만 누구도 깨치지 못하였으나 석가여래께서는 과거생으로부터 정진하였기에 견명성오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그분이 도를 깨칠 시절에 이르렀고, 인연이 닿았기 때문이다. 마치 곪은 종기가 가볍게 부딪쳐도 터지듯이 바람 부는 소리에도 깨닫고, 복사꽃이 만발한 것을 보고도 깨달은 것처럼 견성하는 데에도 시절 인연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정진 적공의 인연이다...생명을 던져서 적공할 계기를 제시하는 인연, 내 속에 잠재해 있는 능력을 계발할 수 있게 하는, 한 마디 말의 인연이 영생을 드나들면서 서로 법 받고, 받들어야 할 소중한 견성 인연이다. 이 같은 법연을 끝까지 놓지 아니하고, 어떠한 시련도 인내와 극기로 뛰어 넘어서 끊임 없이 영생을 통하여 법을 받아야만 도를 이룰 수 있고, 마침내 완전한 천도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서로 돕고 상생의 인연을 만드는 데도 공들일 줄 알아야 한다. 나를 길러 주고 나의 원만한 인격 발전을 위하여 빌어 주는 인연 그리고 나의 하는 일을 후원하고 도와주는 인연, 만나면 반갑고 헤어져 있어도 믿음이 가는 인연, 그러한 인연들이 내 주위에 많이 있으면 일에 공을 이루기가 쉽고 복된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이다.
p37
천도를 잘 받기 위해서는 신심이 또한 중요하다. 일찍이 정산 종사님께서 설사 자력으로 피안에 갈 힘이 없더라도 믿음을 통해 진리 줄을 잡고 불보살들의 힘에 의지하면 갈 수 있다고 하셨다...만일 믿음이 없이 천도행사를 하면 마치 죽은 나무에 거름을 아무리 줘도 효과가 없는 것과 같다...
그리고 봄에 씨앗을 땅에 뿌리고, 여름에 가꾸어야 가을에 결실을 얻게 된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엄연한 사실이며 진리이다. 마찬가지로 선악의 씨앗을 허공 법계에 뿌리면 인연을 따라 선악의 결실을 거두게 되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엄연한 인과의 법칙이다. ...
수도를 제법 한다고 하는 사람들도 조금만 밝아지는 듯하면 인과를 무시해 버리고, 감정 일어나는 대로 자행자지하여 죄업을 짓고 고통을 장만할 수 있다. 수도인이 설사 성리를 보았다 하더라도 인과는 불매한 지라 업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니, 이 진리를 믿고 부지런히 복업을 닦아야 진급하게 된다.
p39
능력이 모자라고 아는 것도 없는 어리석은 중생이지만 나 자신이 부처와 다름없는 성품을 가졌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내가 곧 부처요, 내 마음이 곧 부처라는 것을 확신할 때 기필코 수행 정진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러한 확신이 확고히 서야 바로 수행으로 이어져서 깨달음으로 통하고, 그로 해서 대각성불의 결실을 얻게 된다. 자기가 부처가 되어야 비로소 생전에 자기 천도를 마쳐 버리는 것이다. 어떠한 유혹에도 변하지 않고, 어떠한 위협에도 꺾이지 않는, 생명과도 바꿀 수 있는 불퇴전의 신(信)이 선다면 누구나 제도 안 될 수 없고, 천도 안 받을 수 없다. 그러므로 신(信)은 일만 선(善)의 근본이요, 영적 능력을 기르는 공덕의 어머니이다.
p40
서원은 욕심으로 발하는 이기적 욕망이 아니라 자기를 바치고자 진리께 올리는 서약이요, 제불제성께 올리는 중생 구제의 발원이다. 서원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부처를 이루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지고지순한 이타적 삶의 방향인 것이다. 서원이 없이 부처를 이룬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므로 서원은 부처를 이루는 종자다.
서원이 있어야 정진을 할 수 있고, 서원이 있어야 어떠한 시련이라도 능히 넘어 설 수 있으며, 모든 고난을 끝내 극복할 수 있다. 그러므로 서원은 부처를 이루는 촉진제요, 마장을 막아내는 방패가 되며, 업력의 장벽을 뚫는 굴착기와 같다...
서원은 능히 무명을 밝히고 업력을 뚫을 수 있다. 지극한 서원이라야 이생에서 저생으로 이러지고, 서원이 이어질 때 원력이 이어지며, 아울러 정진이 이어져서 마침내 성불 제중의 불과를 얻게 된다. 그러므로 서원 일념으로 떠나야 선근종자가 되고, 불종자가 되어서 방황하거나 타락하지 않고, 서원의 길로 바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p41
공덕이란 대가를 바라지 않고 베풀고, 보수를 바라지 않고 기꺼이 주어, 가는 곳마다 은혜가 나타나고, 이르는 곳마다 덕이 미치는 것을 말한다. 공덕을 베푸는 이 마음은 인간이 물욕을 초월할 때 발현되는 고귀한 마음이요, 공덕은 인간의 가장 숭고한 행위이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보살 공부 육도 가운데 보시를 머리에다 놓았다.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는 결코 악도에 떨어질 수 없고, 복덕이 쌓여 천도를 받지 않을 수 없으며, 불보살 같은 성인이 되지 않을 수 없다.
복덕이 있어야 천도를 받을 수 있다. 그 복을 받으려면 자연이 진급이 되기 때문이다. 복이 있는 사람이라야 이생에도 잘 사는 것처럼, 복덕을 쌓아야 다음 생을 잘 개척해 나갈 수 있고, 풍족하게 살 수도 있다. 여행을 떠나는 사람이 여비가 넉넉해야 편하게 다니고, 좋은 물건도 살 수 있듯이 죽어서 가는 길에서도 복이 있어야 내생 길이 탄탄해지는 것이다. 왜냐하면 정신, 육신, 물질로 복덕을 심어 놓으면 천고(天庫)에 복이 저축되어 있어서 다음 생에 다시 와서 누구도 아닌 자신이 어김없이 모두 수용하게 되기 때문이다. ....
관철이는 "공덕을 쌓지 않으면 하늘에 있는 내 곳간은 이처럼 텅 비어 내생에 받을 것이 없겠구나"하고 깊이 뉘우치면서 "이제까지는 내 욕심만 채우고 살았는데, 앞으로는 다른 사람을 위해서 공덕을 쌓으려고 합니다. 한번만 기회를 주십시오."...
남에게 베풀면 내 복이 장만되는데도 사람들은 이런 이치를 알지 못하고 마치 빼앗기는 것처럼 아까워하며 내 것이 영영 없어지는 듯 인색한 마음으로 마지못해 주는 일이 허다하다. 마치 농부가 씨앗을 창고에 쌓아두지 않고, 그것을 땅에 심으면 수십 배의 곡출을 거둘 수 있음을 모르는 것과 같다. ...
