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1월

산승불회_유철주

여행길 2011. 11. 3. 18:49

 

유철주 / 불광출판사 / 2011

 

p20

만암 스님은 '중노릇 잘하려면 공부 열심히 해야 한다' '신심과 공심으로 살아라' '탐진치 삼독심을 경계하라' '삼보정재를 함부로 쓰지 말라'는 말씀을 항상 하셨지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든 입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실천하는 것이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세속의 습(習)이 아직도 남아 있구나! 어찌 사람도 안 된 것이 중이 될 수 있겠느냐?'라고 호통을 쳤다. 사람이 먼저 돼야 한다는 말씀이었다. 만암 스님은 수산 스님에게 '모든 사람을 이롭게 하는 것이 부처님 법이다. 사람이 되고, 또 스스로의 주인이 돼야 한다. 사람도 못 된 것들이 중을 해 세상이 시끄럽다'고 질책했다고 한다.

 

p38

효봉 스님은 정신을 열심히 하셔서인지, 수행에 대해 누가 물어도 철저하게 당신의 경험을 말씀하셨습니다. 체험을 법문으로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무슨 일을 할 때 재주 부리지 말고 제대로 하라고 하셨지요. 계정혜 삼학을 두루 갖추셨고, 부처님 법에 어긋나는 것은 절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p39

구산스님은 평소에 무엇을 하든 굉장히 노력하는 분이었습니다. 마당 쓸고 풀을 뽑아도 제대로 하라고 하셨지요. 건달꾼같이 대충 하면 안 된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래서인지 나도 대중들에게 울력을 많이 시킵니다. 신도한테 자꾸 손 내밀면 안 됩니다. 할 수 있는 것은 스스로 해결하면서 공부해야 합니다.

 

p42

밥은 오래 씹을수록 맛이 납니다. 빨리 무엇을 이루겠다는 마음은 접어 두고 꾸준히 준비하면 됩니다. 그러면 지혜가 생깁니다....

내가 내 코를 꿰어 공부해야 합니다. 누가 공부를 대신 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공부 정도는 본인만이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총림 대중들에게 그래서 스스로 공부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p45

계율은 본디 착한 마음을 그대로 써 나가게 하는 지남입니다. 선남자 선녀인으로서 강한 자부심을 가진 사람은 계율을 억압으로 느끼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은 누가 자신을 음해한다 하더라도 '나에게 뭔가 허물이 있었구나'하고 자신을 살핍니다. 행동을 맑게 하려고 생각하면 그것이 계가 됩니다. 다는 못지키더라도 '이것은 좃미해야지'하는 마음만 있으면 됩니다...

남이 알아주기를 바라지 말고, 깨치기도 바라지 말고, 결제 해제 상관없이 간단 없는 화두로 끊임없이 공부하면 자연히 시절인연이 도래하여눈녹듯 의심이 사라질 것입니다.

 

p46

불교는 참다운 인간성을 회복하도록 일러주신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종교입니다. 그런데 엉뚱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불교를 믿으면 돈을 잘 벌고 잘 살 수 있다는 말들을 하는데, 본질과는 거리가 먼 얘기들입니다. 물론 방편으로 그런 얘기를 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전부인 줄 알고 공부를 안 하기 때문에 길 위에서 길을 잃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부처님은 인간이 가야할 길을 보여 주셨습니다. 불교는 인간의 기본을 새롭게 하고 의식을 새롭게 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p48

조석으로 부처님께 절하고 기도하면 스승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또 요즘 스님들은 돈에만 의지해 공부를 잘 안합니다. 절 주변에 수많은 논밭들이 놀고 있습니다. 먹고사는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합니다. 부처님은 당신의 경험을 제자들에게 가르쳤습니다. 하루하루가 헛되지 않도록 살아야 합니다.

 

p53

선원 마당에서는 한 노스님이 풀을 뽑고 마당을 청소하고 있었다. 스님에게 정혜사에 들어가서 능인선원을 보고 싶다고 했다. 스님은 '지금 대중들이 울력 중이어서 들어와도 볼 것이 없다'며 미소 지었다. 안거나 끝나면 오라는 말씀이었다. 아쉬웠지만 발길을 돌려 산을 내려왔다. 후에 알게 됐지만 그 스님이 바로 설정 스님이었다. 당시 스님은 능인선원 수좌로서 후학들과 함께 정진하면서, 울력 때도 어김없이 먼저 호미와 낫을 들었다.

