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2월

하나님의 학교

여행길 2012. 2. 9. 13:38

 

 

신정하 / 쌤 앤 파커스  / 2011

 

p65

예수원은 성공회 신부였던 고 대천덕 신부가 세운 기독교 수도원으로 매년 수만명이 방문해 참 안식을 경험하는 곳이다. 크리스천 아카데미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그런 안식과 평안을 느낀다니, 나 역시 감격스러울 뿐이었다. 뉴저지 인근은 물론이고 먼 지역에서 찾아와준 수많은 믿음의 자녀들은 환한 얼굴로 내 손을 잡아주었다. 그들이 크리스천아카데미를 '영적인 안식처'라고 불러줄 때마다 나는 더없는 감격에 가슴이 벅찼다.

 

p87

그러나 이 땅에서 어떤 삶을 살았는가는 상관없이, 영원한 하늘의 흔적을 남기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하늘의 흔적을 남긴 사람들이다.

영화와 TV다큐멘터리 '울지마 톤즈'를 통해서 우리의 가슴속에 남아 있는 고 이태석 신부. 수단 톤즈의 사람들을 위해서 피의 헌신을 그는 이 땅을 떠난 뒤에 오히려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았다.

 

p91

처음부터 어렵고 힘들다는 생각을 주셨다면 나는 결코 도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세상의 욕심을 가지고 이익과 손해를 따지는 사람이라면 해서는 안될 일이었다. 똑똑한 사람들의 눈에는 말도 안되는 투자를 하는 내가 어리석어 보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나에게 어린아이 같은 심정을 주셨다.

 

p118

누군가가 자신이 이 땅에 던져진 의미를 깨닫고 분연히 떨쳐 일어날 때, 그는 스스로 빛을 발한다. 빛을 비추는 삶, 데이비드 부소는 그렇게 스스로의 삶을 특별하게 만들었다.

 

p121

만일 그 조 모학생의 영성지수가 높았더라면, 카이스트에서 죄절하더라도, 혹은 미적분학에서 F학점을 받았더라도 결코 생을 포기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나님이 자신의 미래요, 안전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더라면, 삶을 그렇게 쉽게 버리지는 못했을 것이다...

나는 우리 아이들이 데이비드 부소처럼 '인생에서 진정 중요한 것'을 찾고, 자신의 욕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욕심을 이뤄드리는데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기를 바란다

 

P127

'거룩의 복음주의자'로 불리는 영국의 라일 주교는 '거룩함이란 습관적으로 하나님과 한마음을 갖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거룩한 삶은 하나님의 판단에 동의하고, 그분이 미워하시는 것을 미워하며, 사랑하시는 것을 사랑하며, 이 세상의 모든 일을 성경으 기준에 따라 판단하고 행동하며 사는 것이다. <주님은 나의 최고봉>의 저자 오스왈드 챔버스는 신자들이 거룩을 너무나 가볍게 여기고 있다며 참된 거룩을 위해서는 대가를 치러야한다고 말했다. 그는 거룩을 위해 치러야 할 대가는 '이 땅에서의 관심을 지극히 줄이고 하나님을 향한 관심을 무한히 넓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여기에 기독교 교육의 핵심이 있다. '이땅에서의 관심을 줄이고 하나님을 향한 관심을 확장하는 것'이야말로 믿음의 사람들이 추구해야 할 절대적인 실천강령이 아닌가. 그러나 알다시피 현실을 정반대로 가고 있다. 양심적인 크리스천이라 해도 세상일에 관심이 많다...챔버스에 따르면, 거룩에는 조건이 있다. 거룩을 이루는 과정에는 언제나 고귀한 싸움이 있는데, 내면에서 벌어지는 그 싸움은 항상 예수 그리스도의 요구에 대항하는 어떤 세력과 싸우는 것이다.

 

p131

자연은 위대한 스승이다. 위대한 스승인 자연을 아끼고, 배려하며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사실 인간은 자연에서 모든 것을 배울 수 있다.

18세기 프랑스의 계몽주의 사상가이자 작가인 장 자크 루소는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외쳤다. 그는 "자연 속에서 인간의 본래적인 것을 마음껏 생각하고, 깊이 자기 속에 파묻혀 들어가라. 그리하여 자기 속에서 되살아나와 참다운 사람이 되어라"라고 말했다.

또한 루소는 인간이 본래 자연 속에서는 자유롭고 선량한 존재였지만, 자신들의 손으로 만든 사회제도와 문화에 의해 오히려 부자연스럽고 불행해졌다고 지적했다. 그럼으로써 인간은 사악한 존재가 되었다고 질타한 루소는 "가장 좋은 교육이란 자연 속에서 성장하도록 그냥 놔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p133

산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지만 그 모습은 늘 다르다. 나무 역시 언제나 그 자리에 있지만 바람의 방향, 햇살의 강약, 내 마음의 상태에 따라 달리 보인다. 늘 새롭고, 늘 완성된 것이 바로 나무라는 생각이 든다. 한 그루의 나무에도 온 세상이, 온 우주가 있다. 나무는 결코 홀로 설 수 없다. 씨앗 하나가 싹을 틔우고 커다란 떡갈나무가 되는 데는 수많은 도움과 상호작용이 있어야 한다. 그 나무 안에는 바람과 구름, 비와 눈이 다 들어 있다. 자연끼리 사랑을 주고 받지 않으면 한 그루의 나무는 온전히 설 수 없다. 위대한 사랑이다.