남에게서 받는 것은 내가 다음 생에 갚아야 할 무거운 빚인데도 남이 주는 것은 무엇이든지 복이라 하고 받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내생에 고생하며 갚아야 할 일거리를 장만하는 것이다. ...
해월신사는 이사를 가면서 살던 집에 나무를 심고, 부서진 문을 고치고, 헐어진 방벽을 발랐다 한다. 떠나면서 왜 그러는지 연유를 물었더니 사람이 지나간 뒤에는 음덕이 남아야 한다고 했다. 사람을 한 생을 살다 갈 때도 덕을 남겨 놓고 가야 하는 것이다....
물질이란 곳간에 쌓아 두면 자칫 썩을 염려가 있고 도둑이나 화재, 수재의 재난을 당할 걱정이 따르기 마련이지만, 세상에 던져서 쌓아 놓은 복덕은 많으면 많을 수록 뜻대로 뒷날 구애 없이 기쁘게 수용하게 되는 것이다.
p49
육조대사는 "견성시공(見成是空) 평등시덕(平等是德)이라, 견성하는 것이 공이 되고 평등심이 덕이 된다"하셨고, "불리자성왈공(不離自性曰空) 응용무념왈덕(應用無念曰德)이라, 성품을 떠나지 않는 것이 공(功)이요, 곧 마음을 쓰되 집착이 없는 것이 덕이라"했다. 빽빽이 그 마음을 쓰되 오욕에 물들지 않는 것이 덕이다.
성품을 보아서 성품으로 사는 것이요, 진리를 알아서 내 본연이 마음으로 진리행, 천진행을 하는 것이 참으로 큰 덕이라 했다. 천지가 큰 덕을 쓰지만 행한 바 행했다는 생각도 없고, 자랑하거나 보답을 바라지 않는 것 같이, 설사 물질을 베풀고 천하에 가득한 공을 쌓았더라도 행할 바를 행한 것이지 베풀었다는 생각이나 상이 없어야 이것이 상덕이요, 무루의 공덕이 되는 것이다. 곧 마음에 욕심이 끊어져야 무루의 공덕이 되고, 착심이 끊어져야 상덕이며, 상相이 끊어져야 무념의 공덕이 되는 것이다. ....
노자는 무덕이 상덕이라, 덕 없음이 최상의 덕이라했다. 성리에 바탕해서 상에 주함이 없고, 생각에 집착이 없이 행하는 것이 자성의 공덕이다.
p50
생사를 해탈하고 자유할 수 있는 직접적인 힘은 스스로 수행하여 자력을 쌓는 것이다. 이것이 가장 자신할 수 있고 틀림없는 길이다. ...
실로 허망한 명예를 구하려고 온갖 정력을 다 쏟지만 염라대왕은 훈장이나 마패를 무서워하지 않는다....처자 권속을 아무리 사랑하였고, 그들을 위해 있는 정성 다 바쳤어도 그들이 죽음을 대신해 주지는 못한다. 나에게 다가온 죽음이라는 절박한 문제는 어디까지나 내 문제요, 그들의 문제일 수가 없다. 그들이 나일 수 없고, 내가 또한 그들일 수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
살아 생전에 좋다고 호기 부리던 모든 것들이 죽음에는 하등 도움을 주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미로에서 헤매게 하고 지옥으로 들어가게 하는 장본인 될 수 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실로 허망한 것들을 붙들고, 무슨 큰 것이나 되는 양 놓지 못하면서 정작 해야할 수행은 등한히 한다. ..
보통 사람들은 천 년이나 살 줄 알고, 천가지 계획을 세우지만 인생이란 실로 허망한 것이다... 이 가냘프고 실낱 같은 목숨을 무슨 질긴 쇠줄이나 되는 것처럼 마냥 허송세월한다. 젊다고 해서 미룰 일이 아니라, 내 코 앞에 죽을 사자(死字)를 써놓고 부지런히 죽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다 늙어서 후회한들 젊음을 되돌릴 수는 없는 것이다. ...
예술도 재물도 사랑하는 사람도 인생의 끝까지는 함께 갈 수가 없다. 그러나 죽음까지 같이 가고 영생을 같이 할 수 있는 것은 진리에 바탕하여 쌓은 수행력이요, 평소에 지은 선악간의 업력이다. ...대종사님께서 "영원한 내 것은 정법에 대한 서원과 그것을 수행한 마음의 힘이다"고 하셨다. ...생사해결이란 남이 해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는 것이요, 스스로 쌓은 수행의 힘으로 하는 것이다.
p54
자고로 많은 성자가 출현하여 여러가지 수행방법을 밝혔으나 몰아서 말하면 정신에 수양력을 얻고, 사리에 연구력을 얻고, 작업에 취사력을 얻는 법이다. 이 삼대력만 얻고 보면 천지의 위력을 얻고, 능히 생사를 자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삼대력을 얻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챙기는 마음, 곧 대중심이다. 챙기는 마음이 빠져 버리면 생명이 빠져 버린 육체와 같다. 일이 있을 때나 없을 때, 동정간에 오직 방심하지 않는 불방심 공부라야 큰 공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공부인인 동動하고 정靜하는 두 사이에 수양력 얻는 빠른 방법은, 첫째는 모든 일을 작용할 때에 나의 정신을 시끄럽게 하고 정신을 빼앗아 갈 일을 짓지 말며 또는 그와 같은 경계를 멀리할 것이요, 둘째는 모든 사물을 접응할 때에 애착 탐착을 두지 말며 항상 담담한 맛을 길들일 것이요, 셋째는 이 일을 할 때에 저 일에 끌리지 말고, 저 일을 할 때에 이일에 끌리지 말아서 오직 그 일 그일에 일심만 얻도록 할 것이요, 넷째는 여가 있는 대로 염불과 좌선하기를 주의할 것이니라. 또 동하고 정하는 두 사이에 연구력 얻는 빠른 방법은 첫째는 인간 만사를 작용할 때에 그 일 그일에 알음알이를 얻도록 힘쓸 것이요. 둘째는 스승이나 동지와 더불어 의견 교환하기를 힘쓸 것이요, 셋째는 보고 듣고 생각하는 중에 의심나는 곳이 생기면 연구하는 순서를 따라 그 의심을 해결하도록 힘쓸 것이요. 넷째는 우리의 경전 연습하기를 힘쓸 것이요, 다섯째는 우리의 경전 연습을 다 마친 뒤에는 과거 모든 도학가의 경전을 참고하여 지견을 넓힐 것이니라. 또는 동하고 정하는 사이에 취사력 얻는 빠른 방법은 첫째 정의인 줄 알거든 크고 작은 일을 막론하고 죽기로써 실행할 것이요, 둘째는 불의인 줄 알거든 크고 작은 일을 막론하고 죽기로써 하지 않을 것이요, 셋째는 모든 일을 작용할 때에 즉시 실행이 되지 않는다고 낙망하지 말고 정성을 계속하여 끊임없는 공을 쌓을 것이니라' 하셨다....