 

p56

공양주와 채공을 3년 동안이나 거뜬히 해낼 정도가 됐습니다. 정성스럽게 소임을 살았습니다. 산중 어른들도 맡을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 복을 짓는 일이고 중노릇의 기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도 밥하고 국 끓이는 일은 문제가 안 됩니다.

 

p61

지금도 능인선원 선방에는 만공 스님이 내린 추상같은 청규가 걸려 있다. 한눈팔지 말고 오직 공부에만 매달리라며 만공 스님은 다음과 같은 당부를 내렸다. 첫째, 입승의 지도에 복종하라, 둘때, 공부는 필히 마쳐라. 셋재, 잠을 많이 자지 마라. 넷째 묵언라하, 다섯째 바깥출입을 삼가라, 여섯째 청규를 어길 시에는 축출한다. ..

도道의 경지에 이르면 지행합일과 언행일치를 수반하게 됩니다. 특히 언행일치가 안 되면 도가 아닙니다...

제가 몇 년 전 암으로 죽음의 문턱에까지 간 적이 있습니다. 그 고비를 넘기고 나서 앞으로는 절대 편하게 살지 않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심신이 허락하는 한 정신하면서 대중과 중생들을 위해 살 것입니다.

 

p62

우리 스님들은 생사와 윤회를 다 끊고 삼계출가해야 합니다.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승격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격과 교양과 지성도 겸비해야 하는 것은 물론입니다. 그런데 요즘 '생활인'으로서의 스님이 맘ㄶ습니다. 이런사람들은 중이 아닙니다. 직업인입ㄴ다.

 

p67

설정스님은 이와 함께 '인과법을 철저히 믿고 기도하고 수행하며 살면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복ㅇ르 바라기보다는 복을 만드는 일을 많이 하고 긍정적이고 열정적이며 자비로운 생각 속에 살면 복은 저절로 굴러올 것이라고 스님은 강조했다.

 

p82

월하 스님은 50여 년 가까이 통도사 보광선원을 떠너지 않고 조실로 주석하면서 납자들을 지도했습니다. 함께 수행하며 늘 수좌들을 자상하게 지도했던 스님은 졸음에 겨워하는 납자들을 야단치거나 죽비로 때리는 대신 '졸음이 올때는 일어나 경행하라'고 이르며 자비롭게 대했습니다. 언제나 문을 열어 놓은 채 지위고하와 노소를 막론하고 방문자들을 맞았고, 자신의 빨래는 직접 챙기느 수행자의 청규를 지키신 분입니다.

 

p83

생사를 해결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그것을 지혜롭게 슬기롭게 극복하는 것이며,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을 정도로 공부해 마음자리를 챙기는 것입니다.

 

p95

수행의 길이라는 것은 깨달음에 이르지 못하더라도 그 삶 자체가 행복과 기쁨입니다. 이를 이해하자면 적어도 정신이 순일한 상태의 체험이 있어야죠. 공부의 기본적인 체험을 해야만 수행이 고행의 길이 아니라 환희의 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체험 없는 공부는 의미가 없다는 지적이다. ..

'달마사행론'을 보면 그 첫째가 보원행 입니다.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지금의 현실은 내가 만든 것이니까 원망하지 말고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미래는 지금부터 짓는 것이므로 지금 최선을 다해 기쁜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현재의 절망감을 회피하지 않고 당당하게 받아들인 상태에서 미래를 위해 끝까지 매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수행의 길이요, 삶의 지혜입니다. 달마스님은 보원행 외에도 수연행, 무소구행, 칭법행 등을 제시 했다. 수연행은 사람은 인연에 따라서 괴로움과 즐거움을 경험하게 되지만 그러한 것들은 모두 업보의 인연에 의한 것으로 인연이 다하면 모두 무로 된다는 것을 순역의 인연에 입각해서 도에 들어맞게 하는 것이고, 무소구행은 가치를 밖에서 추구하고 집착하는 것을 그치며 추구함을 없애는 데 철저하고자 하는 것, 칭법행은 일체 중생이 모두 본래  청정하다고 하는 이법을 믿고 이이법에 맞도록 끊임없이 육바라밀을 닦아 나가되 이 육바라밀을 닦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얻을 바 없는 무소득으로 철저한 생활을 하는 것을 말한다.

