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대전_최제우 _박맹수
최제우 / 박맹수/ 지식을 만드는 지식 고전선집 _ 2009
p67
의심하고 괴이하게 여기는 마음을 버리니 사리가 분명해지고 예와 오늘의 일을 살피니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바를 알겠더라...
하늘의 도와 덕을 펼 마음을 두지 아니하고 오로지 정성 드리는 일만 생각했다. 그렇게 미루어도다가 다시 1861년(신유년)을 맞이하니 때는 마침 음력 6월이요, 계절은 바로 여름이었다. 좋은 벗들이 자리를 가득 메웠으므로 먼저 도를 닦는 법을 정했다. 어진 선비들이 나에게 도에 대해 묻고 또 덕을 펼 것을 권했다.
p68
입도할 때 한 번 제사를 드리는 것은 하늘님을 길이 모시겠다고 굳게 맹세하는 것이고, 모든 의혹을 깨뜨려 버리는 것은 정성으로 하늘님을 믿어야 하기 때문이다. 옷차림이 단정한 것은 군자의 행동이요, 길거리에 먹거나 뒷짐을 지는 것은 천한 사람이 하는 일이다. 우리 도를 따르는 집에서 먹지 말아야 할 것은 네발 달린 짐승의 나쁜 고기이고, 찬물에 급히 들어가면 따뜻한 몸에 해로우니라. 남편이 있는 여자를 취하는 것은 나라의 법인 <경국대전>에서 금지하고 있으며, 누워서 큰 소리로 주문을 외우는 것은 나의 참된 도를 태만히 하는 짓이다. 그래서 이렇게 정했으니 이것으로 규칙을 삼도록 하라.
p69
허물을 뉘우친 사람은 석승의 재물에 마음이 가지 아니하고, 정성이 지극한 아이는 사광의 총명을 부러워하지 않노라. 용모가 크게 바뀌니 성풍도골(仙風道骨) 같은 아름다운 얼굴이 되고, 오랜 병이 저절로 나으니 노의와 같은 명의의 이름마저 잊게 하도다.
비록 그러나하 도를 이루고 덕을 세우는 것은 정성에 있고 사람에 달려 있는 법이다. 어떤 사람은 떠도는 주문을 듣고 외우니 어찌 잘못이 아니며 어찌 민망하지 아니하리오. 안타깝고 안타까운 나의 마음은 날로 간절하지 아니함이 없나니 빛나고 빛나는 성스러운 덕이 혹시라도 잘못되지 않을까 염려하노라. 이런 걱정 역시 서로 만나지 못한 까닭이요, 도인의 수가 많은 탓이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마음은 서로 비추고 응하지만 또한 서로 그리워하는 회포를 감당할 수 없고, 가까이 모여 정을 나누고 싶어도 지목받을 염려가 없지 아니하다. 그러므로 이 글을 지어 펴서 보이는 바이니 현명한 그대들은 삼가 나의 말을 듣도록 하라. 무릇 이 도는 마음에 확고한 믿음이 서야만 정성이 나온다. 믿을 신(信) 자를 풀어보면 ' 사람(人)의 말(言)이다. 사람의 말 가운데는 옳고 그름이 있으니 옳은 말은 취하고 그른 말은 버리되, 다시 생각해 보고 또 생각해서 마음을 정하도록 하라. 마음을 한 번 정한 후에는 다른 말을 믿지 않는 것을 일어 믿음(信)이라 하는 것이니라. 이렇게 한 다음에 닦으면 마침내 내가 말하는 정성을 이룰 것이다. 정성과 믿음! 그것을 이루는 법칙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말로 이루는 것이니 먼저 믿고 뒤에 정성을 다하도록 하라. 내 지금 밝게 가르쳤나니 어찌 믿을 만한 말이 아니겠는가? 공경과 정성을 다하여 내 말을 어기지 않도록 하라.
p81
불연기연이란 '그렇지 않기도 하고, 그렇기도 하다'라는 뜻이다. 이 불연기연은 수운이 체포되기 한달 전, 즉 1863년 11월경에 지었다...불연기연은 수운이 가장 늦게 지은 글이다. 수운은 불연기연 편에서 우주 만물의 현상을 둘러싼 문제를 '불연(不然)', 즉 인간의 경험과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는 세계와 '기연(其然)' 즉 인간의 경험과 이성으로 이해가 가능한 세계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p96
탄도유심급
산하의 큰 운수가 모두 이 도로 돌아오니 그 근원이 매우 깊고 그 이치가 대단히 멀도다. 내 마음을 굳건히 해야 비로소 도의 맛을 알게 되고 순일한 한 생각이 여기에 있어야만 만사가 뜻과 같이 될 것이니라.
탁한 기운을 없애고 맑은 기운을 기르는 것은 마음이 지극해야 할 뿐만 아니라 오직 마음을 바르게 하는 데 다렬 있느니라. 그리하면 은은한 총명이 자연스럽게 화하여 나오고 맞이하는 온갖 일들은 모두 한 이치로 돌아가리라. 다른 사람의 작은 허물을 내 마음에 두지 말고 나의 보잘것 없는 지혜라도 남에게 베풀도록 하라.