삼대력은 마치 솥의 세발과 같아서 하나만 빠져도 완전한 인격을 이룰 수 없고, 일방에 능해도 원만한 대도는 아니다. 그러므로 더딘 것 같아도 삼학병진 공부로 정진 적공해야 할 것이다. 정진이란 부지런히 수행하는 것이요, 부당한 습관은 죽기로써 끊는 공부를 끊임없이 반복하는 것이다....
만일 정진한다고 하면서도 타성에 그쳐 헛되이 세월만 보내고 있으면 생사 고해를 영원히 벗어나지 못하고 말 것이다 깨치지 못한 채 닦는 오염수는 한 때는 착실히 닦고, 행하다가도 업력이 밀어닥친다는지 큰 시험이 몰려오면 기초 약한 집처럼 와르르 허물어지고 만다. ...
그러므로 성리를 표준해서 끝까지 방심하지 않고 죽기로써 계속 수행 적공해야 한다....
각후보림우보림(각후보림우보림)해서 무수이수(무수이수)로 더욱 불퇴전의 정진이 있어야 하고, 방황하고 갈등하는 중하근기는 누가 무슨 소리를 하더라도 스스로 자기에게 맞는 공부표준을 하나씩 잡고 꾸준히 정진 적공해야 한다. 정진 적공으로 삼대력을 얻기 위해서는 인연이 소중하고 신심과 서원 그리고 공덕이 필요하다. 법연과 상생의 인연이 공을 들이고, 확고한 신심과 충천한 서원, 그리고 공덕과 수행을 쌓아 타력에 의존하지 아니하고 내 자력으로 죽음의 길을 잘 다녀와야 할 것이다.
p59
종교에 집착해서도 안 되고, 선이 좋은 것이지만 선에 집착해서도 안 된다. 또 충이나 효가 좋은 것이지만 집착해서는 안 되고, 심지어는 도道에 걸려서도 안 된다. 무엇이나 걸리면 도가 아니다.
참다운 천도를 얻기로 하면 이러한 착심을 녹여야 한다. 우리들은 무상하고 허망한 것들을 영원히 있는 것으로 알고 집착해서 고해를 벗어나지 못한다. 이 무상한 재물을 덜어내어서 비우고 사랑하는 사람도 미운 사람도 마음에서 놓아 버리고, 일생 동안 애지중지하는 이 육신도 놓아 버리고, 마음마저도 허공같이 비워야 한다. 그래서 돌아갈 때 걸림 없는 마음으로 가고 해탈로 가야 하는 것이다.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은 착심을 녹이는 연마의 기초로서 일체가 무상함을 체관하는 것이다. 석가여래께서 수보리에게 "일체 함이 있는 법은 꿈과 같고, 환상과 같고, 물거품 같고, 그림자 같으며 또한 이슬같은 것이고, 번갯불 같은 것이니 마땅히 이와 같이 보라"고 하셨다. 우리들은 눈에 보이는 것만 볼 줄 알고 현상에 집착하지만 심안이 열린 분은 현실의 모든 것이 실상이 아니라 무상한 것임을 알기에 변화를 받아들이고 초연하여 해탈한다. ....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큰 우주 역시 한 때도 그대로 있는 것이 나리라 끊임없이 성주괴공으로 변화하고 있다...그러기 때문에 영원한 승자가 없고, 절대적 일인자도 없는 것이다. 그리고 영원한 내 것도 또한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소중하다고 여기는 것일지라도 한 때 지키고 관리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인데, 그것에 집착해서 애가 타고 간장이 상하도록까지 고통스러워 하면서 지옥을 장만하고 있는 것이다. ....
있는 것은 모두 허망한 것이니 있는 것에 집착하지 않고 실상을 본다면 곧 진여眞如를 본 다는 것이다. 관자재보살께서도 깊은 공부를 할 때 오온이 다 공했음을 비추어 보고, 일체 고액을 멸도 했다고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현실이 무상한 것임을 깨달아서, 모든 것을 도방하하고 담담하고 초연한 마음을 길들여야 할 것이요, 삼독오욕과 번뇌망상이 끊어진 본래의 공空을 미추어서 착심을 녹여야한다. ...
놓아 버린다고 해서 도피하고 저주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 그대로 수용하되 거기에 빠지지 말고 집착하지 말라는 것이다...
물질의 풍요는 자칫하면 소중한 우리의 정신을 타락시키고, 우리의 마음을 더럽힌다. 물질에 착이 붙으면 부정한 방법으로라도 물질을 취하기 때문에 추하게 되지만 만일 집착하지 않으면 세상을 유익주는 소중한 정재가 된다. 착 없이 사회에 던져서 참으로 널리 유용하게 쓴다면 많은 사람을 돕고 살려 내는 위력을 나툴 수도 있고, 정재로 인해 큰 복을 쌓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p65
가난하면 우선 불편하고, 부자유스러우니까 마음도 위축되기 쉽고, 자신의 가난이 남의 탓으로 생각되어 누군가를 원망하는 마음도 나기 쉽다. 그러나 원망은 스스로 약자임을 드러내는 것일 뿐이다. 남을 원망하는 마음을 비우고, 자신이 과거에 복 짓지 않았음을 자각하여 안분하고 분발해야 한다. ... 그러므로 가난과 불행 속에서도 성실하고 진실하여 양심을 속이지 아니하고 어떠한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끝까지 자신을 포기하거나, 탈선하지 아니하고 스스로 일어서야 한다. 그리고 용기를 가지고 어느 모로든지 정당한 대가를 얻도록 정신, 육신, 물질로 노력을 해야한다. 우선 마음으로 다른 사람들의 장래를 빌어주고, 말이라도 남의 마음을 살려 주면서, 스스로 부지런히 복을 짓는 새로운 노력의 길을 열어갈 때 하늘도 돕는 것이다.
마음 공부하는 사람은 부에도 가난에도 묶이지 않고, 빈부를 초월해서 자유로워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농짝을 비워야 한다. 필요한 옷가지만 남겨 놓고는 덜어서 부족한 이웃과 함께 나누어야 하는 것이다. ...