매일 나는 차창 밖에서 들어오는 바람을 느낀다. 바람은 언제나 다르다. 바람은 차별하지 않는다. 삼라만상 모두에게 다가간다. 눈이 내리면 온 산과 길의 색깔이 희게 변한다. 비가 오면 촉촉함이 대지에 퍼진다. 비가 내릴 때 먼 산을 지그시 바라보라. 눈발이 날릴 때 강가를 쳐다보라. 비가 산을 그리고, 눈이 강을 그린다. 놀랍지 않은가. 아침에 햇살이 들면 산은 커져온다. 모든 사물이 살아난다. 그러다 날이 어둑해지면 다시 산은 가라앉고, 모든 것은 제자리로 간다...

자연은 모든 것을 받아준다. 길을 달리면서, 걸으면서 나는 자연의 위대함을 발견한다. 그것은 어디서도 찾을 수없는 희열을 준다. 자연은 우리의 삶과 정신적인 힘의 줄기라고 할 수 있다.

 

p135

자연은 모든 것을 받아준다. 길을 달리면서, 걸으면서 나는 자연의 위대함을 발견한다. 그것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는 희열을 준다. 자연은 우리의 삶과 정신적인 힘의 줄기라고 할 수 있다.

과거에 사람들은 자연속에서 더불어 살았다. 자연 공동체를 이뤘다. 공동체란 무엇인가? 함께 먹고, 더불어 일하고, 같이 노는 사회가 바로 공동체다 과거에는 자연 속 공동체가 살아 있었다. 그 속에서 문화가 일어났다.

나와 연배가 비슷한 사람들은 과거에 강물 소리를 들을 줄 알았다. 집에서 학교까지 먼 거리를 걸어 다닐 때, 강가를 거닐면서 강물과 달과 별이 뜨고, 비가 오고 눈이 내리는 것을 보았다. 강가를 걸을 때 강은 곧 나였다 내 마음과 강물의 마음이 동일햇다. 내 마음이 맑고 선량하면 강물도 맑게 보였다. 지금껏 나를 지탱해준 한 가지가 바로 자연에 대한 노스탤지어다...

자연을 보는 마음이야 말고 아름다운 마음이다. 아름다운 마음을 갖기 위해서는 자연을 보고 읽어야 한다. 자연을 보는 마음이 아름다운 마음이기에 반드시 자연을 보아야 한다. 그 자연의 소리를 듣고 읽어내야 한다. 자연을 읽다 보면, 보이는 모습만이 자연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사람이 곧 자연'이라는 진리를 재확인 하게 된다.  자연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자연히 사람을 귀하게 여긴다...

어린 시절을 생각해보면 우리는 늘 자연 속에서 놀고 지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손에 흙을 묻히며 놀았다. 교육학을 공부하고 학교를 운영하면서 나는 노는 것이 공부였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놀기 위해서는 상대가 있어야 한다. 그 상대와 놀기 위해서는 상대를 인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혼자 놀 수밖에 없다. 혼자 노는 것은 재미가 없다. 놀면서 우리는 상대를 인정했다....인격은 상대와 놀 때 드러난다. 놀다 보면 서로 싸우기도 하고, 웃고 울기도 한다. 인격이 놀이 속에 개입되는 것이다. 인격과 인격이 만나면서 더불어 사는 것의 귀함을 알게 된다. 이웃과의 상호작용 안에서 지식은 인격이 된다.

 

p138

교육이란 무엇인가? 학생들로 하여금 좋아하는 것을 찾게 해주는 것이다.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학생들은 결국 성공한다. 물론 시기의 차이는 있다. 남들이 보기에 늦은 시기에 성공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뒤늦게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은 사람들이다. 모든 사람들이 공유하는 인생의 표준 시간표에서 조금 늦거나 빠를 수 있다. 그러나 좋아하는 것을 찾은 사람들은 자신만의 인생 시간표를 놓고 봤을 때 결코 실패하지 않는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은 사람은 반드시 성공한다. 무언가를 좋아하면 열심히 하게 된다. 열심히 하다 보면 그 일을 잘 하게 된다. 자신이 잘하는 것을 평생 하면서 사는 사람이 행복하다. 성공이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평생 즐겁고 보람 있게 사는 것 아닌가. 이런 사람들은 그 일이 아무리 보잘 것없어 보이더라도 반드시 사회에 선한 기여를 한다.

 

p139

자연을 바라보며 자연을 읽어내는 사람들은 인생을 길게 바라본다. 아등바등하지 않는다. 자연을 보면서 세상이 모두 배움의 터전이며 자연 속에서 살아내는 일체가 공부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진정한 공부는 우리가 사는 세상을 자세히 바라보는 것이다.