이와 같이 크고 큰 도를 하찮은 일을 위하여 정성들이지 말고 공훈에 임해서 정성을 다하면 저절로 도움이 있을 것이니라. 풍운을 타고 큰일을 하는 것은 그 사람의 그릇과 역량에 따르는 법이라. 현묘한 기틀이 아직 드러나지 않았으니 마음을 조급히 먹지 않도록 하라. 공을 이루는 먼 훗날에 신선의 인연을 맺을 수 있으리라.
마음이란 본래 텅 빈 것이어서 만물에 응해도 자취가 없느니라. 마음을 닦아야 하늘의 덕을 알게 되고 덕이 밝아져야 그것이 바로 하늘의 도이니라. 하늘의 도는 사람에 있지 아니하고 덕에 있으며, 공부에 있지 아니하고 믿음에 있으며, 먼 데 있지 아니하고 가까운 데에 있으며, 구하려는 마음에 있지 아니하고 정성에 있느니라. 그렇지 아니한 것 같지만 그러하고 먼 것 같으나 멀지 아니하니라.
간신히 한 가닥 길을 얻어서 험한 길을 넘어가고 또 가니
산 밖에 산이 다시 보이고 강 바깥의 강을 또다시 보네
다행히 물 밖의 물도 건너고 산 밖이 산을 겨우 넘으니
가까스로 넓은 들판 이르러 비로소 큰 길을 찾아냈노라
간절히 봄소식 기다렸건만 봄빛은 마침내 오지 않으니
봄빛 좋은 시절 없지 않건만 다만 때 아니니 오지 않을 뿐
마침내 그 시절 도래할 때는 기다리지 않아도 저절로 오리
봄바람 한 바탕 불어온 뒤에 만 나무 일시에 봄소식 알지니
하루에 한 송이 꽃이 피고 이틀에 두 송이 꽃이 피어
삼백육십 일에 삼백육십 송이 꽃이 피면
한 몸이 모두 꽃밭이요 한 집안이 모두 봄이리라.
병 속에 신선의 술이 있으니 만백성 모두 살릴 수 있으리
천년 전에 이 술을 빚어 크게 쓰고자 간직했나니
부질없이 뚜껑을 한 번 열어버리면 냄새와 맛 모두 변하리
이 도를 닦는 그대들이여 입 지키기를 병뚜껑 지키듯 하라.
p106
팔절(八節)
(전 팔절)
밝음이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하거든
멀리서 구하지 말고 나를 닦으라
덕이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하거든
내 몸이 어디서 왔는지 생각해보라
명이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하거든
내 마음이 밝고 밝은 것을 돌아보라
도가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하거든
내 믿음이 한결같은가를 헤아려보라
정성이 이루는 바를 알지 못하거든
내 마음을 잃지 않았는가 생각해 보라
공경해야 할 바를 알지 못하거든
잠시라도 우러러 사모함을 늦추지 말라
두려워해야 할 바를 알지 못하거든
지극히 공변되어 사심이 없는 것을 생각하라
마음의 얻고 잃음을 알지 못하거든
망므 쓰는 곳에서 공과 사를 살피라
(후 팔절)
밝음이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하거든
내 마음을 그곳으로 보내도록 하라
덕이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하는 것은
말하고자 하나 너무 커서 말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명이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하는 것은
주고받는 가운데 이치가 묘연하기 때문이요
도가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하는 것은
내가 나를 위하고 남을 위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성이 이루는 바를 알지 못하는 것은
스스로 알면서도 스스로 게으르기 때문이요
공경해야 할 바를 알지 못하거든
내 마음의 깨달음과 깨닫지 못함을 구려워하라
두려워해야 할 바를 알지 못하거든
죄 없는 곳에서 죄 지은 듯이 하라
마음의 얻고 잃음을 알지 못하거든
오늘에 처하여 어제의 잘못을 생각하라
p109
제서(題書)
얻기도 어렵고 구하기도 어렵다 하나 사실은 어려운 것이 아니니라.
마음을 화평하게 하고 기운을 화평하게 하여 봄날같이 화평해지기를 기다리라.
p113
필법
...사람 마음이 같이 아니함을 사랑하고 글을 지음에 안팎이 없게 하라...
p115
...땅은 거름을 받아들여야 오곡이 풍성하고 사람은 도덕을 닦아야 모든 일에 얽매임이 없게 되느니라.
p118
...이렇게 된 것은 이른 바 나쁜 말은 금하기 어렵고 선행은 실행하기 어려운 법 때문이어서 만약 이런 일이 그치지 아니하면 근거 없는 소문이 날이 갈수록 더해져서 나중에 그 확 어느 지경에 이를 지 알 수 없을 것이니라.
p122
비가 많은 계절을 당해 바람 불고 비가 뿌려 길게 자란 풀이 옷 적시는 것은 족히 걱정할 것이 못 되어 마침내 멀리 떨어져 있는 벗들을 돌아보며 공부를 그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몇 줄 글을 써서 위로하고 타이르나니 용서하고 이해함이 어떠한가. 돌아갈 날짜는 초겨울이 될 듯하니 너무 기다리지 말고 극진히 수도해 좋은 시절에 웃는 얼굴로 만날 수 있도록 기다리기를 간절히 바라노라.