창고에 쌓아 놓은 재물이 영원히 나의 것인 줄 알지만 실상은 나의 것이 아니고 필경 돌고 도는 것이라, 잠깐 내가 관리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p70
사랑하고 소중하여서 놓지 못하는 인연에 대한 착념도 마음에서 비우는 공부를 하여야 한다. 평소에 일에 골몰하다가 훌쩍 일자리를 떠나면 해방된 것 같은 홀가분한 느낌이 든다. 그런데 사랑하는 사람들은 멀리 떨어져 있어도 서로 못 잊고, 죽어 가도 놓지 못하여서 수도를 가로막는 큰 장애물이 된다. 그러므로 평소에 내 마음이 누구한테 특별히 집착되어 있는가 늘 살펴서 내가 죽어서 떠나갈 때 사랑스러운 사람을 그대로 놓아 두고 담담히 갈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마음에서 놓지 못하여 담아 가지고 가게 되겠는가를 점검해서 자꾸 인연 놓는 공부를 해야 한다. ...그래서 만날 때는 반갑고, 헤어져 있으면 든든하며, 죽어갈 때는 담담하게 놓고 떠날 수 있도록 길들여야 하는 것이다.
p73
남이 나의 공부와 공덕을 몰라줄 때 또는 남에게서 크게 해를 입었거나 무시를 당하였을 때 그리고 믿었던 사람에게 이해로 배신당했을 때 참으로 견디기가 어려운 것이다. 그러기에 평소에 마음이 좋다는 사람도 이런 경계를 당하면 마음이 뒤집혀 버려서 평소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버린다. 그러나 인욕 공부하는 사람은 그런 상황을 원망하거나 보복하지 아니하고 전업으로 알고 자기 양심을 대조하여 참회하고, 기도할 뿐 아니라 오히려 공부할 기회가 온 줄 알고서 인욕정진을 하여 전화위복으로 삼는다....
아무리 억울하고 분하더라도 실은 자기가 과거 어느 생에서인가 지었던 업일 수도 있으니 인과를 확실히 믿어서 원망하지 말고 참회하여 업을 녹여야 하며, 또 공부과정에 있는 시험으로 알고 잘 넘겨야 한다. 그러하면 그 경계가 오히려 나의 공부를 한 단계 더 성숙시키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 대산종사님께서는 견성에 토가 떨어졌는가 안 떨어졌는가를 보려면 죽도록 예쁜 사람이 있꺼나 병이 나도록 미운 사람이 있으면 견성 도인이 아니며, 복수심이 있고는 도인은 아니라고 하셨다. ... 설사 작은 경계라 하더라도 참지 못하고 터뜨려 버리면 그 순간은 시원할 수도 있으나 지내고 난 뒤 생각하면 씁쓸하기만 한 것이다. 한번 두번 감정을 쏟아 버리기 시작하면 갈수록 쏟아 버리지 않고는 못 견디는 관성이 생겨 천년을 가도 참는 공부를 할 수가 없게 된다.
공부인이 수도 문중에 들어와서 그 곳에 잘 적응하고, 상하가 잘 통하려면 인내와 극기를 필요로 한다. 그런데 만일 그 상황이 도저히 적응할 수가 없다면 어쩔 수 없이 피경하는 방법을 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인내해서 적응할 수만 있다면 백만 대군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얻는 것 같아서 천만 경계 중에서 능히 취하고 능히 놓는 힘이 쌓인다. 그래서 하기 싫은 일이지만 반드시 해야 할 일이면 능히 할 수 있게 되고, 하고 싶지만 꼭 하지 말아야 할 일이면 하지 않게 되어 어떤 어려운 경계라도 바르게 취하고 놓는 자유의 힘이 쌓이는 것이다. 만일 이렇게 인내하고 살 수만 있다면 그 곳이 별 소득이 없고 허송세월하는 무의미한 일터같이 느껴지더라도 실은 큰 힘을 얻는 참으로 의미 있는 일터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참는 공부한다고 마치 여석압초로 뿌리는 뽑아내지 아니하고 위에다가 돌로 눌러 두기만 해서는 안된다. 그 풀이 죽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옆으로 비틀린 모습으로 커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원한을 풀지 아니하고 분노를 가슴에 쌓아 두거나 무조건 참는다고 눌러 두기만 해서는 진정한 인욕 공부가 되지 못한다. 끝내는 눌려 있던 힘이 뭉쳐서 엉뚱한 곳에서 무서운 힘으로 폭발하여 걷잡을 수가 없게 되고, 또 병만 만들기 때문이다.
만일 마음 공부하는 사람이 원수를 가슴에 안고 원망과 진노심, 복수심으로 가진 채 무조건 참는다고 눌러 두기만 하면 이는 포도가 아니라 포한이 된다. 마치 폭탄을 묻어 놓은 것 같아서 자신도 파멸하고, 세상도 파괴하게 되는 것이므로 진정한 인욕 공부로 이 진노심을 녹여 내어야 큰 공을 이루는 것이다....
마음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어떠한 원심도 먼저 안으로 진리와 통하는 참회 기도로써 녹여 가야 한다. 사자도 제 몸에 상처가 나면 동굴 속에 들어앉아 스스로 핥아서 그 상처가 완전히 아물어 치유가 된 후에라야 비로소 밖으로 나온다고 한다. 자신을 돌이켜 내 삶이 떳떳하였는가, 양심에 부끄러움이 없는가를 대조해서 혹여 잘못이 있었다면 전업을 깊이 뉘우치고, 진리 전에 이 경계를 스스로 녹일 수 있는 힘을 내려 주시기를 청원하며 참회기도를 해야 한다.
그리고 혼자 힘으로 넘겨지지 아니할 때는 법 있는 스승을 찾아서 고백하고, 이 경계를 넘어설 수 있는 바른 지혜와 힘을 얻어야 한다. 그러면 고백하는 중에 스스로 해결할 길이 은연 중 떠오르기도 하고, 억울한 마음이 자신도 모르게 풀려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뜻이 통하는 도반으로 심우가 있으면 그때그때 서로 통해서 도움을 얻어 마음에 쌓이는 찌꺼기를 털어내어야 마음 가운데 병이 없이 공부가 진취될 수 있다...
그리고 미운 사람을 위해서 기도를 하면서 원심을 풀어가는 방법도 있다. .. 또 이 무서운 원심과 증착심을 녹이는 데는 사회의 공익을 위해 내 소중한 재물을 던지거나 불행한 이웃을 위해 내 심신을 바쳐 버림으로써 내 마음을 허공처럼 비우는 방법도 있다. ....