자연 속에서 일어난 모든 것들을 관심을 갖고 바라봐야 한다. 그래야 그것이 무엇인지를 안다. 무엇인지 알아야 이해할 수 있다. 이해가 되어야 내 것이 된다. 내 것이 될 때 그것은 인격이 된다. 인격이 될 때 관계가 맺어진다. 관계가 맺어지면 생각이 변한다.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 우리네 삶이다. 공부란 결국 생각을 키워주고, 생각이 일어나게 해주는 것이다.

이런 일련의 과정들은 제도화된, 조직화된, 혹은 물질적으로 계량화된 곳에서는 도저히 일어나지 않는다. 자연 속에서 일어난다. 자연을 가까이 할 때라야 발견할 수 있다. 자연으로 돌아가서 자연을 읽어내는 것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장 자크 루소와 같은 심정으로 나는 우리 학생들에게 늘 당부한다. 부디 자연을 바라보라고, 자연을 읽고 자연과 대화하라고. 봄날의 햇살을 즐겨라. 장하게 내리는 여름의 장대비도 맞아보라. 가을의 코스모스와 고독을 이야기하라. 반드시 눈덮인 겨울 산을 올라보라. 그러면 "또 다른 멋진 자연"인 "사람"이 보인다. 그 사람과 더불어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보면 행복한 삶을 살게 된다.

 

p150

사랑이 무엇인가. 사랑은 치러내는 것이다. 피를 흘리는 것이다. 그 아이들과 함께 치러내고 그 아이들을 위해서 피를 흘리는 것이 사랑이다.나는 그 아이들이 좋은 성적을 받는 것보다, 밥은 잘 먹는지, 아픈 데는 없는지, 소소한 행복을 느끼는지에 대해서 더 걱정했다. 매일 한 번씩이라도 이름을 부르고 눈을 맞췄다. 그 아이들이 아플 때는 나도 아파했다. 그들을 위해서 늘 기도했다. 아이들이 넓디넓은 세상에서 쓰임 받는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행복한 사람들이 되게 해달라고, 꿈을 발견하고 그 꿈을 이루는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p154

아이들은 그 시간을 소중한 추억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 아이들에게 다른 어떤 것보다도 1대1 제자훈련을 시키고 싶어했던 나의 간절함이 통했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났다 . 이 세상에 헛된 것은 없다. 울며 씨를 뿌리면 기쁨으로 거둔다. 진심이 깃든 사랑은 이 세상 모든 아이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문제아들의 마음까지도 움직인다....<아버지에게 가는 길>에서 케니 켐프는 말했다. "소중한 순간이라는 개념은 환상이이다. 모든 순간은 소중한 시간이 되어야 한다"

 

p161

하나님이 이끌어주시는 정규학교를 만들겠습니다. 인종을 초월한 전 세계 학생들이 이곳에서 공부해 세상을 올바르게 이끌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수많은 목회자들이 쉼을 얻는 '라브리(프란시스 쉐퍼Francis Schaeffer가 스위스에 세운 영성 공동체)'와 같은 공간으로 만들겠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나를 응원해주는 사람은, 사실 별로 없었다. 다들 이렇게 말했다.

"꿈같은 소리를 하시네요. 아직 젊으신 줄 아니사? 나이를 생각하세요. 그러다가 말년을 망칠수 있었요. 잘 생각하세요."

사람들의 걱정과 비난이 쏟아질 때마다 나는 생각했다.

'아니 꿈이 무엇인가? 실현가능성이 안 보이니까 꿈이라 부르는 것 아닌가? 현재 없는 것을 꿈꾸는 것, 그게 진짜 꿈 아닌가? 그래 나는 지금 꿈같은 소리를 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 우리 학교에 와본 사람들은 아무도 꿈같은 이야기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아니 어떻게 이런 멋진 장소를 일구셨어요?'하고 묻는다. 그러면 나는 허허 웃으며 이렇게 대답한다.

"그냥 입을 크게 열었지요. 크게 열고 크게 받을 것을 소망했지요."

지난 삶을 되돌아보니, 마음속에 꿈을 갖고 그 꿈을 심은 사람들은 결국 열매를 얻었다. 세상의 관점에서 봐도, 소위 출세를 했다. 그러나 아무런 꿈도 없이 술에 술 탄 듯, 물에 물 탄듯 살아간 사람들은 그저 그렇게 평범하고 힘들게 살았다.

그래서 나는 늘 학생들에게 "각자 마음에 걸어둘 꿈의 그림을 생각하라"고 권한다...그 꿈의 그림을 늘 쳐다보면서 현실을 이겨내야 한다. 그 그림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다. 지금은 보이지 않아도 언젠가는 현실에서 이루어진다는 확신을 갖고 살아야 한다.

보이는 씨앗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씨앗의 가치까지 알아보고, 그 씨앗을 마음밭에 뿌리는 것이 중요하다. 긍정적이고 창조적이며 생산적인 생각은 그 씨앗의 싹을 틔우는 데 좋은 거름과 양분이 된다.

히브리서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했다. 이 말은 마음속에서 꿈꾼 것은 실제로 가진 것과 같다는 뜻이다. 입을 크게 열고 받을 준비를 했을 때, 그 마음의 소망은 현실의 것이 된다.