 

p116

이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한다면 부처님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하늘에 빌거나 운명을 탓하지 말고, 스스로 행복을 만드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행복과 평화를 만드는 방법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지금 이 순간, 이 자리에서 혁신하여 한 생각을 돌이켜야 합니다. 탐진치 삼독심을 버리고 동체대비한마음으로 자비와 관용과 지혜로 살아가기를 다짐해야 합니다.

 

p120

그때 전후가 딱 끊어진 경계를 맛봤습니다. 이 세상에서 그 어떤 스님도 그 어떤 사람도 나보다 못한 사람을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다시 새롭게 묵언과 하심으로 수행을 시작했습니다....부처님이 그러했듯이 자신을 낮추는 마음이 절실한 때입니다.

 

p151

부처님처럼 행하면 그것이 바로 부처님이고, 스님답게 행도하면 스님이며, 사람답게 행동하면 참사람이라는 것이었다. 밀운 스님은 부모가 죽은 자식 잊지 못하는 심정으로 공부해야 한 경계를 체험할 수 있을 것이라며 후학들의 쉼 없는 정진을 당부했다.

 

p172

선은 누가 일러줄 수 없는 자오자득의 길입니다. 싯다르타 태자는 화두를 탄 일이 없습니다. 싯다르타 태자가 새벽 별을 보고 대각을 이루었는데, 싯다르타가 새벽 별에게 화두 달라고 마음 낸 일도 없고, 새벽 별도 화두를 준 일이 없습니다.

화두는 주고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옛날 지엄 선사가 화두를 하나 받기 위해 벽송 선사에게 10년을 매달렸습니다. 그런데 구렇게 공을 둘여도 화두를 일러주지 않자 하도 억울하고 원통해서 우레 같은 항의를 하며 울고 돌아서 내려가는데, 벽송 선사가 '지엄아 지엄아' 하고 부른 데서 깨달았습니다. 스스로 깨달은 것이지 화두로 깨달은게 아닙니다. 지엄 선사가 간절한 마음을 내도록 해준 벽송 선사가 진정한 선지식입니다....도가 무엇인지 알고 닦아야지 그렇지 않으면 수십 년을 공부해도 모른다는 것이다. 스님은 또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도 도인 행세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남의 다리 긁는 일은 그만해야 한다'고 일갈했다

스님은 '교리나 화두라고 하는 것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불과하다. 죽고 사는 근본문제, 그 생사의 도리 자체가 화두이고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라는 근본 의심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p177

'우리가 사람의 몸 한 번 받는 것이 사천위에서 바늘을 떨어뜨려서 사바세계의 겨자씨에 꽂히게 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하는데, 이렇게 어럽게 사람의 몸을 받았으니 우리는 모두 사람이 해야할 일을 해야 합니다. 늙은이는 늙었다는 생각을 하지 말고, 젊은이는 젊었다는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정신이 중요합니다. 이 귀중한 몸을 아무렇게나 내던지지 말고 정신을 바짝 차려서 소중한 보물을 찾아야 합니다. 이 보물은 바로 우리 모두가 가져야할 참된 정신입니다.

 

p179

그래서 부처님이 한마디로 일체유심조라고 했습니다. 마음의 문을 열고 무릎을 치면 산과 들이 모두 내것처럼 반갑습니다. 부처님은 49년을 설하고 설한 바가 없다고 했습니다. 진리와 도는 말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말과 글 밖의 도리를 알아야 할 것입니다...산이 높을수록 계곡은 깊고 그 안에서 뛰노는 생명들이 많다는 것을 성수 스님을 뵈면서 다시 확인한다.

 

p216

좌우명이라고 할 것까지는 없지만 그래도 '하심'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발아래를 비춰 자신의 자리를 살피라는 뜻의 '조고각하'도 하심과 일맥상통합니다. 자기 마음을 낮을 수록 꺠달음에 이를 수 있는 길이 보일 것입니다. 자만심은 상대를 아래로 보게 하고 그로 인해 결국 자신의 진정한 가치를 모르게 합니다. 항상 자신을 낮추고 또 자기를 비우는 마음을 갖길 바랍니다.