그리고 진정한 인욕 공부를 위해서는 원친이 없는 우리의 본래 자성에 돌아가서 증착심을 녹여내야 한다. 원친이 없고, 원친이 평등함을 깨닫고, 원친을 구별하고 분별하는 나마저 본래 없는 것임을 깨달아서, 너도 없고, 나도없는 데로 돌아가야 한다. 현실에서는 옳고 그르고, 좋고 나쁘고, 밉고 곱지만 원래는 이 분별이 없는 것이다. 그러니 너니 나니, 남자니 여자니 하는 것도 또한 원래는 없는 것이다. 그 몸을 받아 버리니까 마음이 그렇게 된 것이지 마음 이전의 성품에는 이도 저도 아닌 것이다.....이 없고 없는 본래 성품에 돌아가 미워하는 마음을 녹여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미운 사람도 나도 없기 때문에 결국 하나가 되는 것이다.
억울하고 분한 마음이 나오는 근원을 찾아서 들어가 보면 '나'라는 것이 있다. 나는 죽도록 애를 쓰고 살았는데 이렇게 대접할 수가 있는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이럴 수는 없다는 섭섭함이 가슴에서 꺼지지 아니하고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분하기만 한 것이다....
나이도 연조도 착실히 살았다는 생각도, 또 나만이 정의요, 나만이 옳다는 독선도 다 없애고, 거짓 나가 없는 본래 우리 성품인 참 나로 돌아가야 한다. 부모미생전 참 나로 돌아가서 이 거짓 나를 녹여 내야 한다. ....
인욕 경계는 사람이 들어서 몰라 주고 인정해 주지 않는 것 같지만 실은 진리가 나를 부처로 만들기 위해서 한 번 흔들어 보는 것이다. 이 경계는 중생으로 떨어지느냐 아니면 법줄을 잡고 올라 채느냐 하는 중요한 시점이다. 그러니까 그대로 중생으로 머물려면 거짓 나를 참 나인 줄로 알고 집착하고, 억울해 하고, 분해하고, 미워하면서 살아야 하지만 만일 부처가 되기로 하면 죽는 폭잡고, 거짓 나를 죽이고, 내가 없는 본래로 돌아가서 참 나를 살려내야 한다. 낙낙 장송이 일조 일석에 된 것은 아니다. 숱한 세월을 추위에 견디고, 눈 비바람을 맞아서 된 것이다....
일생 동안 동분 서주하며 모은 나의 그 소중한 재물을 던져 다른 사람들을 도울 때 음계에 복덕이 쌓이는 것이고, 내 귀중한 목숨을 바쳐 남을 살리고, 많은 사람들의 복리를 도울 때 영적으로 숭고하여지는 것처럼 인욕을 통해서 거짓 나, 감정의 나가 죽을 때 영적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그래야 진아가 살아나고 법신이 살아나게 된다. 한 번 죽으면 반드시 살아나는 것이요, 함지사지를 지내고 나면 반드시 공을 이루는 것이다. 진리는 우리들에게 도를 거저 주지 아니하고, 부처를 공으로 주지 않는다. 도와 부처는 나의 신명을 바치는 인욕의 공을 쌓아서 원심이 녹아야만 비로소 얻을 수 있는 진리의 값진 선물인 것이다.
p85
죽음이 지식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돌이라도 감동시킬 설법을 한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p91
마음을 정하는 것이 마음을 편하게 하는 것만 못하고, 마음을 편하게 하는 것이 마음이 없는 것만 같지 못함입니다. 내가 원래 배를 탄 바가 없었으니 풍랑이 없고, 풍랑이 없었으니 죽을 염려가 없고, 죽을 염려가 없었으니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p992
일체 바깥 경계에 물듦이 없고, 착됨도 없이 마음에 경계가 없어서 경계는 경계요, 나는 나인 것이다. 마치 연잎에 비가 내려도 물방울만 궁굴듯이 경계를 당할 때마다 순간순간 비워버리고, 집착심이 일어날 때마다 즉시 놓아 버리는 공부를 해서 빈 마음으로 일체 경계를 접응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많은 보시를 하였으되 보시한 바가 없고, 무량 선행을 행하였으되 행한 바가 없다. 나도 없고 너도 없는 허공심으로 행하는 것이다. 금강경에서는 응무소주이생기심이라고 한 마디 말로 무주심(無住心)을 밝혀 주셨다. 진정한 허공은 언어도단하고, 심행처가 멸한 대선정이다. 찰라에도 천생만사하는 번뇌와 사렴을 비워 버리고 대선정에 들어야 비울 것도 없는 허공을 차지하는 것이고, 진리와 내가 한 덩어리가 되며, 한 몸이 되는 것이다. 이 무착, 무념, 무상은 나의 영원한 수명이요, 참 생명이다. 이 빈 마음에서 나와야 묘유요 빈 마음에 바탕해야 자비가 나오고 정의가 나온다. 그러므로 이 마음 비우는 공부가 가장 큰 공부요, 비울 것도 없는 진경에 들어야 생사 없는 자리에 드는 것이요, 생멸 없는 자리에 주하는 것이다. 이것이 대열반이다.
p95
사치와 낭비를 하면서 참회한다 하여도 진리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검소하고 성실한 생활이라야 비로소 죄업이 씻어지는 것이다. 만일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고, 낭비를 하면서 참회한다고 하면 우리 마음에 그 죄를 기꺼이 용서해 주고 싶은 마음이 나지 않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진리적으로도 사치하고 호강하는 그 사람의 업이 씻어질 리가 없고, 또 스스로의 마음 속에 있는 업장이 씻어지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생활을 개선해서 종전과는 다르게 근실하고 검소하게 살아야 한다.
그리고 선업은 마음과 행동이 정당하고 법다워야 한다...또 선업은 정신, 육신, 물질로 부지런히 봉사를 하면서 살아야 죄업이 씻어진다...그러므로 생활이 진실하고 법다우며 정신, 육신, 물질 간 어느 면으로든지 봉사하면서 참회해야 한다.
p100
선은 물들고 더럽혀진 마음을 정화하는 것이다. 이는 나의 원래 분별주착이 없는 성품자리, 원적무별한 나의 정신을 지키는 것이다. 객심인 분별 사량을 닦아 내고 나의 본래 청정한 성품인 태허와 같이 원만한 자리, 적멸의 자리에 드는 것이다. 삼독심으로 일어나는 무거운 번뇌와 티끌처럼 떠도는 잡다한 생각들을 모두 털어 버리고 단전에 일념을 집주해서 마침내 일념마저 놓아 버릴 때 바로 삼매심에 드는 것이다. 이것이 나의 참 마음이요, 본래의 마음이다.