인생의 성공은 IQ가 아니라 꿈의 크기에 달려 있다. 이것은 내 인생을 통해서 얻은 결론이기도 하다. 그런데 주위를 돌아보면 의외로 꿈 하나 없이 사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청운의 푸른 꿈을 꿔야 할 청소년들조차 고작 개인의 영달을 위한 목표에 머물러 있다. 안타깝다. 정말 안타깝다..."얘야, 네 인생은 네 것이야. 누구도 네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 없단다. 네 인생의 주인은 바로 너야. 너는 네 인생이라는 배의 선장이란다. 네가 항해를 해나가야 해."..

"없다고 주눅 들지 마라. 네 입을 항상 크게 열어라.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꿈꾸면, 언젠가는 가득 채워질 거다"...

그러기 위해서는 꿈이 확실해야 한다. 구체적인 미션과 비전은 사람들의 가슴을 뛰게 만든다. 그 미션과 비전은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확고한 발견이 있어야만 나온다. 비전이 있는 민족은 망하지 않는다. 미션을 완수하기 전까지 사람은 죽지 않는다. 성경 역시 크리스천으로서 우리의 미션을 말해주고 있다. 그렇다. 우리는 하나님의 작품이다. 이 땅에서 선한 일을 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하나님의 걸작품이다. 이 확고한 생각을 하는 사람은 어떤 환란이 오더라도 자살을 선택하지 않는다. 여든 살이 되어도 가슴 뛰는 삶을 살 수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 레딩의 베델교회를 담임하는 빌 존슨 목사를 이렇게 말했다. "믿는 자는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기적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명의 삶을 살고 싶다고요? 어디에 있든, 무슨 일을 하든, 마음 가는 대로 하세요. 중요한 것은 예수님처럼 사는 것입니다. 그분처럼 병든 자를 치유하고, 마음 상한 자를 완벽하게 위로하며 귀신을 내쫓고 죽은 자를 살리세요. 그러면 됩니다. 그것이 우리의 기본 사명입니다.

우리 모두가 지난 공통 소명은 바로 예수님처럼 되는 것이다. 그분처럼 삶에서 위로부터 오는 능력을 발휘하게 하는 것이다. 기본 소명만 확실히 한다면 어떤 일을 하더라도 상관없다.

덧붙여 존슨 목사는, 하나님 앞에서 언제나 "예스!"의 삶을 살라고 당부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어떤 것들도 우리 삶에서 이뤄질 것이다. 작은 일에서부터 "예스!"라고 씩씩하게 응답한 다면 반드시 이뤄진다....

아직 내가 우언가를 이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모든 것은 과정이다. 길이다. 길을 걷는 것이다. 묵묵히 내가 지닌 꿈을 실현하기 위해 한 발 한 발 내딛다 보니 오늘에 이르렀다. 나는 앞으로도 걸어갈 것이다. 내 코끝에서 숨이 멈추는 그 순간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다.

 

p173

공부는 왜 하는 걸까?..다른 학교는 모르겠고, 적어도 우리 학교 학생들이 공부하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바로 그때, 주님이 내게 명하신 바로 그 시간에, 최고로 쓰임을 받기 위해서 나는 오늘 공부한다. "

촌음을 아끼며 공부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좋은 대학에 가고 연봉이 높은 직장을 구하고, 평생 돈 걱정 없이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공부하는 것이 아니다. 오직 그때, 주님의 위대한 역사에 쓰임 받기 위해서 오늘 공부하는 것이다! 그래서 시간을 아껴 눈에 불을 켜고 한 글자라도 더 보아야 하는 것이다.

 

p174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특히 학생들에게는 일생 중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할 때가 있다. 정확한 때에 1시간 동안 집중해서 한 공부는 나중에 하루 종일 한 것보다 더 효과적인 경우도 많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정확한 때에 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형통의 삶을 누리기 힘들다. 정확한 때를 아는 사람들은 남의 눈에는 비록 탁월하게 보이지 않을 지라도 결국에는 승리하게 된다. 승리자는 때를 아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정확한 때'를 알 수 있을까?

다름 아닌, 복종이다.

하나님의 뜻은 받드시 성취된다....

나는 학생들 한 명 한명을 대할 때마다 신성한 느낌을 갖는다. 아무리 보잘것없어 보이더라도 하나님의 손길이 닿으면 위대한 작품으로 변한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인간 모두는 하나님이 만드신 작품들이다. 만드신 바를 뜻하는 헬라어가 요즘 많이 쓰이는 말인 포이에마poiema다. 하나님의 작품인 우리는 선한 일을 행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의 뜻이다....

누구나 자기만의 시간표가 있다. 나에게도 나만의 시간표가 있다. 결코 다른 사람과 비교할 수 없는 시간표다. 세상은 자기 시간표대로 돌아간다. 사랑과 이별, 심지어는 생사고락까지도 각자의 스케줄대로 움직인다.