 

p233

나 자신이 무엇인지 한번 생각해 보세요. 우리는 무엇 때문에 살고 있는가?왜 이 세상에 태어났다가 죽어야 하는가? 나는 왜 존재하며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불교의 가르침은 여기서 비롯됐습니다. 불교의 사상은 불이(不二)와 해탈, 중도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공부해야 하는 것입니다.

 

p254

혜정스님은 너도 부처고 나도 부처고 우리 모두 부처라는 생각을 하며 모든 사람과 소통하게 된다면 행복은 더 빨리 찾아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p268

이제 우리는 이 은혜를 갚아야 하며, 나는 그 방법으로 다음의 열 가지 효도하는 법을 일어주고 싶습니다. 첫째, 은혜에 감사하고 공경해야 합니다. 둘째, 건강하고 성실해야 효도할 수 있습니다. 셋째, 큰 방에 모시고 제때에 봉양해야 합니다. 넷째 출입시 또는 때때로 대화를 나누어야 합니다. 다섯째, 용돈을 드리외 씀씀이를 따지지 말아야 합니다. 여섯째 부모보다 호화롭게 살지 말아야 합니다. 일곱째 인과를 믿고 선법을 행하게 해야 합니다. 어덟째 자연건강법으로 질병을 예방해야 합니다. 아홉째 병이 나면 지극정성으로 간호해야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운명 때는 절대 울거나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이렇게 자연과 부모의 은혜만이라도 깊이 느끼고 생각하고 실천한다면 사람답고 복되고 참된 진리에 합당한 삶을 살아갈 수있습니다...

정무 스님은 특히 좌선을 할 때 '스승없이 발심없이 눈을 감고하지 말고, 허리를펴고 가부좌나 반가부좌의 자세로 하되 시선을 밖에 두지 말아야 하며 화두 없이 망상으로 하지 말라'고 말했다. ....

깨달음은 중도에 의해 깨달아지고 중도는 곧 팔정도이고 팔정도는 곧 헌신과 용기, 끝없는 자비입니다. 깨달음은 그렇게 행동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선정과 쾌락에 집착하지 않고 법을 위하여 이 몸 바치는 것이 깨달음입니다. 바로 부처님의 길인 것입니다...

여행은 인간을 겸허하게 합니다. 또 정신을 새롭고 젊게 합니다. 여행은 자기의 울타리를 벗어나 새로운 충격을 극복하는 기도정진입니다.

 

p273

스님은 법화행자 5종 서원을 소개했다. '모든 사람을 부처님으로 모시겠습니다. 모든 일을 불사로 정성 다하겠습니다. 모든 이웃을 배려하고 봉사하겠습니다. 모든 생명을 존중하고 보호하겠습니다. 모든 환경을 정화하고 장엄하겠습니다...기분이야 좋든 말든 기분좋다 생각하고 기분 좋게 활동하자, 건강이야 어떻든지 건강하다 생각하고 건강하게 생활하자. 행복하든 말든 행복하다 생각하고 행복하게 봉사하자.

 

p289

산승불회山僧不會입니다. 산승은 알지 못합니다. 산승은 모르겠습니다. ...

성불을 목표로 할 때는 보살도가 제일입니다. 용성진종 조사꼐서 말씀하시기를 '하루의 생활이 일생의 생활이 되고, 일생의 생활이 영생을 장엄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루하루의 생활이 보살행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p297

뼛골에 사무치는 추위 맛 모른다면 어찌 코를 찌르는 매화향기 얻을 수 있으랴...

진실로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 힘들어도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p305

깨달음이란 무엇인가요?

자기의 참 모습입니다. 누구나 다 이 몸뚱이를 이끌고 있는 '참나'가 있습니다. 그 참 나는 우주가 생기기 이전에도 있었고 우주가 멸한다 해도 변함없이 있습니다. 깨닫기 전에는 육도의 세계가 분명하더니, 깨달은 후에는 비고 비어서 항상 여여하며 여여한 가운데 깨달음과 어리석음도 없으며, 때로는 만인 앞에 진리의 가게를 펴기도 하고 거두기도 하고, 주기도 하고 빼앗기도 합니다. 이처럼 깨달음이란, 모든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참 나를 깨달아서 영원토록 세계가 한 집이요, 만유가 동체이며 대안락과 대자유의 무심삼래를 수용하게 되는 것입니다.