음식이 달고 쓰고 신맛을 느끼는 것은 혀 끝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나 위에 들어가면 일체의 맛이 사라지고 말듯이 우리의 좋고, 나쁘고, 즐겁고, 슬픈 마음이 선정에 들면 사라지고 모든 분별도 끊어진다. 그래서 초자연과 합일하는 것이요, 일체 유정과 무정이 동체가 되어 대자와 대배가 샘솟는 것이다. 그러므로 선정에 들어야 우주와 내가 한 덩어리가 되어 체합하며, 이 자리에 들어야 대휴식처에 드는 것이요, 영원한 생명인 무량수를 얻는 길이다.
p114
남의 생명을 죽이고, 남의 마음을 죽이는 잔인한 마음, 남의 재물이나 소중한 것을 훔치는 도둑심, 남을 속이고, 하늘을 속이고, 자신의 양심을 속이는 거짓된 마음, 남을 멸시하는 아만심이나, 교만심, 또는 시기하고 질투하는 마음이 저열하고 타락된 마음이요, 나를 중생으로 만들고 악업을 지어 영겁을 육도로 윤회시키는 마음이다. 이 마음이 본래 없는 생사를 스스로 만들어서 죽는다고 불안해 하며, 공포에 떨게 하는 것이다. 바로 이 마음이 탐욕으로 집착하고, 애정으로 집착하고, 원망과 증오로 집착하여 무명이 되고 삼악도를 장만하는 가장 저급하고 하열한 마음이요, 타락된 하등심인 것이다....하고 안하는 것은 오직 자기 뜻에 있다.
p122
성직자는 어디까지나 희생적이어야 하지만 아무리 종교 사업이요, 인류구원의 세계 사업이라 하더라도 다른 사람에게까지 공사라는 이름으로 희사를 강요하거나 빼앗는 것처럼 손해를 주어서는 안된다. 공사라서 어쩔 수 없이 내는 것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상극의 업이 이루어지게 된다. 공사를 하는 데에도 욕심에 집착해서도 안되고 무리하게 하거나 지나치게 해서도 안된다. ...
대개 재물에 집착하게 되면 이성이나 지성이 마비되어 버리고, 예이와 염치를 불고하게 된다.
p135
별것이 아닌 조그마한 이익을 위해서 세세생생 상극의 인연을 맺을 수가 있고, 또 무슨 일을 처리할 때 모질게 자르거나 가혹하게 해서 원수를 만들기 쉽다. 내가 조금만 손해 보면 다 해결되는 것인데, 기어코 이익을 보아야 하고, 한사코 이기겨로 할 때네는 반드시 주의 사람과 원수를 맺는 것이다.
그리고 흔히 가까운 인연이나 내가 잘해 준 사람은 함부로 해도 괜찮다고 생각하기 쉬우나 열 번 잘해주다가 한 번 잘못하면 열번 잘한 ㄱ서은 마음에서 다 없어져 버리고, 한 번 잘못한 것만이 가슴에 못이 되어 꽂히는 것이다. ...그러니 열 번 잘하려고 애쓰지 말고, 한번을 잘못하지 않도록 아주 조심해야 한다. 나 스스로도 원착심을 씻어야 하지만 절대로 상대방에게 한을 심어주어서는 안된다. 이 한풀이는 끝이 없는 것이다. ....
누구도 중간 역할을 잘 해낼 수 없다. 제삼자가 시와 비를 말하는 것은 잘 모르고 하는 짓이다. 쇠사슬처럼 얽힌 업연이라, 지금은 이 사람이 잘못한 것 같지만 과거생으로 소급해 보면 실은 그 원인이 저쪽에 있기 때문인 것이다. 만일 자기가 갚은 차례가 되었을 때 죽기로써 참아 넘기려는 깊은 공부가 아니면 그 목을 넘길 수가 없고, 신명이라도 바쳐서 따를 스승의 바른 지도를 받지 않으면 결국 그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다시 걸고 넘어져 상극의 업연을 끝맺지 못한다
우리 속담에서 "무척 잘 산다"는 말을 증산 선생께서는 "앞으로 척이 있는 사람은 살아 남기 어려울 것이라고 하면서, 척이 없어야 잘 산다"고 하셨다.
p148
부처님께서 당시 제자들에게 걸식하도록 한 것은 대중의 식생활을 해결하는 방법이기도 하였겠지만 수도인들의 아상과 명예심을 저 밑바닥까지 부수는 공부법이었던 것 같다. 수도인은 스스로 돌이켜 보되 옛날 계급 사회에서의 칠반천인과 같이 천대받고도 살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인생의 밑바닥에서 학대와 천대를 받아도 견디고 살 수 있을 것인가, 혈심을 바쳐서 살았는데 교단이 인정하지 아니하고 대중이 몰라 주어도 불평이 없고, 여한이 없을 것인가, 그리고 명예를 가졌더라도 자만 자대하지 아니하고 진퇴를 초연하게 때에 맞제 할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해 보아서 마음 속 깊이에서 명예심을 뿌리 뽑아야 한다.
진리가 시험하기 위해 모든 것을 다 빼앗아 가더라도, 모자란 듯 살고, 광인처럼 살 수 있고, 세상의 멸시와 천대 속에서도 태연하고 담담하게 본심을 지킬 수 있다면 참으로 명예를 초월한 사람이요, 더 큰 명예를 얻을 수 있는 사람이다.
p152
인륜과 도덕을 무시하고 양심에 어긋나면서 정의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그리고 최대 다수의 행복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한 두 사람의 이익이 아니라 다수의 복리를 위하고, 자타간에 이익이 되어야 영원한 정의라 할 것이다. 자기 이익을 위한 욕심이나 사의를 정의라 한다고 해서 정의 될 수는 없는 것이다....설사 진정한 정의라 하더라도 정의에 집착해 버리면 정의가 감정으로 변질되어 버리고 만다. ...
불의를 타도하거나 속박하는 것이 아니라 인내하고 포용해서 불의마저도 같이 정의가 되고, 서로 같이 사는 동반자가 되게 하는 것을 바로 대의라 하신 것이다. 크게 용서하고 사랑하여 덕화가 널리 미치는 것이 곧 대의요, 그 뜻이 만고에 변하지 않는 것이 참 대의인 것이다.
진정한 정의란 정의, 불의가 본래 비어 버린 성품에 바탕해서 나와야 하고, 업력이 녹아 버린 빈 마음에서 나와야 한다.
p160
교화란 많은 설교나 설득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설사 한 마디의 설교가 없다 하더라도 종교인다운 말과 실천적 행동으로 자연스레 물이 스며들어가듯이 사람의 마음 속에 젖어들게 하는 것이다. 그것이 그 사람의 마음 깊은 곳에 교화의 한 점을 찍어 놓는 것이 된다.