"아니, 그렇게 늦은 나이에 교육사업에 뛰어드시겠다고요? 너무 늦었어요" 그러나 나는 이 말에 주눅 들지 않았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시간표에 따라 나에게 늦다고, 혹은 빠르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에게는 나만의 시간표가 있고,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될 수 있는 공통의 시간표란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일에 몰두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 누구인지 알아야 한다. 자기가 누구인지 아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는데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 매 순간을 최고의 열정으로 임하는 사람은, 세상의 제도와 관습이 정해놓은 시간표를 거부한다....생체리듬이 다르고, 살아온 환경이 판이한데, 어떻게 동일한 패턴으로 공부할 수 있겠는가.

소설가 파울로 코엘료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살아온 방식에 얽매여 좋은 기회를 놓쳐버린다고 말했다. 좋은 기회란 무엇인가? 시간과 에너지, 재능 등 자신의 모든 것을 몽땅 써도 전혀 아깝지 않은 일이다. 살다 보면 이런 좋은 기회가 반드시 온다. 아무리 한심하게 사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일생에 한번쯤은 좋은 기회를 만난다.

공부는 잘하지 못했지만, 어느 시점에 비즈니스에서 탁월한 재능을 발휘하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예술 방면에서 탁월성을 나타내는 학생, 심지어 세기의 사랑을 하는 로맨티스트 학생 등등, 각자의 재능이 다른 만큼 삶의 시간표도 모두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니, 세상의 시간표에 연연하지 말고, 열정을 다바쳐서 신명하게 일할 그 무엇을 찾아야 한다. 그 무언가를 찾고 거기에 올인하는 삶이야말로 가장 가치 있는 삶이다....

나는 우리 학생들에게도 자기만으 인생 시간표를 작성하라고 말한다. 세상의 시간표는 잊어버리고 자기만 간직하고 자기만 볼 수 있는 시간표를 만들라고 한다. 그 시간표 위에서 가장 중요한 때는 바로 지금이고 가장 중요한 장소는 바로 여기다.

인생길에서 내일을 위해 오늘을 포기하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안타깝지만 그게 현실이다.

나 역시 젊은 시절에는 내일을 준비한다는 미명 하에 수많은 오늘들을 허비하고 했다. 하지만 이제 와서 깨달은 것은, 오늘이 없으면 내일도 없다는 것이다. 오늘 행복하지 않으면, 내일도 행복하지 않다. 그렇다고 미래를 위해 오늘 노력하는 것이 다 헛되다는 게 아니니 오해 없길 바란다. 내일을 위해 공부하는 노력하는 '지금 여기'에 초점을 맞추고, 지금 이 순간 여기에서 제발 행복하라는 뜻이다.

어떻게 보면,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지기 위해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돈을 많이 벌기 위해 오늘의 행복을 포기하고 사는 것 같다. 지금도 수많은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내일을 위해 오늘의 행복을 포기하고 있느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모두 이미 누군가 만들어놓은 멋진 정원을 찾아 헤맨다. 똑같은 정원을 갖기 위해서 분투하고 노력한다. 그러나, 진정 멋진 정원은 내가 만들어가는 정원이다. 매일 물을 주고, 나무의 가지를 치고, 돌을 골라내며 손수 만드는 정원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멋진 정원이다.

 

p183

크리스천들에게는 주어진 환경 속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바로 성공이다....

그렇다면 영성이 무엇인가? 크리스천의 관점에서 영성은 하나님을 알고, 그분을 사랑하는 것이다. '하나님 앎'과 '하나님 사랑'이 기본으로 깔리는 것이다. 영성이라는 단단한 기초가 마련되면, 지성과 감성도 더욱 탁월해진다...

영성지수가 높은 사람은 자존감이 높다. 그 어떤 상황에 처해도 절망하지 않는다. 자족한다. 왜 그럴까? 바로 그들의 내면 깊숙한 곳에 절대자가 있기 때문이다. 크리스천들에게 그 절대자는 물론 하나님이다. 하나님이 믿는 자들에게 한 약속이 있다. 하나님은 우리를 떠나지 않으신다. 버리지도 않으신다. 그 앞에 한 구절 덧붙일 수도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란 말이다. 그렇다.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믿음보다 인생을 더 풍요롭고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은 없다. 하나님이 함께해주신다는 확신이 있는 사람들은 환경을 초월해 자기 인생을 산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인생이 아닌, 스스로가 주님 안에서 행복해지는 인생을 산다.

 

p189

작가 시오노 나나미의 말처럼 "장미라면 결국 꽃을 피운다" 물론 꽃을 피우기까지 수많은 실패를 경험하겠지만, ...스티브잡스도 이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기억하세요. 인생은 수많은 도트(dot, 점)의 연속이라는 사실을" 한점 한점만 볼때는 쓰라리고 아프다. 다 끝난 것 같다. 그러나 그점들을 길게 이어보면 다르다. 인생의 참 의미를 알 수 있다.

 

p190

고 전영창 교장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남긴 글 가운데 하나가 직없 선택의 10계명이다.