 

p306

사람에게는 생로병사가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세상에 부귀공명을 누리는 사람도 모두 이것에 직면하면 심각한 문제가 됩니다. 깨달은 자는 항상 여여해 마음의 지혜가 밝아 있기 때문에 모든 갈등과 번뇌를 찾을 수가 없고 생과 사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유정과 무정이 나와 더불어 한 몸이 되고, 온 세계가 한 집인 삶을 살악가게 됩니다.

 

p307

간화선에서 화두는 이 몸뚱이와 같고 의심은 생명과 같습니다. 부처님께서도 '어떤 것이 나의 참 모습인가'하는 의심에 6년간 삼매에 드셨는데, 새가 머리에 집을 지어도 모르셨습니다. 그래서 화두 없이 의심만 있다면 몸뚱이 없는 영혼과 같아 그 어떠한 것도 이룰 수 없고, 도 의심 없는 화두는 죽은 시체와 다를 것이 없어서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화두와 의심이 하나가 되어 신틈없이 밀어주는 게 간화선 수행법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생각만으로 살 수 없기 때문에 일상생활 속에 꾸준히 익히는 것이 우선입니다. 그러니 화두를 들고 일상생활 가운데 하루에도 천번만번 의심을 밀어 주어야 합니다.

스님은 직접 간하선의 자세외 대해서도 설명했다. 앉아서 좌선할 때는 반가부좌를 해서 손을 배꼽 밑에다 붙이고 가슴을 쫙 펴면 바른 자세가 된다. 눈은 2미처 아래에다 두고 보통으로 떠서 있되 노려볼 필요는 없다고 했다. 스님은 '대오견성은 일념삼매가 지속되어 참 의심이 발동 걸려야 가능한 것이니, 끊임없이 의심하고 챙기고, 챙기고 의심해야 한다'며  '반드시 화두 일념이 지속되어야 참 나를 깨달을 우 있다'고 말했다.

 

p308

서양의 신학자로서, 그만큼 신심 있고 순수한 분이 진리의 목마름에 종교와 나이를 초월하여 머나먼 타국까지 와서 산승을 만나고자 하는 열정에 깊은 감명을 바았습니다. 폴니터 교수는 내실없는 종교는 과학이 발달할수록 도태할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서양의 다른 종교인들이 내실 있는 수행에 호감을 가지고 불교에 많이 귀의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불교는 선수행을 통해 정신문화를 계발하고, 나아가 진리를 깨닫는 데 착안을 두고 있습니다. 모든 행이 바르며면 마음수행을 닦아서 거짓 없이 순수해야 합니다. 거기에서 지혜가 나와서 바르게 살고 바르게 인도할 수 있는 것입닏. 그러면 저절로 나와 남이 없이 서로가 한 몸이 되고 온 세계가 한 집이 되어 잘 살 수 있는 것입니다.

 

p310

어떤 것이 활구 참선입니까? 일천 성인의 이마 위에 일구를 투과해야만 활구가 됩니다. 일천 성인의 이마 위에 일구를 투과하지 못하면 활구의 세계를 전혀 모른다는 뜻입니다...그러나 정해정식에 떨어진 알음알이의 사구는 도저히 이러한 자재의 수완을 갖출 수가 없기 때문에 자기 자신도 구제할 수 없습니다.

 

p311

인생이 무상하고 세상이 허무함을 알아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마음이 일어나 선지식을 찾아가 불교를 배운다면 불교는 어려운 게 아니라 하나하나 내 수행을 점검해야 할 방편임을 알게 됩니다. 마음에 관심이 없는데 마음법이 쉽게 느껴질 수 없는 이치입니다....