내종교가 좋다고 생각한다면 다른 사람들도 그들이 믿는 종교가 좋을 것이다....모든 종교는 문호만 달리할 뿐 진리는 하나인 것이다. ...성자들은 때를 따라 법을 내기 때문에 모든 종교가 일률적으로 같을 수는 없다. ...내가 믿고 있는 종교의 교주가 참으로 위대하다고 믿는다면 다른 사람이 믿는 남의 종교의 교주도 그러하리라고 믿고, 여러 생을 드나들면서 어느 생에 어떻게 만나더라도 나를 구원해 주는 구아주가 되도록 남의 교주라도 마음에 모시고 인연을 걸어 놓아야 할 것이다.....
성인들의 뜻은 인류 구제에 있고, 이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교단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내 교단의 발전을 위해서 인류를 괴롭힌다면 올바른 종교라 할 수 없다....비록 종교로서 공인되었고 진리적인 종교라 하더라도 내 종교에만 집착하면 진정한 종교인이라 할 수 없다. 종교인들이 성숙해져서 서로 화합하고 형제와 같이 넘나들어야 세상에 평화가 올 것이다.
p170
계율을 지킴으로써 성직자의 공부도 깊어 가지만 밖으로는 품위를 지키게 되어 사회인의 존경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성직자가 계율을 지키지 않고서 사회인과 다를 바가 무엇이겠는가.
p175
내가 가는 곳에는 어디나 일거리가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다. 유일학림에서 공부하기 전에 수계 교당 초창 일 년을 살면서도 교당 신축 문제로 적립 적금을 하여햐 했고, 수복 후 서울 교당과 종로교당에서도 일이 있었으며, 일이 없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간 원평교당이 그러했다. 아주 쉬는 폭 잡고 자원한 신도안이 그러하였고, 동산선원과 중앙훈련원, 삼동원에서도 다 내가 할 몫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에 와서 생각하여 보니 결국은 누가 맡긴 것이 아니라 내 몫을 내가 찾아가게 된 것이었다.
p177
그러나 좋은 것도 지나치면 도가 아니다. 그때 지나치게 돈을 아끼다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서운했던 일, 영원히 보상할 수도 없는 일이 생각난다....그리고 여성 수도자들은 일생을 독신으로 오롯이 지키기로 서원 올렸으면 철주의 중심을 세우고 석벽의 외면이 되어 천만 유혹도 넘어서야 한다....
정남 정녀로 사는 것이 결코 고귀한 삶을 살기 위한 수단이 될 수 없다. 정남 정녀는 성불을 위해서 세욕을 포기한 것이요, 번거로운 인연에 매이지 아니하고, 오롯하게 세상에 몸을 바치기 위함이다. 정녀를 위한 정녀가 되어서도 안되고, 만일 정녀로 사는 것이 무슨 벼슬이나 한 것 같이 유세를 부려서도 안된다.
정남과 정녀는 진실로 부처를 이루려는 서원으로 먹는 것 입는 것도 불고하고, 인류 구제를 위하여 몸 바칠 각오가 선 사람이다. 누구의 권유에 의해서 타의로 하거나 어떤 사정이 있어서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의 의지로 긍지를 가지고, 후회없이 정녀를 서원하고 재색명리 그 무엇에도 걸림없이 살면서 피나는 정진적공으로 힘을 쌓아 기필코 자기제도를 마쳐야 정녀를 서원하게 된 목적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
정녀들은 오탁한 세상을 맑히는 생수다. 비록 못나고 부족하더라도 세속에 정신을 빼앗기지 않고 오직 이 회상을 내 집 삼아서 오롯이 바치는 혈심으로 이 회상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고, 밑거름이 되어왔다. ...
그리고 성직자들은 안으로 먼저 나의 교화가 이루어져야 비로소 세상을 교화하고 남을 교화할 수 있다. ...배추 한 포기만 수확하려고 해도 하늘도 공을 들이고, 땅도 공을 들인다. 그런데 자기 제도의 공을 들이지 못한 사람이 남을 제도한다고 외쳐되면 세상이 시끄럽기만 하고 별 효과도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성직자가 함구하고 있으면 성인들의 법은 어떻게 전할 수 있을 것인가? 남의 정신적 지도자가 되어 스스로 공 들이지 아니하면 무엇을 가지고 남의 빈 구석을 채워 줄 수 있겠는가. 남을 교화 하기로 하면 먼저 자신 교화에 몇 곱절의 공을 들여야 비로소 교화할 수 있는 힘이 쌓이는 것이다. ...사람들은 모방 심리가 있기 때문에 말로서 하라고 하면 거부하기 쉽지만 먼저 자기부터 솔선 수범하고 있으면 따라서 하게 된다. 굳이 남에게 권하는 교화보다는 자기가 스스로를 열심히 교화하고 있으면 세상은 은연중 교화가 되는 것이다. ...
교화 일선에 나서는 여자 교역자에게 이런 글을 써준일이 있다. 첫째, 새로운 사람을 많이 교화하는 것도 좋으나 교도 한 사람이라도 상대를 짓지 않는 것이 큰 교화요, 둘째, 한 때 성황을 이루는 것도 좋으나 한 사람이라도 혈심을 심어 주는 것이 깊은 교화요. 셋째, 체계 있게 조리 있는 많은 말로 교화하는 것도 좋으나 안으로 스스로 기도와 선으로 적공하고, 밖으로 신명을 바쳐 덕화가 미치고 감동을 주는 것이 더 높고 원만한 교화이다. 성직자는 남의 비밀이나 허물을 보고 들을 때 분화구처럼 뿜어 버리거나 폭포수처럼 쏟아 버리지 말고, 천지같이 묵묵하고 비장하는 솔성의 도가 있어야 할 것이다고 했다.
p185
성직자가 성직에 대한 착념을 없애는 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일을 할 때에도 철저한 공부심으로 해서 일 속에서 공부가 익어 가고, 힘을 얻으면서 일을 해야 하는 것이다. 만일 일을 한다고 공부를 등한히 하면서 "성직을 수행하니까 생사가 해결되겠지"하고 있다면 이는 큰 오산이다. 천 년이나 늙지 않고 일할 줄 알고, 젊은 힘으로 죽을 둥 살 둥 일만 하다가 병이 들거나 늙어 힘이 없어질 때, 또는 뜻밖에 어찌할 수 없는 절박한 상황에 부딪칠 때 허망하고 허탈하여 후회만 남기 쉽다. 그 누구도 생사를 대신하여 해결해 줄 수 없고, 그 무슨 일도 나의 생사 해결에 힘이 될 수가 없다. ....
만일 성직을 수행하고서 허탈에 빠지거나 환멸을 느낀다면 얼마나 애석한 일이겠는가? 그러므로 일 속에서 도량상규를 철저히 지키고, 생사를 연마하며, 일심 대중을 놓지 않고 꾸준히 노력하여 법력을 얻어 자기 제도를 마쳐 버려야 한다.