1. 월급이 적은 쪽을 택하라

2.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택하라

3. 승진의 기회가 거의 없는 곳을 택하라

4. 모든 것이 갖추어진 곳을 피하고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황무지를 택하라

5. 앞을 다투어 모여드는 곳은 절대 가지 말라. 아무도 가지 않는 곳으로 가라

6. 장래성이 전혀 없다고 생각되는 곳으로 가라

7. 사회적 존경 같은 건 바라 볼 수 없는 곳으로 가라

8. 한가운데가 아니라 가장자리로 가라

9. 부모나 아내나 약혼자가 결사반대를 하는 곳이면 틀림없다. 의심치 말고 가라

10. 왕관이 아니라 단두대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가라.

...이 10게명이 말하는 요지는 결국 '섬기는 사람이 돼라'는 것이다. 섬기고, 나누고, 희생하는 사람으로 살라는 것이다. 큰 성공을 거둔 사람들이 어느 날 갑자기 그 성공의 자리에서 제 발로 내려오는 경우가 있다. 강제로 떠밀려서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결단으로 그 자리를 떠나는 것이다. 그들이 왜 그런 결정을 하게 되었을까? 그러한 결단의 배경에 무엇이 있을까? 그리고 그들이 이후에 무엇을 하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큰 성공의 자리에서 자발적으로 내려오는 사람들이 최종적으로 가는 자리가 있다.

바로 '섬김의 자리'다.

성공을 위해 분투했던 사람들이 마지막에 시도하는 것은 결국 섬김과 나눔이다...그러면서 몸소 그 낮은 자리를 향해 길을 떠났다. 그들은 자신들이 일생 동안 배우고 경험했던 모든 것들을 활용해 남을 도우려 한다. 비즈니스 세계나 공직, 교직 등을 통해서 자신들이 체득했던 노하우를 섬김 사역에 쏟아붓는 것이다. 그럴 때 사역의 승수효과가 일어난다. 1+1=2가 아닌 경우도 많다. 시대를 앞서간 사람들이 힘을 합쳐서 일하면, 상상할 수도 없는 놀라운 결과가 나온다.

나 역시 비록 이 땅에 큰 족적을 남길 만한 위대한 인물은 아니지만 섬김이야말로 인생에서 가장 흥미진진하 일이라고 확신한다. '주는 자가 더 복이 있다'는 말은 성경말씀(사도행정 20장 35절)일 뿐만 아니라 나의 지론이기도 하다. 남을 섬기고 자신의 것을 나눈다는 것은 결코 인생의 낭비가 아니다. 오히려 수지맞는 일이다. 복 받는 행위다.

이 땅에서 떵떵거리며 살았던 사람들은 세월이 지나면 잊힌다. 그러나 섬기고 나누는 이들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영원히 산다. 나는 이 시대의 큰 인물들이 섬김의 삶으로 길을 떠나는 모습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한다. 그들이 세속적인 성공을 거둔 이후에 섬김의 자리로 가는 것보다 세속적인 일들을 열심히 하면서 동시에 섬기는 일들을 병행했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라고. 섬김이 우리가 가야할 최종적인 모습이라면 좀 더 빨리 인생의 화창한 날부터 섬김의 삶을 사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하는 이야기다....

섬김의 자리고 내려가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오랜 훈련의 결과물이다. 섬기는 자리는 한없이 낮아져야 하는 자리다. 섬기는 사람은 자신을 내세울 수 없다. 어쩌면 섬김의 도를 실행하는 그 과정에서 수없이 마음이 상처를 받을지도 모른다. 자신은 다함이 없는 사랑으로 섬겼지만, 상대가 배은망덕하게 나올 수 있다. 

간혹 자아실현의 일환으로 섬김과 나눔의 삶으로 길을 떠나는 사람들이 있다. 섬김과 나눔마저도 성공의 한 방편으로 삼는 이도 적지 않다. 그렇게 불손하고 거짓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결국 사람들에게 실망하거나 상처를 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진정한 섬김의 삶을 살 수 있을까?

나는 우리 학생들에게 오스왈드 챔버스의 이야기를 자주 들려준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따르면 주의 부르심은 다른 사람의 신발털이가 되라는 부르심입니다"라고 말했다. 주님이 부르심을 받는 사람들은 신발털이가 될 정도까지 낮아지고 또 낮아져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크리스천들에게 섬김의 주된 동기는, 사람을 향한 사랑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다. 우리가 주위 사람들에 대한 사랑의 마음으로 그들에게 헌신한다면, 그들이 주체가 된다면 결국 실망만 남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섬김과 나눔의 동기가 하나님 사랑 때문이라면 상대가 어떤 태도로 나오든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다.

"내가 궁핍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어떤 처지에서도 스스로 만족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나는 비천하게 살 줄도 알고, 풍족하게 살 줄도 압니다.

배부르거나, 굶주리거나, 풍족하거나, 궁핍하거나 그 어떤 경우에도 적응할 수 있는 비결을 배웠습니다." (빌립보서 4장 11-12절)

하나님을 사랑하느 사람은 기꺼이 타인을 위한 신발털이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섬김과 나눔의 깊은 밑바닥에 자기 사랑이 있는 사람은 결고 기쁜 마음으로 신발털리 노릇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인류 역사상 최고의 리더는 예수님이셨다. 그보다 더 많은 추종자를 가진 인물은 없었다. 그가 군림하는 리더였다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추종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성경에서 예수님이 어울린 사람들을 자세히 보라. 정신병 걸린 사람들, 나병환자, 거리의 여인들, 간음한 여인들, 사미라아 사람들처럼 천대받은 소외된 이들이었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로 군림할 수 있었지만, 낮은 자리로 내려가셨다.