'부모에게 이 몸 받지 전에 어떤 것이 참 나던고?' 인생은 오늘 있다가 내일이면 가는 법입니다. 세상사 바쁘다 해도 '참나'를 깨닫는 이이릉ㄹ 밝히는 것보다 바쁘고 급한 일이 없습니다. '참나'를 깨닫게 되면 수천 생을 태어나더라도 밝은 지혜이 눈을 잃지 않고 온갖 갈등에서 벗어나 항상 평화롭고 대자유자재한 삶을 살게 됩니다. 우리 모두 불자와 국민들이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며 살기를 바랍니다.

 

p318

'매일 즐겁고 기쁘게 살자고 지은 이름입니다.' 그래서 인지 스님의 표정은 매우 밝았다. 팔순을 넘긴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건강도 좋아 보인다. ...

죽음이라는 것은 방 안에 있다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는 것과 같이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평소 순간순간, 매일매일 올바르게 살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평생을 잘 살지 못한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을 올바르게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가 서 있는 이 자리를 살피면 금생뿐만 아니라 내생에도 좋은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p341

번뇌를 세탁한 후에 일어나는 생각이 마하반야입니다. 그 지혜로 사고하고 생활하는 것을 평상심이라고 합니다. 그 평상심으로 생활하는 사람을 부처라 하고 도인이라 합니다. 이 평상심이 자손에게 음덕을 끼치는 자리이며, 사회를 안정시키는 자리아고, 진짜 좌선하는 자리입니다. ...

나는 깨닫지 못했습니다. 깨달음은 언행일치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데 아직까지 언행일치가 안 됩니다. 누가 안 좋은 소리를 하면 기분이 언짢아집니다. 진짜 깨달았다면 부처님같이 행동해야 합니다. 그래야 깨달았다고 인정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p344

수행을 통해서 사회와 이웃에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혼자 잘되려고 참선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처음에는 나를 위하여 참선을 하다가도 이웃을 위하는 것이 나를 위한 것이고, 나를 위하는 것이 이웃을 위하는 것이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게 될 것입니다. 이런 생각이 되지 않으면 참선을 잘못하는 것입니다. 참선을 제대로 하면 마음이 넓어지고, 이기심이 없어지며 남과 더불어 잘 살아야겠다는 절대적이고 무한한 생각이 저절로 들게 됩니다. ...

먼저 형상은 달라도 본질이 다 평등하다고 알아서 비교를 안하게 되고, 비교에서 오는 모든 스트레스를 받지 않게 됩니다. 생각이 다르다고 모양이 다르다고 종교가 다르다고 우리는 얼마나 싸우고 있습니까? 외형은 다르나 본질은 모두 하나입니다. 갈등과 대립, 투쟁은 자해 행위입니다. 본질을 알면 절대로 비교하지 않고 스트레스 받지 않습니다.

둘째, 자기하 하는 일의 가치와 의미를 알게 됩니다. 가치와 의미를 알면 하는 일이 즐거워서 열심히 하게 됩니다. 그럼으로써 전문가가 되고 전문가가 되니 남들에게 인정받고 존경받는 사람이 됩니다. 모든 분야에서 훌륭한 인재가 맣은 사회와 국가는 안정되고 좋은 사회이고 좋은 나라입니다.

셋째 자주적인 사람이 됩니다. 자신의 욕망이나 외부의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기 때문에 공익을 위해서 당당히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넷째 소통하는 사람이됩니다. 지금 우리 사회를 보면 소통의 부재에서 오는 갈등을 얼마나 많이 겪고 있습니까? 가정에서, 직장에서, 사회엣, 정치권에서 소통 부재의 소음이 국민을 정신적으로 얼마나 괴롭히고 있습니까? 진보든 보수든 국가와 국민을 잘되게 하자고 만든 제도이고 수단입니다. 그렇지만 소통의 부재로 많은 문제들을 만들어 왔습니다. 다리 길이가 다르다고 황새 다리를 끊어서 뱁새 다리에 붙이는 것으 소통이 아닙니다. 산에 여러 종류의 나무들이 다툼없이 잘 자라듯이, 다양한 삶을 서로 인정하면서 더불어 살아가야 합니다.

 

p350

부처님은 깨달음의 눈으로 사회를 개혁하고 발전시키려 노력했습니다. 스님들은 사회성의 실천에 몸을 바치고 본인도 행복하고 다른 사람도 행복하게 하겠다고 출가한 사람들입니다. 스님들은 사명감과 원력願力을 가져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