그리고 일이 아무리 좋지만 집착심으로 일을 하거나 일을 안하고는 못 배기는 일꾼이나 사업가로 떨어져 버리면 자신에게도 손해요, 교단에도 손실이다. 착실하게 사는 것을 흔히 잘 산다고 한다. 그런데 이 잘산다는 것이 집착하면 큰 병통이 되기 쉽다. 애쓰고 살면 애쓴 만큼 상이 남게 되고 착이 되어, 누구도 그 사람을 이러고 저러고 하지를 못하게 되는 것이다. 혈심을 기울여 한 일이 어찌 내 의식 속에 잠재하지 않겠는가?
일 속에 있으되 일에 초연해야 하고, 혈심을 다하지만 일에 빠져 버리지 않고, 조용한 가운데 흔적 없이 해야 한다. 일을 잡아 할 때가 되면 잡고, 놓아야 할 때가 되면 일을 놓는 집방자재하는 공부심으로 일을 해야 한다.
그 사람이 애타게 이루어 낸 공적을 당연히 주변에서는 이해하고 평가하여 주어야 마땅하나 정작 본인은 무념 무착으로 일을 하되 일에 묶이지 아니하여야 한다. 만일 중병이 생겼을 때에는 중도에라도 일을 놓고, 바로 생사 연마에 들어가야 하며 공심이라는 생각과 책임감에 집착하여 끝내 일을 붙들고 있어서도 안된다. 그렇다고 공중 집에 살면서 "굳이 애태우면서까지 살 필요가 있겠느냐"하고 일을 회피해도 좋다는 것은 아니다. 젊어서 땀흘리지 않으면 늙어서 눈물 흘린다는 말처럼 성직자가 혈심으로 봉공하지 않으면 빚만 쌓이는 것이다. 공인으로서 일을 할 때에는 어디까지나 진리로 하고, 법으로 하고, 공의로 할뿐 무엇에도 집착해서는 안된다. ...
물도 오래 고여 있으면 썩는다. 그러기 전에 스스로를 변화시켜야 한다. 고생하면서 스스로 이룩한 곳도 십 년이 넘으면 그곳에서 수용할 운이 다한다. 그런데 남이 피땀 흘려 이룩한 곳, 안이한 곳만 찾아가서 오래 머무르려고 하면 진정한 성직 수행은 아니다. ....
성직자가 가야 할 가장 바람직한 곳은 남이 애써 이루어 놓은 곳이 아니라 내가 할 일이 기다리고 있는 곳이다. 성직자는 일생에 적어도 한두곳쯤은 스스로 땀흘려 이루어 내는 공을 쌓아야 한다. 그래야 다른 사람이 애써 이룬 공을 이해하게 되고, 그 노고에 진심으로 고마워하고 감사할 줄을 알게 된다.
p197
대산 종사님께서는 당신 스스로 산 송장으로 살았다고 하시면서 공인은 나무토막이 되라고 하셨다. 이말씀은 공인이라면 스스로 무성이 되어 버리거나 자기 주견에 의해서만 일을 처리하려 말고, 스스로 나무토막이 되고 산송장이 되어 공법 정신을 가지고 공의와 공명에 따라 살라 하심이다. 나의 의견이 모두 옳다고 판단되더라도 공인되지 않을 때는 나를 죽이고 반성하면서 안으로 접어 버릴 줄도 알아야 한다. ...계문은 반드시 지켜야 하지만 지킬 줄도 알고, 범할 줄도 알아서 열고 가릴 줄을 알라고 한것이다. 계문을 범함으로써 생명을 살려 낼 수 있거나 세상에 평화를 가져올 수있다면 큰 덕을 위해서는 법에 집착해서만은 안된다.
p203
진정한 성직자는 성직자가 아니어야 참 성직자이므로 교무도 교무가 아니어야 참교무다. 만일 마음에 성직자가 되어 거기에 집착해 버리면 수도한다는 상, 성직에 몸 담았다는 우월상이 마음 속에 자리 잡아 수도에 큰 마장이 된다. 그래서 공부도 없이 세인들을 낮추어 보고, 권위ㅡ이식만 생겨나서 하나의 껍질을 쓰게 돈다. 도가에서 연륜이 쌓이면 나이 먹은 상, 무엇을 좀 알면 안다는 상, 무엇을 행하면 행한다는 상, 무슨 일을 좀하면 일했다는 상, 이것이 참 공부에 들어가는 데 큰 함정이 되는 것이다. ...
고기를 잡았으면 통발을 놓아 버려야 하는 것인데 잡을 때마다 하나씩 포개어서 싸들고 다니는 것이다.
만일 중추 번뇌에 시달리다 조금 머리가 숙여진 것 같으면 공부가 깊어진다는 생각, 선이 잘 안되엇 괴롭다가 몸이 편안하고 마음이 편안하면 공부가 다 된 것 같은 생각, 의두가 잡히지 아니하다가 잡히는 것 같을 때, ...대단한 일이나 이뤄 가는 것 같은 생각에 빠지기가 쉽다. 일념을 집중하되 일념마너 놓아버려야 하는데, 일념되었다는 생각이 있으면 이는 일념이 아니라 잡념이요, 번뇌와 망념이 되는 것이다. 선도 법도 정의도 다 떨어져 버려야 하고, 도라 하는 것도 붙이지 말아야 참 도다. ...조금만 걸려도 도와는 멀어진다. 보살지에 오르고 불지에 오르더라도 마음에 보살과 부처가 없어야 참부처다 ....성직자를 포함한 모든 수도인들은 반드시 상을 부수는 공부를 해야 한다. 그래야만 업을 초월하고 서원한 불지를 증득할 수 있는 것이다...비록 아는 것이 부족하고 수행이 깊지 못하더라도 또 나이나 연조가 적고, 법위가 낮은 성직자라 하더라도 신심과 공심과 공부심만 투철하다면 이 고비를 무난히 넘길 수 있다고 믿는다....참으로 신심, 공심, 공부심만 있다면 어떤 어려움도 딛고 서서, 스스로도 성공하려니와 교단에서도 무엇과도 바꾸지 못할 참으로 소중한 보물이 될 것이다. ....온갖 고생을 달게 받고 교단을 위하고 인류를 위해서 자신의 삶을 바치겠다는, 누구도 하기 어려운 독신을 서원하게 한 것이기도 하다. ...
내 본래는 배우고 닦을 것이 없는 것인데 무엇을 했다 하고, 또 얻은 것 같이 하는 것은 망이요, 집착이요, 도를 막는 병이다. 중생은 집착이요, 부처는 곧 해탈이라 모든 착과 상을 비워 버려야 참 도가 나타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