 

p205

인생은 늘 순풍에 돛 단 듯 유유하게 흘러가지는 않는다. 하지만 인생이란 산맥을 오를 때 그 어떤 절망이 닥쳐도 '태도'에 따라 가치를 실현할 수도, 허물 수도 있다. 우리 학교에는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고통을 겪고 있는 아이들이 적지 않다. 어린 나이지만 건강 때문에 심각한 어려움에 처한 아이들도 있다. 나는 그 아이들에게 태도의 중요성을 이야기 한다. 인생에서는 사건 자체보다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좋은 태도를 갖는 것보다 더 좋은 학습은 없다.

어차피 인생의 환경은 모두 다를 수 밖에 없다. 흔히들 더 많이 가진 자를 부러워하지만, 정작 그들에게도 남모를 고충은 많이 있다. 그래서 옛말에 만석꾼은 만 가지 고민이 있다고 했나 보다...

요셉은 자신에게 일어난 모든 사건과 사실을 하나님의 섭리라는 관점에서 보았다. 작은 그림이 아니라 큰 그림을 통해서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을 해석한 것이다. 모든 일들을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일어난 섭리적 사건으로 풀이했다. 그러니 그에게는 원망이 있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 환경에 함몰 될 리가 없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을 때, 즉각적으로 요셉의 원리를 적용해보라. 항상 긍정적으로 해석하고, 모든 일의 배후에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명심하면 된다. 그러면 환란이 닥치더라도 낙심하지 않을 수 있고, 큰 행운이 찾아오더라도 자만하지 않을 수있다.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주관하시고 진행하신다.

 

p209

인간의 마음가짐을 어떤 방향으로 돌리는 것은, 억지로 노력해서라도 바꿀 수 있겠지만, 그것이 세상을 근본적으로 바꿀수는 없다. 현실은 혹독했다. 어떤 경우에도 세상을 아름답게 바라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만, 현실은 결코 그럴 수만은 없다는 의문과 번뇌 때문에 한동안 방황도 했다.

이제 그 시절의 의문에 대한 해답을 얻었다. 예수 그리스도가 답이었다. 그분 안에서 이 세상을 바라볼 때, 모든 환경을 뛰어넘어 평안을 누릴 수 있었다. 그분은 비교할 수 없는 오직 한 분이시다. 그분과의 만남 없이는 결코 이 땅에서 낙관적으로 살 수 없다...

내가 할 일은 <예수안경>을 쓰고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다. 예수 안경을 쓰기 위해서는 믿음이 필요하다. 믿음이 무엇인가. 믿음은 하나님을 원하는 것. 그리고 다른 것은 아무것도 원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다.

비움과 침묵의 현자 토머스 머튼 Thomas Merton은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과 가까이 사는 것에 만족하고 그 가까움을 느끼고 체험하는 그런 종류의 삶을 늘 새롭게 하는 사람이 되라는 것이 우리를 향한 그분의 부르심이다."....

예수바람을 맞으며 나는 늘 기뻤다. 예수 안경을 쓰고 세상을 바라보니 낙관주의자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전능자의 그늘 아래 있기에 나는 늘 충만했따. 죽음보다 강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나를 감쌌다. 그 사랑은 인생 여정이 끝날 때까지 나와 함께할 것이다.

 

p215

모르는 산 속에서 길을 잃어버려도, 평소에 자주 산에 오르던 사람들은 직감적으로 옳은 방향을 찾아낸다. 그것은 지도와 나침반이 주는 지식이 아니다. 산과 함께 호흡하고 살아온 몸에 새겨진 지혜의 능력이다.

 

p220

"여보 나는 이렇게 생각해요"라는 말보다 "여보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요?"라고 말하는 아내는 내가 세상일을 버리고 섬기는 삶을 시작하겠다는 다짐에 큰 박수를 보내주었다. 낙담할 때마다 용기르 심어주었고, 그 뜻을 지킬 수 있게 끊임없이 지원해주었다. 허허벌판 같았던 크리스천아카데미가 지금 같은 아름다운 평원으로 바뀌기까지 아내의 지원은 어두운 밤을 밝혀주는 발전기와 같았다. ...

고난을 피하지 않고, '통과하는 법'을 배우면 고난은 전혀 다르게 다가온다. 지금 우리는 고난을 통과하고 있다.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하나님을 찾는다. 그분의 말씀에 귀 기울인다...고난과 역경의 파도를 뚫고 가다 보면 구토가 날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다. 결국 이 배는 목적지까지 갈 것이라는 사실 말이다. 내가 있든 없든, 동역자들이 끝까지 인내하고 지원하든, 배반하고 외면하든 상관없이. 이 배에는 위대한 캡틴이 게시기 때문이다.

 

p226

살아보니 40대까지는 명함의 앞면이 중요하게 여겨진다. 학력과 경력, 배경은 일상의 삶을 사는데 적지 않은 영향을 준다. 그러나 50대에 들어서니 점차 달라졌다. 명함의 앞면에 적힌 것과는 다른 가치들이 내 삶을 좌우했다. 모든 것이 점차 평준화되었다.

평준화 법칙이란게 있다. 40대는 욕망의 평준화다. 누구나 가족을 먹여 살리고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 발버둥질한다. 50대는 지식의 평준화다. 학력 차이는 별로 문제될 것이 없다. 60대는 외모의 평준화다. 미스코리아출신이나 식당 아줌마나 그 얼굴이 그 얼굴이다. 70대는 성의 평준화다. 남편과 아내가 있으나 성별의 차이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80대는 부의 평준화다. 이 시기에는 하루 세끼면 충분하다. 90대는 생사의 평준화다. 죽은자와 산자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100대는 자연속의 평준화다. 죽으면 모두 한 줌의 흙으로 변한다.

이처럼 모든 것은 평준화된다. 평준화되는 것들은 흔하다. 그러니 기억되지 않는다.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것들을 위해서 아등바등 사는것은 인생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어린 시절부터 이같은 인생의 비밀을 알알더라면, 매순간을 좀 더 의미 있게 보냈을 것이다.

 

p227

NJUCA와 함께 세울이 흐르면서, 나에게는 나이 먹는 것에 대한 아련함이 있었다. 자꾸 시간이 지나가는 것이, 사실 아쉬웠다. 삶의 자리에서 죽음을 생각하니 처연해졌다. 그러나 어느날 거꾸로 생각하게 됐다. 이젠 삶의 자리에서 죽음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죽음이 자리에서 삶을 바라본다. 그러자 삶이 곧 은혜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꿈이 있는 한 , 나는 청춘이었다. 경험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이 있꼬,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행운이었다.

인생은 어김없이 희로애락으로 점철되며, 인생의 사계절은 반드시 반복된다. 기나긴 겨울이 있기에 봄은 더욱 아름답다. 데살노니가 전서에 나온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은 그야말로 삶의 모든 환경 속에서 감사하라는 것이다. 무화과나무가 말라 비틀어지고 포도나무에 썩은 포도알밖에 없을 때도 감사하라는 명령이다.

감사가 몸에 밴 사람, 감사 DNA가 세포 속에 장착된 사람들에게는 비밀이 있다. 자신에게 일어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임을 인식하는 것이다. 그런 사람은 범사에 감사할 수 있다. 흥할 때는 흥한 대로, 망할 때는 망한 대로 감사한다. 주님과의 만남이 없다면 아무리 흥한다 하더라도, 억만금을 벌어도, 가장 높은 자리에 올라도, 감사할 수 없는 인색한 사람이 된다.

부족한 인생이었지만 다시 생각해도 감사할 것들이 정말 많다. 무엇보다 내 아내에게 고맙다. 아내가 있는 것 자체가 감사하다. 지금까지 나와 살아준 것이 감사하다. 과분한 사랑을 받고 있기에 감사하다. 이 나이까지 아내와 함께 이야기하고 놀 수 있어서 기쁘다. 위대한 삶의 비결은 참으로 간단하다는 것을 세월이 지날 수록 몸소 깨닫는다. 그것은 아내를 사랑하고 자녀는 아끼는 것이다. 함께 감사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내 모든 것을 던질 수 있는 좋은 교회를 주신 것, 믿음의 동역자들과 만나고 그들과 함께 살게 된 것, 한국과 미국의 좋은 점들을 여러모로 활용할 수 있게 된 것, 여전히 건강한 것, 할 일이 남아 있는 것 등 감사의 조건들은 끝이 없다.

나는 우리 학교 아이들 역시 감사하는 사람이 되기를 소망하며 기도한다. 그들이 작은 일에 감사하며 매일 감사의 조건을 창조하는 사람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인생의 마지막에 " 필요없어. 헛살았어"라고 말하지 않는 것. " 모든 것이 의미 있었어. 감사했어" 라고 말하는 것이 나의 염원이다.

모두에게 감사한다. 그들 모두가 하나님이 보내주신 귀한 선물이었다. 그들은 통로였다.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앞으로 더많은 사람들이 크리스천아카데미와 연결되리라. 그리고 이 아름다운 동산을 거쳐 간 수많은 작은 예수들이 묵묵히 세상을 바꾸고 있으리라!

 

p251

석달, 넉달 지나갈수록 스테파니의 얼굴에서, 또 마음에서 감사와 평안의 향기가 묻어나기 시작했다. 공부도 무척 재미있어하고 가족 같은 분위기의 기숙사 생활도 매우 즐거워했다. ....

크리스천이 정말로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믿음도 중요하지만 세상 사람들과 견줄 만한 실력도 갖추어야 한다고 흔히들 말한다. 옳은 말이다. 그러나 실력을 강조하기에 앞서 하나님 앞에 바로 설 수 있고,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가 형성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친구로서, 혹은 이웃으로서, 진정 사랑이 넘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 결국 크리스천들이 가져야 할 비전은 그러한 가운데서 생겨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